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러첼 재수종합반 실장입니다.”
“아, 예.”
“추정우 학생 학부모님 되시죠?”
“예, 맞습니다.”
“정우 학생이 대국대 컴퓨터공학과에 수석 입학하게 되어 학원비를 환급해드리고자 합니다.”
“학원비 환급요? 합격시켜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이렇게 감사할 데가.”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주변에 학원 홍보 많이 부탁드립니다.”
정우 어머니는 전화를 끊고 아들 정우 방으로 갔다. 그는 신나게 롤 게임 중이었다.
“정우야, 학원에서 학원비를 환급해 준다네. 이게 무슨 겹경사냐? 우리 아들, 장하다. 장해.”
#추정우
21세, 대국대 컴퓨터공학과 1학년.
고3 때까지 학교 부적응자였다. 게임중독자였다. 입시에 실패하자 그의 부모는 빌다시피 해서 그를 기숙사형 재수종합반에 집어넣었다. 학원주도형 공부를 했지만 1년 만에 명문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는 아이큐 141의 게으른 영재였다.
고등학생 때 별명은 ‘쒸레기’였다. ‘쓰레기’란 말도 아깝다는 의미였다. 게임에 빠져 식음을 전폐했기에 몸은 시래기처럼 삐쩍 말라 윤기가 없었다. 며칠 씻지 않아도 어떤 더러움도, 가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몸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악취가 진동했다. 가방 안은 구겨진 프린트물과 간식 껍데기들로 쓰레기장이었다. 사물함을 열면 급식으로 나온 바나나 껍질이 미라가 되어 바닥에 툭 떨어지기도 했다. 쒸레기 같은 삶이었다.
정우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아들 방에서 나갔다. 그때 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우는 한 손으로는 게임을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 미희야. 잠깐 얼굴 좀 보자.”
“무슨 일이야? 나 게임 중.”
“해피버거 옆 커피숍으로 와.”
정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미희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정우는 어쩔 수 없이 게임을 멈추고 미희를 만나러 나갔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나 임신 5개월이래.”
“흠…. 그런데?”
“뭐!”
“왜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해?”
“몰라서 물어?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겠어?”
정우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수능 백일 전, 그는 재수종합반 친구들과 백일주를 마셨다. 관심에도 없던 여자와의 첫날밤. 정식으로 출시되기 전 시험판 게임 같은 것이었다. 그냥 이것저것 마구 눌러본 것일 뿐이었다.
어설픈 실수. 그날 이후 어떤 말도 섞은 적 없는 그녀가 정우에게 한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정우는 순간 얼얼했다.
그래서였을까? 정우는 현실을 믿지 않았다.
“내 애라는 증거 있어?”
“야! 이 쓰레기.”
미희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정우는 정말 쒸레기가 되었다.
정우는 미희가 수능시험 도중 배가 아파 퇴실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의심하지 않았다. 신경은 쓰였지만, 그럴 리 없다 생각했다. 그는 그날 생명이 잉태될 정도로 진심을 담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시시하게 한 생명이 생길 리 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하찮은 생명체는 시작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우에게 그 일은 가벼운 바람처럼 휙 지나갔다.
3월, 정우는 대학에 입학했다. 꿈만 같은 일상이었다. 컴퓨터 실습시간에 뒤에 숨어서 게임을 해도 누구 하나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피시방에서 게임을 반나절씩 해도,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담배를 피워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이 없어서 행복했다. 과 친구들은 동아리에 가입해 다양한 친목 활동에 참여했지만, 정우는 그런 일조차 귀찮아했다.
5월 대학교 축제 기간이었다. 인기 가수 공연으로 교양과목이 휴강이 되어 정우는 PC방으로 향했다. 막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의 어머니였다.
“지금 집으로 당장 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정우는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를 어머니가 잡아끌었다. 쪽지 하나를 건넸다.
JW야.
잘 키워줘.
미안해.
고마워.
안녕.
어머니는 그 쪽지가 집 앞에 놓인 베이비박스 안에 있었다고 했다. 진실을 재촉하는 어머니께 미희와의 일을 얘기했다.
“이놈아, 내가 너를 그리 키웠냐?”
“후….”
정우 어머니는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아기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정우도 넋이 나갔다.
30분쯤 지났을까?
정우 어머니가 제일 먼저 정신이 들었는지 어딘가에 전화했다. 성당에 함께 다니는 지인이 분유와 기저귀를 들고 왔다.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니 금세 울음을 그쳤다. 그 모습을 본 정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나 해 미희에게 전화했지만, 없는 번호란 음성만 흘러나왔다. 그렇게 추정우는 새내기 비혼부가 되었다.
[서평]
브런치 작가 '도란도란'님의 서평이 때마침 올라와서 공유합니다. 글보다 서평이 더 좋고, 작가보다 독자가 더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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