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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에서는 못 고쳐요.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

by 백수광부

한 달 전, 돈이 좀 생겼다. 글이 준 선물이었다. 오로지 정서적 포만감을 느끼는 용도로만 쓰고 싶었다. 정거장 같은 생활비 통장에 들어온 돈이 산산이 찢겨 흩어지기 전에 별도 통장에 이체했다.


일단, 다음 분기 드럼 수업료를 따로 뺐다. 주말 1회, 취미로 배운 지 3개월 차인데 재능이 있(없)는 것 같다. 'R(오)L(왼)R(오)L(왼)'은 잘 되지만, 쿵(발)이 추가되면 내 두 팔은 종종 내려야 할 곳을 찾지 못해 헤맨다. 그 수준이면서 '두구두구두구챙~'을 욕심내기에 더 배워야 한다. (하단의 사진처럼)


드럼 강사는 12월에 기말고사를 볼 것이고, B+이하는 재수강을 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웃음으로 응수했다. 실력이 안 되면 분위기라도 띄워야 했다.


'나 같은 아줌마, 아저씨들 가르치니 답답하시죠? 하지만, 당신의 눈빛에서 읽었어요. 한계에 도전해보고도 싶다는 그 마음을요. 포기하지 말아요. 수고스럽고 괴롭다는 거 알아요. 몸치, 박치에 눈치까지 없으면 안 되는데, 눈치 없이 재수강 하려는 저 아줌마를 어떻게 떨궈낼까 고민하는 것도 알아요.

그래도! 그럼에도! 문화센터에서 성적 지상주의는 치사하잖아요. 제가 열심히는 하잖아요. 동년배 같은데, 살살합시다. 주름 생겨요.'


배움을 위한 예비비로 돈을 챙겨두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다음은 나에게 '소설의 맛'을 알려 준 글친구 언니에게 '창작지원금'을 전했다. 글과 그림 활동을 즐겁게, 꾸준히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소액이지만, 꿈을 상징하는 '하늘색' 봉투와 '창작지원금'이란 아이디어가 빛난다. 상대가 감동하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 외 문화여가비 명목으로 브런치 응원금, 도서 구매, 영화 관람, 여행에 돈을 썼다. 포근한 가을향이 내면의 빈틈을 메우니 정서적 포만감이 차올랐다.



'아~ 배부르다. 행복해.'


환해졌을 얼굴을 기대하며 거울 앞에 앉았다. 그저 그 순간, 물욕이 생겼다. 구성을 확인하지도 않고 세일하는 세트 상품을 샀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쫓기는 기분이었다.


배송 후, 내용물을 확인하니 6만 원에 파운데이션 2개, 블러셔, 립라이너 2개가 들어있었다.

화장품 지식이 부족한 나는 블러셔를 써본 적은 없었지만, 무턱대고 볼에 두드려보았다. 발그레해졌다. 낮술을 한 것도 아닌데, 어쨌든 생기가 돌았다. 젊고 발랄했던 20대의 송혜교 배우 느낌이랄까? 혜교님 정도면 셀카로 남겨야 했다.

'찰칵.'

진짜 혜교인지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혜교야? 혜교 어디 있니? 숨바꼭질은 이제 그만."

혜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노안으로 인한 일시적 착시현상이었다. 블러 효과였다. 난시에 노안이 온 내게 신이 주신 '깜짝 선물'이었다. 에잇. 내 얼굴에서 혜교의 흔적을 찾진 못하고 세월의 흔적만 찾았다.


번뜩 뇌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진짜인지 아닌지 증명하고 싶었다. 쓸데없는 오기가 생겼다. 과거 사진이 담겨 있는 하드디스크를 뒤져 찾아냈다. 20대일 때 싸이월드 메인사진에 올렸던 저해상도 셀카 사진 몇 컷. 방금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았다.


그래도 눈빛은 비슷한 것 같은데?


20대 나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눈에서 맑은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동공이 찰랑찰랑 왈츠라도 출 것 같았다. 홍채는 이미 이글거리는 태양을 걷어찰 수준이다. 지금 보니 살짝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40대 나의 눈빛은 어떤가? 20대에 살던 초롱이는 집 나갔지만 아롱이, 다롱이가 들어와 살고 있다. 한 번쯤은 실컷 울었을 눈이 고운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다. 아팠고 이겨냈고 성숙했던 시간의 결과라 해석해 본다. 쏟아냈고 나누고 싶었고 웃기고 싶었던 나의 글쓰기를 통해 고운 빛이 눈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는 중이라 자랑해 본다.


글에 한참 호기심이 생겨났을 때, 서점 대표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책을 출판하면 뭐가(인생이) 달라져요?"

무식하고 초라하지만 무척 궁금한 질문이었다.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대표님은 출판업의 현실과 책 읽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읍소했다. 출판을 하면 온 세상이 핑크빛이 될 줄 알았던 철없던 나는 꽤 실망했다. 그럼에도 글이 좋아 꾸준히 썼더니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났다. 성형외과에서도 하지 못한 일이다.


눈빛의 노화를 막아낸 신의 손


내가 글을 멈출 수 있을까?

내 매력 포인트인 '눈빛'을 포기할 수 없다. 눈빛 노화 방지 프로그램인 글쓰기를 놓을 수 없다.


"초롱아! 이제 집으로 돌아와!"

초롱이만 돌아온다면 셋은 완전체가 된다. 초롱이, 아롱이, 다롱이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오늘도 글을 써야 한다.

"우리 즐겁게 살자."

"그냥 즐겁게 쓰자."


[눈빛만 살아있는 백수광부 작가님과의 인터뷰]

"작가님은 언제 글을 쓰시나요?"
"샤워하면서 영감을 얻고, 설거지하면서 글을 쓰고, 운전하면서 퇴고한다네."

"사색을 즐기는 작가님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네요. 역시 행동파 작가답습니다."
"움직이면서 써서 그런지 글이 허공에 머무는 느낌이야."

"본인 글에 대한 통찰력이 남다르십니다. 제대로 꿰뚫고 계십니다."
"허허. 당신은 말하는 센스가 있으면 좋으련만."

"(긁적긁적) 작가님의 초기작을 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던데, 인간관계에 대해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은 삼국지에 나오는 글귀로 대신하겠네. 20대에 읽고 좋아서 싸이월드에 올리고 늘 마음에 새긴 말이라네.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함세."

"아직 못다 한 질문이 많습니다."
"궁금하면 북콘서트라도 열고 날 불렀어야지."

"신간 나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아! 내 올해 나이가 100살이야."

"올해 책정된 예산이 남아있지 않아서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 사이 관계는 사고 파는 게 아니야. 주고 받는 거지."



이제 나의 철기(鐵騎)가 태풍처럼 휘몰아 가면 그대가 백성들의 마음속에 쌓고 있는 성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유비, 새삼 그대가 두려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삼국지, 이문열」중에서 -


p.s) 인물에 대한 시대적 평가보다 '조조의 심리와 독백'에 중점을 둔 언급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백수광부 작가의 삶에 대한 시선(눈)과 그것을 담아낸 글(빛)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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