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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po Apr 30. 2023

1.독꾸 (독립서점 꾸미기라는 뜻)

실시간 창업기 김해독립서점 냉장서고


공간이 넓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모든 걸 채워봐야 시행착오를 겪으며 대부분 바뀔 수밖에 없다는 걸 지난 여러 다른 분야의 경험에서 깨달은 한 가지였다.

초기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하는 실수가 '자아실현'이다. 자아실현을 위해 창업을 하는 건 순서가 맞지만, 정작 창업은 사업체가 굴러가야 하는 일이다. 자아실현의 소꿉놀이는 아닌 것이다. 서비스를 생각할 때 고객으로 '자기 취향'을 두게 되고, 공간을 만들 때는 '자기만족'으로 흘러간다. 이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자기만을 위한 서비스나 상품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놓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잘해놨는데 왜 안 팔릴까?라고. 잘 팔릴 거 같은 걸로 가볍게 채워보고 반응을 보며 그때그때 빠르게 바꿔야 한다. 그게 싫다면 자기만족의 서비스나 상품을 그냥 하면 된다. 단순한 건데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사람들도 좋아해서 돈이 벌리기를' 바라는 욕심은 어쩔 수 없다.

슬라이딩 유리문을 열면 안과 바깥 마당이 연결되어 공간감이 좋았다.
서점 바로 앞의 마당이다. 통과 되어서 작은 실내에 비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안쪽 공간인데, 전면 선반의 반대편이고 에어컨, 전선 등이 모여 있어 주인 공간으로 딱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작은 공간인 덕분에 가볍게 채우고 전체를 바꾸는 일도 어렵지 않을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앞편에서 말했듯, 서점이 책을 많이 둔다고 절로 장사가 되는 곳이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니까 여러 가지 시도를 필연적으로 해야만 한다. 내가 만드는 책의 확장과 이 지역의 커뮤니티 거점으로 성장하는 여러 가지 활로를 모색해야만 하니까 언제든 변신 가능한 수준에서 공간을 채우고자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좋은 조건인 게, 보통 서점에서 잘 쓰지 않는 색상이 칠해져 있고, 벽면에는 이전에 이용하셨던 분이 설치해 둔 튼튼한 선반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었다. 보통의 서점들은 하얀색 배경인 경우가 많다. 다양한 책이 놓이고, 나무색 가구가 대부분이라 이쁘기도 하다. 하지만 의외로 청록색에 가까운 이곳의 색도 나무색과 잘 맞는 편이었다.

취향껏 갖다놓을 물건들을 여럿 두고 이리저리 놔둔다.

그래서 굳이 다른 색으로 바꿔야 할 만한 이유가 없었고, 약간 아쉽게 손상이 가 있는 곳들도 전체 배치에 따라 중요한 위치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꼭 해야 한다면 모든 걸 다 바꿔야 하니, 시간과 비용이 필연적으로 들어간다. 심지어 시간도 사실상 비용으로 환산된다. 즉, 초기비용이 잔뜩 들어간다. 하지만 정작 그런 인테리어가 비용으로 되돌아오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쁘게 해 두면 사람들이 많이 온다. 이 말은 맞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면 자연스레 비용으로 모두 바뀌는가? 그나마 식당이나 카페처럼 공간에 들러서 지출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유의미하다. 그러나 서점이 이쁘면 '사진'만 찍고 가면 된다. 원래도 서점은 남는 시간에 구경을 하기 좋은 공간이지 구매가 빈번하지 않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오히려 진짜 책을 구경하고 사러 온 고객들보다 이쁜 인테리어를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오히려 전체적인 매장의 상황에는 마이너스일지도 모른다. 오는 사람이 많으면야 일단 좋지만, 좋은 점만 있다고 할 순 없다. 실제로 여러 독립서점들을 가면서 종종 겪었던 상황은 책 살 거 아니면 오지마라거나, 사진 찍지 마라거나, 이런 주문들이 있었다. 불친절한 사장님의 응대도 잦았다. 모든 곳이 그런 건 아니지만,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는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결국 카페를 하거나 커뮤니티로 수익을 전환시키는 이유도 모두 있는 것이다. 그냥 대다수의 일반 방문자가 늘어나는 것은 실질적 매출에 좋다고 볼 수 없지 않은 종목인 셈이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아지면 제대로 살펴보기가 힘들다. 혹여나 공간이 예뻐서 많은 사람이 오게 하고 나서 그들 중에 이곳을 재방문시키는 콘텐츠로 붙잡아 둬야 한다면, 반대로 콘텐츠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그 타깃을 구체화하여 마케팅을 하는 게 오히려 효율적이다. 즉, 궁극적으로 다수에게 관심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독서는 대중문화가 전혀 아니니까.

선반에 책을 놓는 구도를 미리 실험해본다. 옆으로 두냐 전면으로 두냐.

 즉, 인테리어에 비용을 쏟는 일은 '자기만족' 이외에 매출을 띄우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섰다.

물론 그냥 하기 싫은 것을 변명하는 걸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공간들이 인스타에 핫해서 다들 사진 찍으러 방문을 하지만 1회 방문 후 사진을 남기고 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리고 핫하다는 기준이 꼭 예쁘다에만 있지 않다. 노출 콘크리트, 그냥 공사 덜된 공간 등을 찾아가기도 한다. 즉, 인테리어를 잘해둔다는 것이 필수적인 정답지가 전혀 아닌 셈이다. 혹시 정말 공간을 잘 꾸미지 않은 게 유일한 문제라고 생각되면 그때라도 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기본 공간의 장점에 어우러지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채워보는 일만 남았다.

이동식 북 트롤리. 바깥을 열어두고 책장을 밖에 내기 위해 일부러 마련했다. 

일단 내가 보유한 것들 중 가져다 놓을 만한 것들을 채우고, 전체에 맞춰서 몇 가지 가구를 더 주문했다. 공간이 크지 않으니 다행히도 몇 개 아닌 걸로 금방 채울 수 있었다. 애초에 책은 기본 수준을 채우고 나머지는 내가 만드는 독립출판물과 관련하여, 앞으로 해나갈 다양한 커뮤니티를 구체화하며 구성해야 했기에 서로 다른 모습의 물건들이 곳곳에 배치되었다.


양 옆의 판을 접거나 펴서 사이즈가 바뀌는 책상이다. 접어서 공간은 넓게 유지하고 커뮤니티용으로 펼칠 수 있게 변신 테이블을 마련했다. 의자도 4갠데 2개는 테이블 안에 넣어뒀다.


하지만 여기에 앞서 필요한 건 사실 서류 행정 일들이 있다. 무형의 영역도 매우 많다. 이는 다음 번에 다시 말해보자.



김해 독립 서점 <냉장서고> 창업기. 실내 인테리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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