스윗스윗 스위스, 그린델발트 피르스트 하이킹

[내 삶에 ‘낭만’ 한 스푼] 그리고, 아빠의 벨소리

by 백다은

언젠가 눈감는 날,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누군가 물어본다면

햇살 가득했던 20대 어느 여름날의

'그린델발트 피르스트 하이킹'을 빼놓지않고

떠올릴 것이다.


피르스트 트레킹 First Trekking,

스위스 바흐알프제 호수를 찍고 돌아오는 루트의 트레킹 코스다. 기차와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 내려다보이는 파스텔 세상에 우리는 돌고래 함성을 질렀다.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두려 애쓰면서 연신 감탄사를 뱉느라 바빴다.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잔디,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작은 꽃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까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관계에 대한 고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마음을 추스리는 일,

다음 달엔 일이 얼마나 들어올지에 대한 걱정,

영원할 줄 알았던 날들로부터 매일 이별하는 두려움.. 우리는 그런 일들로 퇴근 후 '안티 스트레스 컬러링북 스위스편'을 색칠하는데 말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대충 찍은 엽서 사진조차 예술적


목에 걸린 방울을 흔들며 소떼가 유유자적하게 지나갔다. 딸랑딸랑, 매일의 일상일 뿐인데 뭘 이 정도에 놀라냐며 우릴 보며 비웃기라도 하는 듯 했다.


바이크를 각자 한 대씩 빌려

경사진 언덕길을 신나게 내려가던 길,

우리는 한 발을 브레이크 삼아 멈춰서선

서로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풍경들이 실화냐고.


그리고 꼭 다시 이 곳을 찾아

오늘처럼 바이크를 타고 이 공기를 마시러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유람선에서 본 이 곳 주민들처럼 당연한 일상인 듯

수영도 할 거라며 은영이는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 다니며 구름의 모양을 온종일 관찰할 생각이다.


다시 못 올 지난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그리움을 가득 안은 채 가버린 지난 날
잊지 못할 그 추억 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 그대와 나의 지난 날

유재하 '지난 날'
여행의 추억, 우리 뱃 속에는 네모난 복대있다.


육아휴직 중 장거리 여행은

아직 엄두도 못내고 있다.

여행을 자주 다닐 때는 이렇게 실감하진 못했다.

'좋은 여행에서 비축한 추억으로 평생을 그 힘으로살아간다'는 말. 그리움을 가득 머금은 푸르던 날들이 내게 많았음이 새삼 감사하고 가슴벅찬 밤이다.


오늘은 웬지,

아기의 옹알이가 요를레이송처럼 들리고

아파트 정원 푸른 잔디가 그 날의 하이킹 코스같다.

키즈까페 미끄럼틀조차 바이크를 타고

쌩쌩 내려오던 우리의 푸른 날들을 닮은 것만 같다.


은영이와의 여행 몇 년이 흐른 후,

커서 부모님 유럽 효도여행 보내드리겠다는

어린 날의 약속을 현실로 만들었다.

오늘도 아빠의 휴대전화 벨소리는

울릴 때마다 그 날로 우리를 소환한다.

따끈한 치즈에 풍덩 빵과 고기를 찍어 스위스 퐁듄 요렇게 먹는 거라며 한입 쏙 넣어드릴게요. 동화 속 하이디처럼 물감푼 하늘 달려 스트레슨 솜사탕처럼 녹는 호수마을 보러 가요 꿈-속에 언제나 그린 그 곳에 가면 랄랄랄 라-라-라 요-를레이 스위스 아빠랑 하나 둘셋 찰칵! 융프라우 정상에 가면 컵라면 만원이나 해 세상에 제일 비싼 금라면을 후후 불어 먹어요. '아빠랑 스위스', 백다은
백다은

<고독한 미식가> 뺨치는 글로컬 동네맛집 탐방가에, <천사들의 합창> 시릴로의 순애보를 응원하고, <순풍 산부인과> 정배의 순수함이 늘 보고싶고 그리워 태교까지 순풍으로 했다. <브레드 이발소> 빵 한 조각과 우유에 담은 상상력을 사랑하며, <찰리브라운> 별볼일 없는 찌질한 캐릭터가 언젠가 빛을 보는 뻔해보이는 클리셰도 좋아하고, <노다메 칸타빌레> 엉뚱한 노다메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아온 타인의 지층들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조조영화, 돌체라떼 한 잔, 아삭한 사과 한 입에 아침이 기다려지는 소시민.

무의미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달달’ ‘낭만’ ‘상상’ ‘열정’ ‘감동’ ‘엉뚱’ '따뜻'
한 스푼을 더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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