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향한 다섯 여인의 고뇌
난 유독 ‘정체성’이란 말에 찌릿한다. 나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기 위해 살고, 거기에 생채기가 나면 싫다. 도대체 그게 뭐길래? 잘은 모르겠지만,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게 내 정체인 것 같다. 그래서 그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때론 피곤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수혜가 더 크기에 계속한다.
쓸모 있는 인간임을 속삭이는 삶이 내겐 중요한 가치다. 그러기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건 나를 지키기 위한 행위다. 쓸모의 방향도 내가 정하지만, 쓸모의 만족도 내 만족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자라온 환경에 기인한다. 그녀를 보고 자연스레 배웠다.
그녀는 내 엄마이다.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삶은 자식들을 위한 희생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한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한참 오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오해는 제법 큰 실례였다.
“내 평생 느그 아버지한테 돈 받아 쓴 적 없다. 내 힘으로 벌어 느그 키웠다.”
그렇다. 그녀는 그녀의 힘으로 그녀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버시는 돈은 아버지 술담배, 등록금, 식비 등으로 쓰였고, 그 외 생활일체비는 어머니가 버셨다. 그런 그녀의 치열했던 삶을 자식을 위한 희생이라 말하면 선 넘는 행동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헤쳐 나간 그녀의 삶이었지, 어쩔 수 없는 희생은 아니란 말이다. 실제로 그녀 입에서 한 번도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니들 때문에 고생만 했다.”, “니들만 아니었어도 벌써 이혼했다.”라는 식의 말을 들은 적 없다. 그녀는 그녀가 택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녀에게서 유일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일 때 하교하고 집에 오니 작은아버지가 와 계셨다. 거실에서 엄마와 맥주를 마시며 얘기 중이셨다.
“이제 더는 형님이랑 못 삽니더.”
“형수! 그래도 어짭니까?”
그 말에 얼핏 불안해졌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엄마는 결국 우리를 두고 가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이다. 데리고 가기엔 자식이 많았고, 놓고 가기에도 역시 자식이 많았다. 반으로 나누기엔 홀수여서 애매했고, 골라가기엔 다 거기서 거기였다. 농담은 물리고, 다른 건 몰라도 난 그녀의 자식들에 대한 책임감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줄 거라 생각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두 분은 아직 함께 사신다. 자식들이 어릴 때는 그저 그런 사이였지만 지금은 그래도 적당히 조화롭게 사신다. 엄마가 원하는 남편상은 다정한 남자였고, 아빠가 원하는 아내상도 다정한 여자였지만, 서로는 서로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자식들도 감정 표현에 서툴다.
친정집 엄마 방에는 액자 네 개가 순서대로 걸려있다. 학사모를 쓴 1st, 2nd, 3rd, 4th까지 좌에서 우로 가로정렬 되어있다. 추측건대 그건 엄마 인생의 단계별 수료증이다. 계집애라는 이유로 공부를 실컷 하지 못한 엄마의 인생 목표였을지 모르겠다. 딸들은 본인이 원한다면 대학 공부까지는 내 손으로 꼭 시키겠다는 의지였을 테다. 그 목표 달성의 증표가 졸업사진 액자였던 거다. 그건 엄마 인생에 꽤 중요한 상징물이다. 벽에 못을 박아 질긴 노끈으로 단단히 매달아 놓은 모습을 보면 울컥해진다.
문제는 5th 액자가 안 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막내도 대졸이지만 액자가 없다. 돈 아깝다고 안 찍었단다. 뭔가 맞춰야 할 퍼즐 하나가 남겨진 듯 찜찜하다.
‘저 자리에는 턱시도 입은 막내 사진이 걸리면 참 좋겠는데, 소식이 없네.’
집안 종손인 막내는 30대 중반을 넘었는데, 낌새가 안 보인다. ‘막내 장가가기’가 장기미제 프로젝트가 될 조짐이 보이자 노모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들이 제 아비 닮아서 가타부타 말이 없어 속이 탄다고 전화로 딸들에게 하소연을 하신다. 제 아비 닮아 공감능력 부족한 딸들도 영 반응이 시원찮다. 외로움과 서글픔이 가득한 나날이 계속 되던 어느 날, 친구마저 그녀를 배신했다. 노총각 아들이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전한 것이다.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슬픔과 두려움에 휩싸인 엄마는 다시 딸을 찾았다.
“내 죽기 전에 결혼해야 할 낀데.”
“엄마가 죽기는 왜 죽어? 그리고 요즘은 결혼 안 하고도 자알~~~ 산다. 혼자 살면 더 좋지.”
“그래도 나이 더 들면 혼자는 외로울 낀데. 느그는 다 결혼해 사는데. ”
“개 키우면 된다. 막내 개 좋아하잖아.”
“개랑 사람이랑 같나?”
“같지야 않지만, 연애를 안 하는데 뭐 방법이 있나?”
“와 연애를 안 하노?”
“안 하는 긴지, 못 하는 긴지 알 수는 없지.”
“와 못하노? 지가 인물이 달리나! 직장이 없나! 돈이 없나!”
“응, 뭐 다 있지. 누나도 넷이나 되고.”
“근데 뭐가 문제고?”
“누나 넷이 문제지. 시누이가 넷이란 게 큰 문제지.”
