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녀에게 부모님을 뺏겼어요.

부모 사랑 뺏긴 설움

by 백수광부

이번 글은 1인칭 (시)누이 시점 글입니다. 미혼 여성 혹은 며느리 시점이 아님을 감안하시고 보세요.


개인적인 성향인지는 몰라도 '부모 사랑에 대한 갈구'는 없었다. 부모님과 살 맞대고 교감한 기억은 없어도 수두에 걸린 나를 데리고 밤늦게 병원문을 두드리셨고, 팥밥에 미역국, 잡채로 생일상을 차리며 자식의 명줄과 인복을 염원한 걸 알기에 부모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책임감 앞에 '제게 사랑을 좀 주세요.'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를 못 느낀 건 기대치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다섯 남매는 스무 살이 되면서 하나씩 독립했다. 정확히 세 살 터울이었기에, 부모님 시간 중 미성년 자녀를 기른 시간은 제법 길었다. 친구분들이 손을 털 때도 막내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막내까지 독립해 나갔을 때는 많이 외로우셨을 거다. 바쁘게 달리다 멈춰버린 기차처럼 마음이 고장 나셨고 아프셨던 것 같다. 엄마의 갱년기에 그 어떤 자식도 곁에 없었단 게 이제와 죄송스럽다.


남들은 딸이 많아 좋겠다지만 모두 멀리 살고, 딸들은 엄마와 일상 수다를 떨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다들 뭐 그리 정신없이 사는지 모두 젊을 때 엄마 모습 그대로였다. 그나마 막냇동생은 직장이 본가에서 멀지 않았지만, 자주 들르진 않았다. 부대끼며 살았지만 살 부비며 살지 않은 탓에 서로에 대한 표현은 일곱 모두 서툴고 투박했다. 아버지는 믿어주는 걸로, 엄마는 챙겨주는 걸로, 형제끼리는 웃겨주는 걸로 애정을 표현했다.



막내가 K녀와 소개팅한 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엄마는 상견례 얘기를 하셨다. 작년 10월이었다.

"설 전에 가야 할 낀데?"

"무슨 설? 2026년 설?"

"나이 한 살 더 먹기 전에 가야지."

"엄마! 지금이 10월이고 K녀 얼굴도 못 봤는데 무슨 설 전에 결혼이고!"

딸들은 혀를 내둘렀다.

"우리 엄마 밀어붙이기 장난 아니네."

엄마 주변 할머니들의 '마~ 빨리 치아라.(결혼시켜라. 마무리해라.)'는 말에 울엄니께서 마음이 아주 급해진 모양이었다.


일이란 게 그렇다. 진전이 없을 때는 빨리 몰아가고 싶다가도 뭔가에 휩쓸리는 느낌이 들면 꼼꼼히 살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찌라시도 돌기 시작했다. K녀가 산전 검사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부풀려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K녀는 결혼이 급한 모양이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K녀와 남동생이 사귈 무렵 남동생은 첫 집을 샀다. 우리 중 제일 큰 평수 아파트로 말이다. 신혼살림급 전자제품도 막 사들여 넣기 시작했다. 차도 이미 우리 중 제일 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그것들이 그 아이의 피땀눈물임을 아는 누나들은 걱정부터 앞섰다.


"K는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혹시?"

"혹시 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폈다. 뉴스에 나오는 무서운 케이스부터 건너 건너 후배 케이스까지 온갖 사례를 얘기하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혹시, 그 여자 빚 있나?"

"아니면, 혹시?"

밑도 끝도 없는 의심이 일었고, 진실을 알고 싶었다. 타인이면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도 가족 일이 되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게 사람 심리다.

솔직한 누나 심정으로 결혼 후, 그녀의 어마어마한 빚을 발견한다거나 알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한다면 속이 너무 상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주민센터와 금융기관을 돌며 서류를 떼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자매들의 촉에 따른 쓸데없는 의심이기를 바라며 차분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빅 프로젝트를 망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러쿵저러쿵하다가 결국 11월 말에 남동생이 K녀 집에 먼저 인사를 드리러 갔다 왔다고 했다. 가타부타 사실을 말하지 않고 농담을 반 끼얹어 말하는 막냇동생의 화법으로 우리 자매들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속시원히 알 길이 없었다.


