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는 더욱더 게임에 몰입했다. 학교도 가지 않고 현실을 외면했다. 집에서 아기가 울면 귀에는 헤드폰을 끼고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며칠을 지켜보던 정우 아버지가 정우를 불러 앉혔다.
“유전자 검사해 봤다.”
“….”
“추씨 집안 씨가 맞다.”
“….”
정우는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애 어미를 찾는 것과 별개로 네가 아비다. 너 대학 마칠 때까지는 우리가 애 키우는 걸 도와주겠지만 양육비는 네가 벌어서 보탤 생각 하고 있어라. 너 재수시킨다고 우리도 여유자금이 없다.”
정우는 이마가 뜨끈해지는 걸 느꼈다. 그때서야 어머니 품에 안겨있던 그 어린 아기에게 눈길이 갔다. 본인처럼 대책 없는 아들로 키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정우는 일단 학교로 복귀했다. 전액 장학금을 노려야 했다. 기말고사에 최선을 다했지만, 장학금을 놓치고 말았다.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아이 문제로 방황하는 사이, 새로운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석진한
20세, 대국대 컴퓨터공학과 1학년.
182cm, 73kg.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 깔끔한 성격에 지적인 이미지. 누가 봐도, 어디에 내어놓아도 빛이 나는 엄친아였다. 눈이 부시게 반듯했다. 공부만 하기 아까운 외모였지만 뇌가 제일 섹시해 보였다.
정우는 진한이 과 일등이자 전액 장학금의 주인공이라는 얘기를 듣고 진한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진한은 컴퓨터 실습실에 늦게까지 남아서 열심히 코딩 중이었다. 다양한 변수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버그를 잡고 있었다. 학교 숙제도 아닌 앱 개발에 열중했다.
정우가 진한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네가 이번 학기 전장이라며?”
진한이 정우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인사했다.
“예. 선배님.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내가 선배는 아니고 같은 학번이지.”
정우는 진한이 본인이 재수생 1학년임을 알면서 그리 말한다는 걸 눈치챘다. 둘은 ‘Top of the top’의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서로를 떠보고 있었다.
“아 생각났어요. 신입생 OT 때 소개 기억났습니다.”
진한이 어색하게 연기하고 있음을 정우가 눈치챘다.
“근데 이거 기업에서 쓰는 앱 같은데? 앱 개발 알바 중?”
“제가 돈맛을 좀 일찍 알아서요.”
“1학년이 공부도, 알바도 쉬엄쉬엄해.”
“엔진에 윤활유를 좀 발라줘야 녹슬지 않죠. 학교에서 배우는 건 너무 쉬워서.”
“핫, 자신감 쩌네. 너 전화번호 하나만 찍어줘라. 연락할 일이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정우는 진한의 외모와 비상한 머리, 돈을 향한 집념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다고 직감했다.
“또 보자.”
정우는 진한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 정우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얘기해 봐.”
“첫돌 때 만드셨다던 제 통장에 있는 돈 지금 좀 써야겠습니다.”
“뭐 하려고?”
“학교 앞에 호프집 하나 차려서 돈 벌 생각입니다.”
“장사가 그리 쉬운 줄 아냐?”
“안 쉬운 줄 압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뭘 한다고.”
결국 정우가 아버지를 이겼다. 정우는 대국대 앞에 있는 망해가는 호프집을 권리금 없이 인수해 간판을 달았다.
호프집 ‘핸섬 가이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우는 기존에 하던 게임에는 흥미를 잃었다. 돈을 향한 집념에 불타올랐다. 비혼부 인생은 게임이 아니라 실전이었다.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기획한 듯 진한을 찾아갔다.
“너 나랑 동아리 하나 만들자.”
“전 그런 거 관심 없습니다.”
“놀면서 돈 벌 수 있어.”
진한은 정우의 말에 귀를 열었다. 정우의 계획에 진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행정실로 가서 정식으로 동아리 신청서를 제출했다. 동아리 회장 칸에는 ‘추정우’라고 썼다.
초기 지원금을 받은 정우는 캔맥주 4캔을 사서 그리로 향했다. 쓰다 버려진 집기들이 뒹구는 핸섬 가이즈 호프집.
정우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줄 그곳.
정우는 핸섬 가이즈의 미래를 생각하며 맥주 3캔을 벌컥벌컥 마셨다. 다 마신 빈 깡통을 바 테이블 위에 일렬횡대로 세웠다. 바닥에 뒹굴던 장난감 공기총을 집어 들었다.
첫 번째 맥주 캔을 향해 조준했다.
“석진한, ‘핸섬 가이즈’의 첫 번째 멤버가 된 걸 축하한다. 우리 잘해보자.”
정우는 빈 캔을 쓰러뜨리며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 ‘핸섬 가이즈’는 핸섬 가이즈 호프집에서 정식 출범했다.
‘핸섬 가이즈’는 남자들의 자립을 위한 경제학 공부 동아리였다. ‘핸섬 가이즈’는 그렇게 정우의 호프집 핸섬 가이즈와 MOU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