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의 20대

서평

by 백경

이대남은 왜 극우화 되었는가?

최근 들어 20대 남성들의 보수화, 나아가 극우화라는 말이 사회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언급된다.

흔히 “젊을 땐 진보적이고,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보수화의 기류가 포착되는 것이다.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극우화가 아니라, 위태로움이다.”



첫째,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대 경험

지금의 청년 세대는 태어나 보니 이미 신자유주의가 당연한 시대였다. 정치적 상상력의 스펙트럼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금만 좌우로 움직여도 급진적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이들에게는 ‘기본값’이 된 것이다.


둘째, 정치적 무관심과 단편적 정보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에 무관심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수화, 극우화로 기울 수 있을까? 그들의 투표는 일관된 성향이 아니라 보복성, 응징에 가깝다. SNS와 유튜브의 자극적인 썸네일, 잘린 클립들이 세상에 대한 창이 된다. 이들도 왜곡 가능성을 알지만, 더 깊게 파고들 의지는 없다.


셋째, 공정이라는 절대 기준

이 책이 강조하는 핵심이다. 그들은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 것’을 공정이라 여긴다. 북한 문제를 보더라도 남한은 지원을 하지만 북한은 위협과 핵개발로 응수한다. 이들의 공정 잣대로 보면 이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여성, 이민자, 다양한 사회적 쟁점도 같은 메커니즘으로 바라본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말한다.

20대 남성들이 보수를 택하는 것은 극우화의 결과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기본값, 그리고 ‘공정’이라는 담론을 보수가 더 먼저 선점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 세대는 부모보다 더 힘든 미래를 예감하고 있으며,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다. 따라서 좌파 정당도 적절한 헤게모니를 만들어낸다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내리는 마지막 진단은 인상적이다.

그들의 행동은 극우화가 아니라, ‘과격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