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공간게임

건축가의 공간읽기

by 윤소장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


스포츠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를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체력이라 하고, 누군가는 개인의 기량이나 경험, 혹은 운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은 선수 개인의 능력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건축가의 눈으로 경기를 보다 보면, 승부의 핵심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내가 보기엔 결국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이다. 건축가의 가장 강력한 무기 역시 공간을 읽고 지배하는 능력이다.


최근 나는 「신인 감독 김연경」을 재밌게 봤다. 선수 개인이 아니라 감독의 시선으로 경기를 바라보는 해설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개별 플레이에 집중하던 시선이 한 발 물러서자, 경기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승부를 가르는 순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비어 있는 공간을 먼저 발견하고, 그곳에 공을 넣는 쪽이 이긴다. 수비가 닿지 않는 공간, 시선이 미처 따라오지 못한 틈에서 점수가 발생한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스포츠는 공간을 지배하는 게임이다. 축구와 농구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추상적인 스포츠라 할 수 있는 바둑조차 흑과 백이 공간을 나누는 싸움이다. 바둑판 위의 집 한 칸, 한 칸은 그 자체로 점수이자 영향력의 경계다.


서로의 구역이 선으로 나뉜 탁구나 테니스, 배구 같은 게임조차도, 결국 승부는 상대의 빈 공간을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 특히 배구는 인상적이다. 네 번 안에 공을 처리해야 하는 제한 속에서, 공격수의 위치와 공격 루트가 동시에 상대 수비의 빈틈을 정확히 겨냥한다. 짧은 순간에 공간을 계산하고 점유하는, 놀라울 만큼 정교한 전술이다. 그래서 스포츠게임을 전쟁의 축소판이라 부르나 보다. 몸싸움이 있고, 전장이 있으며, 전술과 전략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건축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건물에는 화재라는 돌발 상황에 대비한 장치가 있다. 스프링클러다. 하나의 스프링클러는 일정한 반경만을 커버할 수 있다. 이 반경들이 빈틈없이 겹쳐 배치되어야 화재라는 ‘적’을 놓치지 않는다. 반경 사이에 공백이 생기면, 그곳은 방어되지 않은 공간이 된다.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공간을 점유하는 모습은 스프링클러 배치와 닮아 있다. 수비가 촘촘히 조직되었는지, 빈틈은 없는지, 누가 어느 범위를 커버하고 있는지. 다만 차이가 있다면, 스프링클러는 움직이지 않고 선수는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점이다.

스프링클러의 반경을 떠올리다 보면, 권투선수 출신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말이 생각난다.

내 손이 뻗는 곳이 곧 나의 영향력이다.

건축도, 스포츠도 결국 같다. 내가 닿을 수 있는 공간, 내가 지켜낼 수 있는 범위, 내가 먼저 점유할 수 있는 영역이 곧 힘이 된다. 경기장에서 그 힘은 승점으로 환산되고, 건축에서는 안전과 질서, 그리고 공간의 완성도로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포츠 경기를 보며 공간 점유율을 생각하고, 동시에 머릿속으로 스프링클러의 배치를 그려본다. 건축가의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004-1.jpg 천장에 달린 스프링클러 헤드
004-2.jpg 모든 공간을 커버하게 배치하는 스프링클러


004-3.jpg 하지만 공간에 구획이 생기면 살수반경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생긴다.
004-4.jpg 저 빈 공간을 보면 감독님은 '식빵 저기 공격하라고!!' 할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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