K녀 가족은 부모님과 결혼 안 한 오빠, 이렇게 4인 가족인데, 도시, 세 거처에 나눠 산다고 했다. 그래서 남동생은 K녀 부모님을 2번에 걸쳐 따로따로 만나 뵙고 왔다. 부모는 불화로 별거 중이고, 모녀간 사이도 안 좋아 딸은 엄마집에서 살지 않고 혼자 산다고 했다. 또, 엄마가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모자간 사이도 좋지 않다 했다.


막내가 소박하지만 화목한 집안에 장가가서 사랑받는 사위가 되길 바라는 게 누이들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힘들어 보였다. 결혼식에는 부모 중 한 명만 참석할 거고, 딸 결혼 시 돈 지원은 힘들 것 같다는 입장을 전해 들으니, 우리의 작은 소망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보통은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해주려는 게 부모 마음인데 의아했다. 어쨌든, 우리는 이제 K녀에 대해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만 바르고 괜찮은 사람이면 된다 생각했다.


2주가 흐른 후, K녀가 드디어 우리 부모님을 뵈러 온다고 했다. 식사 자리가 빨리 끝나고 엄마가 전화하기만을 기다렸다. 밝은 목소리였다.

"엄마, K녀 어땠어?"

"그냥 글치 뭐 별다르나?"

저렇게 말해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뭐라던데?"

"어머님한테 잘 보이려고 원피스 입고 왔어요 그라더라.".

"얼씨구! 여시네 여시!"

여시 = 여우를 일컫는 경상도 방언

"아가 보드랍고 싹싹하더라. 선물도 주고 엽서도 주고 갔다."

"엽서? 헐? 첫 만남에? 대단하네."

들뜬 엄마와 달리 난 계속 삐딱선이었다. 증명사진의 센 이미지가 떠올라 계속 K녀를 경계했다.

"엽서에 뭐라 적혀있던데?"

"어머님, 아버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OO이 오빠야랑 잘 살아볼게요라고 적혔더라."

"뜨아~~~~~~~~~~~~~~~~~~."

"맨날 혼자 가는 게 마음이 그렇드만, 둘이 가는 거 보니 보기 좋더라. 가가 OO이한테 딱 붙어가더라."

"그래? 흠."

"가가 우리를 안아주고 가더라."


"뭐? 허그를 했다고! 아빠한테도?"


흐뭇해하는 엄마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 이 사건을 딸들 단독방에 알렸더니 다들 두드러기가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공통 의견으로 일반적이지 않다고 결론냈다.

참고로 우리 딸들은 아버지와 허그한 기억이 없고, 결혼식 날 어색하게 손잡고 들어간 기억만 있다. 엄마와도 허그한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직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 표현도 못한 숙맥인데, K녀는 한 방에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녹이고 간 모양이다. 외로운 두 분의 마음에 하트를 박아버린 K녀를 어떻게 봐야 할까?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인가?

마음 따뜻하고 애교 많은 여우인 걸까?


부모님은 K녀를 보고 온 이후 모든 것을 K녀에게 맞추려 했다. 상견례 자리에서 K녀 어머니의 철없고 무례한 말과 행동에도 그저 K녀가 안쓰러워 감싸기 급급했다. 막내딸을 얻은 양 'OO이'라는 말이 입에 붙은 엄마에게 나는 조금 심통이 났다. 부모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다른 딸들도 증명사진만 본 상태에서 결혼 날짜까지 잡아버리는 이 빠른 속도감에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도저히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객관성을 갖기 위해 우리 딸들은 주변인에게 K녀 행동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부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 편지를 드리고, 허그를 먼저 해드릴 수 있나요? 가능한 건가요?"


그러기 쉽지 않다가 대다수였다. 간혹, 허그를 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겪은 대표 다정이들이었다. 그분의 말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불여우가 아니어도 예비 시부모님과 허그가 가능하구나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K녀에 대한 찝찝함을 거둘 수가 없었다. 실물로 겪어봐야 알 것 같았다.

"엄마, 인간적으로 좀 천천히 진행합시다."


우리는 설 가족모임에서 K녀를 만나길 기대했다. 그녀의 휴무일에 맞춰 친정에 머물 계획을 짜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 부모님께 기쁨을 줄 귀여운 여우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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