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주씨의 백일금주
오늘의 술:네델란드 그로쉬 Grolsh weisen
바나나향과 바닐라향 스트러스함과 밝은 꽃향기가 가볍게 다가오는 네델란드에서 즐겨마시던 맥주
일에 몰두하다 보면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게 되고, 눈이 피곤해진다. 잠시 눈을 감고 다리를 뻗어 쉬어도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연구실 밖으로 나와 걷는다. 학교 구석구석을 산책하며 길도 익히고,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몇 번 걷다 보면 좋아하는 코스가 생기는데, 어느 날은 일부러 반대편 끝까지 가보았다. 그곳에는 축구학과 전용 천연잔디 구장이 있었다. 여름 햇살 아래 유난히 푸른 잔디는 풀냄새를 진하게 풍겼다. 이미 어른 몇 분이 맨발로 잔디 위를 걷고 있었고, 나도 양말을 벗어 따라 걸었다.
오랜만에 맨발로 밟는 잔디는 오감을 깨우는 경험이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촉, 풀내음, 바람, 머리 위로 떠가는 구름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생생했다. 연구실의 갇힌 공기와는 달리 시선은 멀리 뻗어 나가며 마음이 환기됐다. 철학자 칸트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해서, 사람들은 그의 발걸음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사람은 머리로만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사고한다’는 말도 있다.
걷는 행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사유의 전환을 이끈다. 발걸음이 멈춘 사고를 흔들어 깨우고, 닫힌 마음에 창을 열어준다. 금주를 하거나 어떤 금단 현상이 있을때, 생각이 하나에 고착되었을 때 걷는 것 만큼 좋은 것이 없다. 걸으면 호흡을 규칙적으로 하고 몸이 데워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강아지가 산책을 나와 킁킁거리며 세상을 탐험하는 즐거움이 이해되는 것도, 어쩌면 발걸음 속에 사유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