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건축가의 공간읽기

by 윤소장

마이너리한 공간에 대한 리포트


차 없는 내가 요긴하게 쓰는 것이 공유 자동차다. 대표적인 그린카, 쏘카를 쓰는데 집 근처에 요긴하게 쓰던 공유존이 사라졌다. 딱 좋은 거리에 붐비지 않게 잘 써왔는데 왜 사라진 것이지? 그런것이 사라질 땐 공지나 말도 없다.

대학 시절부터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학교 앞에는 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작은 가게들은 크지 않았고, 눈에 띄는 간판도 없었다. 대신 주인의 취향이 분명했고, 음악이 조금 느렸고,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 머물러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가게들은 하나같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한 학기를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대 앞이라는 상권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들어오는 것은 늘 비슷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이미 검증된 브랜드, 실패하지 않는 선택. 그렇게 거리는 점점 ‘예측 가능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 무렵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다수의 판단이 미래를 결정하고, 소수의 다른 가능성은 미리 제거된다.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체포되는 세계. 효율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숨 막히는 사회. 그때는 SF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꽤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요즘 우리는 선택을 덜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선택된 것 중에서만 고른다. 자동차 색은 흰색이 압도적으로 많다. 중고로 팔기 쉽기 때문이다. 공간도 비슷하다. 오래된 건물이 철거될 때, 무엇이 들어올지 기대하기 전에 이미 답을 안다. 아파트다. 서울처럼 변화가 빠른 도시는 특히 그렇다. 도심 한복판에 남아 있는 작고 정겨운 공간들은 대부분 재개발 구역 안에 있다. 머지않아 사라질 예정이라는 뜻이다.

건축도, 도시도, 소비도 점점 ‘잘 팔리는 답’만 남긴다. 대기업은 작은 가게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잘되는 곳과 협업하고, 인수하고, 공식을 추출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발굴하듯, 새로운 자극을 흡수해 다시 대량 생산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는 것은 많지만, 사라지는 것도 많다.


이때 문득 떠오른 문장이 있다. 이진우기자가 써준 <우주를 짓다>의 추천평이다
“경제적인 집이란 싸게 잘 지은 집이 아니라, 잘 포기한 집이다.”

이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경제적이라는 말은 효율과 절약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실은 선택의 문제다. 무엇을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의 문제. 아름다운 선택은 늘 포기와 양보 위에 놓인다. 모두를 담으려는 집은 결국 아무 것도 품지 못한다.

좋은 건축가는 모든 꿈을 실현해주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꿈들을 하나씩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어떤 것은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어떤 것은 지금은 아프지 않게 접어두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문득, 이미 버려진 꿈들의 조각더미를 다시 들여다본다. 그중에 아직 살려볼 수 있는 게 없는지, 주섬주섬 살펴본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같은 답을 향해 달릴수록, 소수의 다른 가능성은 더 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하나의 정답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작은 가게들이, 작은 집들이, 조금 느리고 비효율적인 선택들이 살아 있어야 우리는 덜 답답하고 덜 지루하게 산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택이 아니라, 더 잘 버려진 선택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버림의 과정이 폭력적이지 않도록, 누군가는 옆에서 기다려주고 다독여야 한다. 건축이든, 도시든, 삶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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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4.jpg 더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더 적은선택을하는 요즘, 색상뿐만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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