“시누들이 뭐 즈그들 잡아먹는다 카나?”
“그러게. 관심 꺼줄 수 있는데.”
“어디 괜찮은 아가씨 없나?”
“내 주위에 젊은 아가씨가 어딨노?”
딸들과 대화에서 건질 게 없다 생각한 엄마는 직접 소개팅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친인척을 총동원해서 우리 집 내부 사정을 알고 인성이 검증된 여자들 연락처를 몇 회 막내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1회 만남에서 다 끝이 났다. 어렵게 얻은 기회는 기대와 실망을 안겨주었고 엄마의 걱정과 한숨은 커져만 갔다. 딸들은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엄마, 시누이가 많아서 잘 안 되는 거 아니야?”
“모르지.”
“나이 서른 넘은 여자들이 시누 넷인 집에 결혼하려고 하겠나?”
“그럼 있는 누나들을 어짜노?”
“그냥 없다 캐라. 모두 외국에 산다고, 얼굴 볼 일 없다 캐라.”
“...”
“그냥 호적 파버릴까?”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엄마의 근심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우리 네 자매는 막냇동생 앞길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참고로 내가 형제가 1남 4녀라고 하면 주변인들은 묻는다.
“막내가 아들인가 봐요?”
“네.”
“막냇동생이 엄청 귀하게 컸겠네요.”
라고들 한다. 막냇동생이 귀하게 커서 유약하고 싹수없게 컸을 거라고 추측하는 데 전혀 아니다. 부모님은 아들딸 차별이 일절 없으셨다. 다섯 모두 크게 누리고 살진 않았지만, 인간적으로 똑같이 존중받으며 컸다. 너도 새 옷 못 입고 나도 새 옷 못 입으면 공평하다. 맛있는 거 숨겨놨다가 아들만 주고 그런 치사한 행동은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형제간 위계질서에 따라 심부름을 많이 한 건 막냇동생이었다. 네 자매 모두 막냇동생에 대한 미움은커녕 늘 고맙고 듬직하게 생각했다. 잘 되기만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수화기 너머로 들뜬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막내에게 소개해 줄 여인을 구한 모양이었다. 친가 쪽 라인에서 뚫은 소개팅이었다. 아버지의 사촌의 며느리의 친구라는 다소 먼 관계였지만 고모의 드리블을 막내가 피할 순 없었다. 1회 만남 이후, 고모와 엄마의 잦은 압박 공격과 수비로 만남은 몇 차례 더 강행되었다. 뭔가 나쁘지 않은 신호가 고모와 그녀의 며느리 입이라는 전파를 타고 수신되었다. 하지만 설레발치다 바람 빠진 적이 많기에 누구 하나 섣불리 기대하지 않았다.
가족 모임이 있던 날, 막내에게 조심스레 질문했다.
“나이는?”
“뭐 하는 사람이야?”
동생의 단답형 답변이 이어지자 자매들은 말을 아꼈다. 격 떨어지는 신상 털기를 더 하다가는 일을 그르칠 것 같았다. 다만 그저 그것만은 몹시 궁금했다. 본능이었다.
“혹시 사진 있어?”
“왜? 얼굴은 보통인데?”
막내다운 멘트였다. 좋아도 좋다고 얘기를 안 하는 집안이라 저 정도면 긍정신호였다. 몇 차례 자매들의 보챔이 있은 후에야 남동생은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녀의 증명사진을 보여 주었다. 셋째가 먼저 보았다.
“아! 아….”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넷째가 급히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어! 호….”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폰을 건네받았다.
“…으음.”
누구도 쉬이 다음 멘트를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제부는 몹시 궁금한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받아 든 제부가 우리 대신 말을 이었다.
“예쁘게 생겼네요.”
그랬다. 예뻤다. 어디까지가 본판이고 어디까지가 뽀샵인지는 몰라도 사진 속 그녀는 실제보다 어리고 언급한 것보다 예뻤다. 근데 뭔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는 것처럼 아리송한 느낌이었다.
자매들은 급히 남동생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그가 사라지자 우린 서로를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와! 세다 세.”
“보통 아니겠는데?”
“와~ 만만치 않겠는데?”
관상이 과학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딸들의 첫 느낌은 만장일치로 '세 보인다'였다. 뭐가 센지는 모르겠지만, 1:4도 가능할 것 같았다. 우린 예쁜 여우상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착한 얼굴이면 되는데, 일단 그 증명사진은 우리 기대를 확실히 비껴갔다. 허나 바로 자각했다. 서로를 채찍질했다.
“아직 시누도 아니면서 시누짓 그만하자!”
한 번도 나를 지칭하는 단어에 ‘시누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한 적 없었다. 백수광부가 ‘시누이’가 되면 어떤 모습일지 나도 궁금하다. 시누이가 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이다. '시'를 향한 다섯 여자의 여정은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이마에 '시'를 붙일 것인가? 아직 때가 아닌 것인가?
부모님 존경합니다. 성격 차이가 상당한데도 마인드 컨트롤 하시며, 다섯 자녀 키우며 살다 보니 그래도 지금은 괜찮으시지요? 5번째 액자가 걸리는 그 날까지 4자매는 성질을 죽이고 협조할 것임을 맹세하겠습니다. 반듯하게 길러서 세상에 내보내 주신 그 은혜 꼭 갚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