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공간읽기
디스크 조각모음
컴퓨터가 느려질 때 가장 먼저 해보는 조치가 있다. 필요 없는 파일 정리, 휴지통 비우기, 그리고 디스크 조각모음. 하드디스크 안에 흩어진 가상의 공간 조각들을 한곳으로 모아주는 이 작업은 생각해보면 꽤 공간적인 발상이다. 그 안에는 정말 면적과 부피를 가진 공간이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삶도 비슷하다. 집이 아무리 넓어도 둘 데가 없고, 옷이 그렇게 많은데도 입을 옷이 없다. 필통에는 펜이 넘치는데, 막상 제대로 나오는 펜은 하나도 없다. 결국 모두 정리의 문제다.
컴퓨터 속 오래된 파일과 찌꺼기 같은 로그를 지우고, 휴지통을 비우고, 다시 조각모음을 하듯이 집안의 물건도 옷도 필통 속 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복된 것, 오래되어 기능하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 기능이나 색상, 높이가 비슷한 것끼리 모아두면 공간의 효율도 시각적인 간결함도 훨씬 좋아진다. 옷을 정리할 때는 색을 맞추고, 가구나 책을 정리할 때는 높이를 맞춘다. 그 작은 정렬만으로도 공간은 훨씬 차분해진다.
『우주를 짓다』에 등장하는 아주 특이한 공간인 갤러리 역시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흩어진 기능을 모으는 것, 정확히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수납 기능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일이다. 보통 안방에는 드레스룸이, 주방에는 팬트리나 다용도실이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수납들을 각각 두지 않고, 디스크 조각모음을 하듯 한곳에 모아 붙였다. 그리고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자, 뜻밖의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비워서 생긴 공간이 아니라, 모아서 만들어진 여백이었다.
새해의 첫 주다. 디스크 조각모음을 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하루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조금 확보하고, 그 빈자리에 희망과 새해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아도 괜찮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