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을 마냥 미룰 순 없었다. 정우는 핸섬 가이즈 호프집 SNS를 관리했고 진한은 핸섬 가이즈 동아리 SNS를 관리했다. 호프집 SNS 메인 프로필은 시원한 맥주 사진, 동아리 SNS 메인 프로필은 진한의 사진이었다. 코딩대회에서 1등을 해서 상금 500만 원을 탔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500이라는 숫자와 함께 진한이 웃고 있었다.
메인 프로필을 등록하자마자 진한에게 메시지가 쏟아졌다.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호감을 표했다. 멕시코인 한 남자가 ‘Merry me’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역시 잘 생기면 피곤했다.
핸섬 가이즈 호프집은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오픈했다. 제대로 된 주방장도, 서빙 알바도 없이 급하게 열게 되었다. 준비된 것이라곤 여성들을 위한 이벤트가 전부였다.
여성들을 위한 오픈 행사 특혜
_ 테이블당 여자 멤버가 3명 이상일 경우, 맥주 500cc 무료 제공
_ SNS에 호프집에서의 사진을 올릴 경우, 맥주 500cc 쿠폰 증정
진한은 핸섬 가이즈 SNS에 이벤트와 함께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낼 말을 함께 올렸다.
#최애단골맥주집
#나오늘집에안갈래
#뇌섹남과스토쿠한판하자
#특별게스트자체발광정우빈
#정우빈우유빛미소최강기럭지위엄
순식간에 하트가 늘었다. 핸섬 가이즈 동아리 SNS에는 항상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방문이 잦았다.
첫 번째 여자 손님 3명이 호프집을 방문했다.
“어서 오십시오. 핸섬 가이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정우가 손님들에게 인사했고 주문을 받았다. 정우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 손님들은 내부를 살폈다. 진한과 우빈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우는 그들을 쉽게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맥주 1,000cc 주문할 때마다 살짝씩 등장하는 장면을 구상 중이었다. 정우는 핸섬 가이즈 애들에게 주문했다. 진한은 주방에서 마른안주 담는 것을, 우빈은 맥주잔을 채우는 일을 하도록 했고, 30분에 한 번씩만 나와서 얼굴을 비추라고 했다.
정우는 여자 손님들이 주문한 맥주 500cc 3잔과 서비스 1잔까지 4잔을 나르다가 팔이 후들거려 그만 놓치고 말았다. 테이블 위에 잔이 미끄러지긴 했지만, 바닥에 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맥주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가슴 쪽으로 튀고 말았다.
마음이 급해진 정우는 테이블 위에 휴지를 뽑아서 그녀의 젖은 원피스에 갖다 대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처음이라.”
“어머! 어딜 만져요? 쫙!”
그녀가 정우의 뺨을 갈겼다. 시래기 같은 정우는 테이블 위에서 휘청했고 500cc 잔과 함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굴러떨어진 잔 유리가 깨졌고 당황한 정우가 그 유리 조각을 짚는 바람에 손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소란한 소리를 듣고 우빈이 달려왔다.
“형!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
우빈은 피가 나는 정우의 손에 휴지를 갖다 대고 지혈했다. 젖은 원피스 그녀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우빈은 처참하게 바스러진 시래기 같은 정우를 끌어내어 계산대 옆 소파로 데려갔다.
우빈은 구급상자에 있던 알코올을 꺼내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에 밴드 처리까지 해주었다.
“형은 무거운 것 들지 마요. 힘도 없으면서. 제가 할게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학생들은 우빈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SNS에 ‘핸섬 가이즈 호프집에 마음 착한 남자가 알바를 한다. 그의 얼굴은 더 착하다.’라는 문구를 마구 올렸다.
500cc 쿠폰보다 그 남자에게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정우는 그 모습을 힐끔힐끔 보면서 본인의 작전대로 잘 되어간다는 느낌에 속으로 씩 웃었다.
그때 마침, 다른 테이블에 남자 1명, 여자 2명이 들어와 앉았다. 셋 다 검은색 길쭉한 화구통을 메고 왔다. 계산대 바로 앞자리에 앉아 500cc 한 잔씩을 시켰다. 남자 1명과 여자 1명은 커플인 듯 붙어 앉았다. 정우는 그들의 얘기가 흥미진진해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었다.
“오늘 김수연이 왜 다리에 깁스하고 학교 온 줄 알아?”
“왜?”
“어제 기숙사 앞에서 난리 났었대.”
“왜, 왜?”
“김수연이 2층에서 뛰어내렸대.”
듣고 있던 남학생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엥? 왜?”
“김수연이 어제 술 마시고 온세종 찾아오라고 깽판 치고 난리가 났었나 봐. 그래서 남자 선배들이 온세종 불러서 김수연 기숙사에 데려다주라고 했대. 그 까칠이가 선배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데려다줬나 보더라고. 김수연이 2층 자기 방에서 창문 밖으로 걔한테 사랑한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는데, 대답도 안 하고 가니까 그냥 홧김에 2층에서 뛰어내렸다나 봐.”
“왜? 죽으려고?”
“2층에서 뛰어내린다고 죽겠냐?”
“그럼?”
“온세종 쫓아가려고 그랬겠지. 기숙사 문이 폐쇄되니까 창문으로 뛰어내렸다나?”
“헐…. 집착이 대단하네. 걔 열 번이나 고백했는데 계속 차였대.”
“밤에 구급차 오고 김수연 부모님 오고 난리가 났나 보더라고.”
거기 모인 3명 모두 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부모님이 온세종이 누구냐고 당장 데려오라고 소리 지르고 그랬나 보더라고. 외동딸 다리가 부러졌으니 그럴 수밖에.”
“여자애들은 온세종 걔가 그리 좋나? 난 재수 없던데?”
남학생이 온세종이 거슬리는 듯 볼멘소리를 했다.
“철벽 치는 모습이 뭔가 있어 보이긴 해. 근데 걔 여자 친구 있는 것 같던데?”
“맞아. 매일 점심시간만 되면 전화하는 것 같던데?”
남학생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거 자기 엄마랑 통화하는 것 같던데? 마마보이 같아.”
정우는 그들의 말을 듣고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때 잔디밭에서 들었던 온세종의 말, ‘밥은 먹었냐? 잠을 잘 잤냐?’는 그 다정한 말은 어머니께 한 말이었다면 딱 들어맞았다.
의미 없는 여자애들에게는 냉정하게 철벽치고 내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대하는 남자! 정우가 찾던 핸섬 가이즈 3번째 멤버로 제격이었다.
“온세종! 기다려라. 너 어떻게든 내가 영입한다.”
추정우 회장은 혼잣말로 의지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