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핸섬 가이즈’는 비공식적인 가입기준이 있었다. 매력적이고 잘생긴 외모는 필수조건이었다.
더불어 성적 증명도 해야 했고 체력 테스트도 통과해야 했다. 얼굴만 믿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인생 대충 사는 애들은 추정우 눈에 차지 않았다.
예외 조항이 있긴 했다. 사랑의 열병으로 F 학점 한 개 정도는 참작한다는 조항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D와 E로 도배한 성적표는 가입 불가였다. 어리바리하면서 뺀질거리는 속수무책들은 가입시키지 않았다. 외모도 성적도 체력도 모두가 평균 이하인 아이들이 찾아올 때면 정우는 이리 말했다.
“당신이 잘 생겼다고 생각하나?”
그 말로 평범한 아이들을 기죽였다. 그러면 그들은 동아리 회장, 정우의 얼굴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아나갔다.
가입조건이 너무 까다로웠을까?
2학기가 시작되어 다른 동아리들은 활동을 시작했는데, 핸섬 가이즈는 회장 1명, 회원 1명 외에는 단 한 명도 모집하지 못했다. 회장 정우가 그리는 큰 그림을 시작할 수 없었다. 고뇌에 차 있던 정우에게 깨달음이 왔다. 그는 진한에게 공감을 얻고자 말을 꺼냈다.
“잘생긴 애들은 궁해 본 적이 없어.”
“그쵸. 그들에겐 그 얼굴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디폴트 값이니까요.”
“맞아. 핸섬 가이즈? 그들에겐 어떤 호기심도 생기지 않을 거야.”
“그렇긴 하죠.”
“안 되겠다. 직접 찾으러 다니자.”
정우는 진한을 데리고 캠퍼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남자애들이 많은 공대 건물 쪽에서 농구를 하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갑자기 진한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이~ 자광 정우빈!”
진한은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불렀고, 가벼운 점프로 리바운드를 잡아낸 한 남자가 휙 돌아보았다.
“오~ 석진한. 오랜만이다.”
정우빈의 얼굴을 확인한 정우는 크게 안도했다. 월척을 낚았다 생각했다. 정우가 진한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자광은 무슨 뜻이야?”
“‘자체 발광’ 줄임말이요.”
“광이 나긴 하네. 근데 애인 없는 거 확실해?”
동아리 가입자에게는 밝힐 수 없는 비밀스러운 가입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정우와 진한만 아는 조항이었다. 현재 애인이 없어야 했다. 그리고 6개월 이내에 여자 친구를 사귀면 안 된다는 서약도 가입 후 받을 예정이었다.
“고딩 때 사귄 여자애 있었는데 중국으로 유학 갔어요.”
“중국에 있다니 안심이군. 이후에 다른 여자는 없고?”
“우빈이 순정파라 아직 그 애 못 잊었을걸요.”
“오~ 굿 보이!”
“어때요?”
“바로 가입시켜.”
#정우빈
20세, 대국대 미래자동차공학과 1학년.
187cm, 75kg. 어깨너비 57cm.
어마어마한 키에 늘씬한 몸매. 온화하지만 강해 보이고 강해 보이지만 따뜻한 눈빛. 별처럼 자체 발광하는 인간. 구김살 없는 소년의 얼굴. 넓은 어깨만큼 모든 걸 포용할 것 같은 여유로운 남자. 우빈 역시 공부만 하기 아까운 외모였다. 농구를 하든지 모델을 하든지 병행해줘야 했다.
우빈은 진한과 고교 동창이란 이유만으로 핸섬 가이즈에 가입했다. 경제적 자립에 관심도 없는 부잣집 아들이 의리 하나로 가입신청서에 사인했다.
정우는 든든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흔들림 없는 뇌섹남, 여심을 사로잡을 순정남은 준비 완료. 이제 남은 건….’
정우는 차도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소 까칠하고 차가운 나쁜 남자를 여자들은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남자들에 열광하는 이상한 여자들 부류가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를 통해 학습했다. 다른 여자들에게는 차갑고 나한테만 무심한 척 뱉는 정다운 말에 여자들이 좋아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을 그 남자를 찾아야 했다.
호프집 핸섬 가이즈 관리비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동아리 핸섬 가이즈는 차도남을 찾지 못한 채 아쉬운 상태로 활동을 시작했다.
동아리 회장 추정우, 부회장 겸 총무 석진한, 홍보부장 정우빈이 캠퍼스 잔디밭에 모였다. 호프집 개업 행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 정우가 입을 열었다.
“동아리 SNS는 진한이가 하나 만들어서 관리해. 경비도 진한이가 정리해서 나한테 넘기고. 오픈 행사 사회 및 세팅, SNS에 올릴 사진 등은 우빈이가 준비하고.”
우빈이가 정우에게 물었다.
“형, 술집 오픈 행사에 동아리 SNS는 무슨 상관이에요?”
“윈윈전략이지. 차차 알게 될 거야.”
“혼자 다 하기에는 너무 일이 많을 것 같은데, 한 명 정도 더 알아봐야지 않을까요?”
우빈이 걱정 어린 말투로 얘기했다. 정우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때였다. 잔디밭 뒤편 벤치에서 두 남녀가 하는 얘기가 들렸다.
“이번이 열 번째 고백하는 거야. 너는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어?”
“어.”
“내가 그렇게 여자로 별로니?”
“···.”
“난 너 때문에 미칠 것 같은데, 넌 내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네 감정까지 봐줘야 할 의무, 나한테 있어?”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봐줄 수도 있잖아.”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그 남자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검은색 화구통을 챙겨 메고는 잔디밭 사이 돌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정우는 유심히 쳐다보았다. 철벽남, 그가 궁금해졌다.
남겨진 여자는 벤치에 앉아 울고 있었고 그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하는 듯했다.
“점심 먹었어?”
“잠은 잘 잤고?”
아까 전, 고백하던 그녀에게 하던 차가운 말투는 온데간데없었다. 검은 모자챙으로 얼굴의 반이 가려지는 그 남자가 정우 옆을 지날 때였다. 정우는 그 모자 속에서 찰나의 미소를 보았다. 우빈도 그 모습을 보았다.
우빈이 정우에게 그에 대해 아는 것을 말했다.
“건축공 온세종. 쟤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애들만 10명이 넘는다나? 고등학교 때는 팬클럽도 있었단 소문도 있고요.”
정우는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이내 아쉬웠다.
‘쟤는 다 좋은데 여자 친구가 있나 보네.’
그렇게 정우는 아쉬운 눈길로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온세종
20세, 대국대 건축공학과 1학년.
181cm, 70kg. B형.
무심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얼굴. 가벼움과 깊이감이 혼재된 얼굴. 쳐다보기만 해도 빨려들 것만 같은 깊은 눈을 가진 남자. 장난기 있지만 가볍지 않고, 성숙하지만 무겁지 않은 남자. 공부만 하기 아까운 외모였다. 여심을 홀리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