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척 궁금해요.
15~16화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우리 자매들은 시댁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합리적인 시부모님을 만났다. 명절에 시댁부터 가지 않아도 된다. 2026년 설 명절은 딸 넷이 친정부터 가기로 했다. 이런 기회에 K녀를 모셔 오는 게 어떠냐고 막내에게 제안했다. K녀가 잠시 들를 수 있을 거란 말에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온갖 종류의 전을 부치고, 대청소를 했다. 그녀가 식도에 기름칠을 하고 싶다면 오색찬란한 전을 대령할 것이고, 알콜로 소독하고 싶다면 오대주(소주, 맥주, 와인, 막걸리, 소맥)를 대령할 생각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했다.
"다이어트는 언제부터 하지?"
"난 한복 안 입을 거야. 원피스 입는 건 어때?"
"난 원피스로 커버 안 된다. 한복으로 가려야 해."
"넷이 한복 다 입는 것도 좀 웃긴다. 둘둘 나눌까?"
"메이크업은 어쩌지? 예약해?"
"새우튀김 그만 먹어! 살 빼야지!"
"명절까지는 먹어도 된다."
"그나저나 우리는 K녀를 결혼식장에서 처음 보는 거야? 허, 참!"
우리 딸들은 그날 밤, 기대하고 실망하고 계획하고 해산했다. 빨간 날이 그리 많았는데, 잠깐의 짬도 나지 않았던 걸까? 결혼 10+N년차 며느리 병행 시누이 4명이 그 속을 어찌 모르겠는가? 허나, 한 번은 거쳐가야 할 관문 아닌가?
K녀의 길도 평탄치 않았다. 피했는데 자꾸 산이 생기는 형상이었겠지? 남자 친구집에 자꾸 행사가 생겼다. 설날에 시누이 피하기는 성공했지만, 3주 후 아버지 생신이었다.
"K녀야, 시간 되면 아버지 생신 때 와서 밥 먹자."
예비 시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웃음으로 대답을 때웠다고 한다. 엄마는 긍정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울 자매들은 이번에도 회피권법이라 생각했다. 아버지 생신이 다가오자 확답을 듣기 위해 남동생에게 물었다.
"K녀 올 수 있어?"
"못 온대."
"왜?"
"스튜디오 촬영 준비해야 한대."
"촬영도 아니고 촬영 준비는 뭐야? 그것도 너 없이 혼자?"
이 무슨 미꾸라지 아이스링크장에 슬라이딩하는 소리? 자매들 눈썹엔 갈매기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꼴 보기 싫은 시누들을 피하고픈 마음은 알겠지만, '꼴'을 한 번은 서로 봐야 하지 않나? 결혼식장에서 '처음 뵙겠습니다.' 하면 웃기지 않을까?
아버지 생신 때 못 보면 수도권에서 하루 날 잡고 모두 만나자고 제안하니 그제야 K녀가 생신 때 들른다고 했단다. 헌데, 그 중요한 날 나는 참석을 못했다.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특파원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눈치코치발치까지 있는 셋째, 넷째의 눈이면 내가 보는 거나 다름없었다.
남동생은 뷔페를 제안했지만, 특파원들은 K녀를 심층 관찰하기 위해 어수선한 뷔페집을 무시하고 조용한 해물식당 룸을 잡았다고 했다. 그녀들은 식사 후 집으로 돌아와 먹을 알콜과 안주까지 완벽 세팅을 해두고 식사 장소로 향했다. 톡 하나가 왔다. 풀메이크업을 하고 한껏 차려입은 특파원 1이었다.
"쎈캐야?"
자신의 얼굴이 세 보이냐고 물었다. 바로 답했다.
"응. 엄청 세 보여. ㅎㅎㅎ."
특파원 1은 원래도 우리 중 가장 센 캐릭터이다. 두드리고 다지고 두드리고 다지다 보니 두껍고 강한 메이크업이 된 모양에 웃음이 터졌다.
"내가 센 게 아니라 걔가 사진보다 더 세 보여."
특파원 1이 K녀와 만난 모양이었다. 사진을 보고 엄청 세 보인다고 입을 모았는데 더 세 보인다니 놀라웠다.
"실시간 보고해라."
온갖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자리가 몹시 궁금했다. 연락오기만 기다렸다. 30분 후에 톡 하나가 도착했다.
"아빠 손 잡고 딱 붙어있다. 오 마이갓!"
"누가? K녀가? 아빠 손을 잡았다고?"
설마라는 생각을 하며 답을 재촉했지만, 이후 특파원들은 뭘 하는지 통신이 두절되었다. 또 기다려야만 했다. 식사가 끝났을 때도 됐는데, 아무 연락이 없었다. 밤 10시가 되어가자 도저히 참지 못하고 톡을 날렸다.
"왜 소식이 없냐?"
