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공간읽기
흑백요리사 시즌2-건축가의 시선으로 공간읽기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시즌2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 만든 예능은 잘 설계된 건축 도면과 닮아 있다는 것. 우연히 재미있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계산된 구조 위에 감정과 서사가 얹힌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힘은 명확한 개념 설정이다. 흑과 백, 정통과 비주류, 엘리트와 재야. 이분법적 구도를 전면에 내세우되, 그것을 단순한 대비로 소비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배경과 철학을 가진 인물들이 요리라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 충돌하고 섞이며, 결국 하나의 농축된 서사를 만든다. 마치 여러 재료를 오랜 시간 졸여 깊은 소스를 만드는 과정처럼, 철학적으로도 꽤 밀도 높은 맛을 낸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이 시리즈는 무엇보다 공간 연출이 탁월하다. 화면에 담기는 공간의 크기는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만 봐도 최소 수십 미터의 깊이가 느껴지고, 그 이면에는 더 많은 장치와 동선이 숨어 있을 것이다. 시즌1에서 이미 공간의 압도감은 증명됐다. 천장에서 거대한 두부가 내려오던 ‘무한 요리 지옥’ 장면은 지금 봐도 강렬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백의 덩어리. 처음엔 당혹스럽고, 곧 상징으로 읽힌다. 재료를 ‘하사받는’ 장면이자, 인간을 시험하는 무대 장치였다.
시즌2는 그 설계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 흑백의 일대일 대결을 넘어, 남한 팔도의 지도가 바닥에 펼쳐지고 지역별 식재료가 유리 박스에 담겨 올라오는 장면은 거의 박물관 전시에 가깝다. 귀한 것을 귀하게 보여주는 방식. 몇 해 전 리움미술관에서 열렸던 조선백자 전시가 떠올랐다. 건축가가 설계한 전시 공간에서, 백자는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라 ‘존재’로 다뤄졌다. 흑백요리사 시즌2 역시 식재료를 그렇게 다룬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공간이 서사를 말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시즌1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두부는 ‘무한 요리 천국’으로 변주되어, 세상의 온갖 식재료가 담긴 팬트리가 내려온다. 반대로 ‘무한 요리 지옥’은 땅이 갈라지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란 잎채소가 등장한다. 두부처럼 순수한 형태,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한 채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치다. 설계 언어는 유지하되, 대응되는 구도를 하나씩 추가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린 셈이다.
편집 역시 건축적이다. 세미 파이널 라운드에서 점수를 일부러 지연시키고, 마지막 핵심 점수를 한 번에 공개하는 방식은 마치 구조 계산서를 뒤로 숨겨두고 하중 실험의 결과만 보여주는 것 같다. 지루해질 수 있는 반복 구간은 과감히 생략하고,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순간에 정보를 몰아준다. 감정의 동선을 정확히 알고 있는 편집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예능”을 넘어선다. 공간, 구조, 리듬이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의 창작물이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요리 경연이 아니라 잘 지어진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드라마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설계가 있을 때, 우리는 왜 이 프로그램이 재미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끝까지 보게 된다.
건축가 윤주연
건축사무소 적정건축ofaa 창립자
<우주를 짓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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