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0-019 “19금의 평화”

윤금주씨의 백일금주

by 윤소장

오늘의 술: 네델란드의 Grolsh

하이네켄보다 더 자주마신 네델란드 필스너 맥주. 병뚜껑이 뻥-하고 열릴때 상쾌한 기분이 맥주맛에서도 느껴진다.


금주 19일째.


19살이 지나면 세상의 모든 금기가 풀리고 신비한 세계가 열릴것만 같았다. 그놈의 ”19금“이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막상 19금의 선을 넘었고 그의 두배 나이를 지나도 신세계는 크게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판도라 상자를 연것처럼 두려움, 멸시, 생존, 경쟁 그런것들이 튀어나오고 마지막 희망대신 술의 위로정도가 생겨났다랄까.


오늘은 그 술의 위안을 금한지 19일째-즉 또다른 “19금”의 날이다.

제목은 조금 장난스럽게 붙였지만, 사실 오늘은 정말로 평화로운 하루였다.


술을 끊고 맞이하는 열아홉 번째 날, 특별한 사건도 없고, 각오를 다잡는 긴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극기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있어야 글을 읽는 사람이 생길템데 이거 원 평양냉면을 처음 먹는것 마냥 심심하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아무 생각 없음’이 이상하게 좋다.


예전의 무념무상은 술에 취해 머리가 멍해졌을 때 찾아왔다. 흐릿한 정신 속에서 의욕도 사라지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겉으로는 잠시 쉬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공허였다.


지금의 ‘아무 생각 없음’은 그때와 다르다. 머리가 맑고, 마음이 고요하다. 억지로 비운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고요해진 상태. 잡념에 시달리지 않고, 욕심에도 흔들리지 않는 오늘은 그저 담담했다.


19일 동안 금주를 이어오며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숙면, 가벼워진 아침, 사소한 피로의 회복. 평소에 입던 옷이 늘어닌건지 헐렁하게 느껴짐 정도? 하지만 오늘은 그 변화조차 크게 의식하지 못할 만큼 조용했다.

어쩌면 이 평온이야말로 금주가 선물하는 진짜 힘일지도 모른다.


100일의 여정 중 아직 19일째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미 알 것 같다. 술을 끊는다는 건 단순히 절제의 싸움이 아니라, 이렇게 잔잔한 평화를 조금씩 되찾는 과정이라는 걸.심심해서 뭘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걸.


오늘의 나는 특별히 잘해내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술 없이 하루를 지났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이것이 나의 19금의 평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