"9분 뒤에 OO이(남동생) 떠난다. 그 이후에 연락하자."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왜? 왜?"
흥분한 특파원 2는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저 놀라웠다. K녀가 아빠 손을 잡고 식당을 들어가더니 아빠 옆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고기쌈도 싸주었다고 한다. 그 불편한 자리에 그런 애교 발사가 가능한지 신기하단 생각뿐이었다. 특파원들 많이 당황하셨어요? ㅋㅋㅋ 그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아쉽다.
"내 말 좀 들어봐."
특파원 2가 흥분한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갔다.
"OO이(남동생)가 식당에서 밥만 먹고 간다는 거야, 내가 왜 무슨 일 있냐니까 일은 없는데 가야 한다는 거야. 뻔하지. 그래서 너 아까는 집에 들를 수 있다 그래서 안주거리 다 준비해 놨으니, 집에 잠깐이라도 들렀다 가라 했지. 그랬더니 30분만 있다 간다는 거야. 그래서 식당에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특파원 1과 케이크랑 술안주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바쁘게 왔다갔다하니 OO이가 주방에 와서 툴툴거리는 거야. 금방 갈 건데 자꾸 음식 내온다고.
내가 빡이 쳐! 안 쳐!
한 마디 했지!
야! 오늘이 아빠 생신인데 준비를 해야지. 너는 30분만 있다 가든가! 하고 쏘아댔지. 그러니 K녀가 눈치가 보였는지, 2시간인가 앉아있다 가더라. OO이 그 녀석 하는 행동이 참, 기도 안 찬다."
연애에 빠진 남동생 행동에 바로 위 누나인 특파원 2가 화가 나서 쏘아붙인 모양이었다. K녀가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남자 친구를 압박하는 상황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날은 K녀를 보기 위한 날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생신일인데 누가 누구 눈치를 봐야 하는지 그 상황이 기분 나빴다고 전했다. 미끌미끌한 미꾸라지 몸에 미운털이 박히고 있었다.
"OO이 어깨가 닳아 없어지겠더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무슨 질문을 하면 머리를 OO이 어깨에 비빈다."
나보다 한참 어린 K녀 하는 행동이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머리 간지럽나 보다. 니 어깨를 갖다 대지 그랬냐? ㅋㅋㅋ."
그보다 시누짓 하는 우리 자매들 모습이 웃겨 실소가 터졌다.
"우리랑은 결이 안 맞다. 얼버무리는 스타일이야. 속 답답해 못 산다."
"왜 뭐라고 물었는데?"
"주량이 얼마냐고 물어도 오빠(남동생)한테 물어보라 그러고, 꿈이 뭐냐고 물어도 오빠가 말하라고 한다."
"자기한테 하는 질문을 왜 오빠한테 대답하라 그러냐."
곰보다는 여우가 낫다고들 하지만, 곰 등 뒤에 숨어 빼꼼 얼굴 내미는 여우는 별로였다. 적어도 우리 네 자매 스타일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 의견은 남동생 선택에 큰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다.
특파원들은 여전히 그녀의 캐릭터가 미궁 속이라고 했다. 나의 궁금증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때 특파원 1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근데, H서방만큼 먹더라."
H서방은 나의 제부로 특파원 1(셋째)의 남편이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100kg에 육박하는 거구로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하고 잘 먹는다. 특파원 1이 자기 남편만큼 먹는 말을 남기니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진짜야!"
"무슨 그런 뻥을 치냐?"
호리호리한 증명사진과 달리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하니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특파원 1의 먹거리에 대한 눈대중은 정확하기에 의아하기만 했다. 더 흥미진진해졌다.
"아, 진짜라니까! 그리고 리액션도 끝내준다. 어머니~ 이거 봄동 무친 거예요? 너무 맛있겠당앙앙앙앙앙."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갑자기 떠오르는 건 왜인가?
뭔가 깔린 기분이 든다.
'센 캐릭터 맞나? 1:4는 충분하겠는데?'
그녀를 꼭 만나고 싶었다. 듣고도 믿기 힘든 얘기를 꼭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초여름으로 결혼날짜가 정해진 상황에서 내가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명분은 그날뿐이었다. 벚꽃이 휘날릴 즈음 다가오는 우리 엄마 생신. 그날은 엄마가 아들차를 타고 딸들이 사는 수도권으로 와서 생신을 보내신다. 올해는 벚꽃 개화에 맞춰 생신파티를 더 빨리 당겨서 할 참이라고 하셨다. 울 엄마는 예비 며느리를 내게 빨리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To. K녀
벚꽃 흩날리는 그 밤에, 저와 만나요.
제가 얼마나 기다려온지 아시죠?
이번에는 꼭 만나요.
준비하고 있을게요.
어머! 어쩜 그날이 딱 이번 주인지.
다음 주엔 어떤 글감을 가져올지 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