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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Aug 18. 2024

당신 덕분에 살고 싶어졌습니다.

뜨끈한 국 한 그릇, 따뜻한 말 한 마디

일주일 간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신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고 글을 씁니다. 이 편지 내용은 라디오에서 양희은님 목소리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시어머님께 보내는 편지인데 정작 그분에게는 보여드리지도 들려드리지도 못한 내용입니다. 용기를 주셔도 당분간 보여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글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올립니다.      


저는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기를 시어머님과 공유했습니다. 제 고통은 시어머님의 고통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휘몰아치던 파도가 지나간 후라 웃으며 꺼내는 옛날 얘기라지만, 오히려 그때를 떠올리실까 죄송해서 이런 편지글마저 전하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 꺼내는 것조차 숨이 막히고 외면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요.        


   


OO에 사시는 엄마, O여사님께


5월이라 지난주에 뵙고 왔는데도 어머님 생각에 편지를 씁니다. 며느리들은 시댁이라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지만 저에게는 그냥 ‘내 집’입니다. 늘 엄마처럼 대해 주시고 편안함을 주시지요.


“없는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안 돼. 그게 다 자식들한테 짐이거든.”


아버님과 자주 나누시던 말씀이라 들었습니다. 아들의 사업 실패로 저희 네 식구가 30년이 다 된 좁은 시댁 빌라로 들어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축 처진 아들과 툴툴거리는 며느리, 한창 손 많이 가는 손주들을 보면서 참으로 암담하고 답답하셨지요? 그럼에도 건강하게 살자, 행복하게 살자면서 보듬어 주셨지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힘을 내곤 했습니다.


건강하시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허망하게 가셨을 때는 혹여나 아들이 죄책감을 느낄까 마음껏 슬퍼하시지 못한 것도 압니다. 어머님도 힘드셨을 텐데 아들 부부가 혹시 갈라설까 봐 며느리에게 나를 믿으라며 큰소리치신 것도 압니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해야 하는 영업일을 하실 때는 매일 밤 몰래 우셨지요. 작은 방에서 벽을 타고 들려오는 어머님의 흐느낌을 저는 들었습니다. 어머님의 힘듦을 알면서도 30대의 철없는 며느리는 본인 고통과 상처가 더 크다며 애써 모른 체했습니다. 오히려 어머님을 원망도 했습니다.   

 

‘왜 아들을 그리 곱게 키우셨나요? 아들이 허황한 희망만 있고 독기가 없어서 제가 미치겠습니다.’


어머님은 며느리의 삐뚤어진 마음을 알면서도 매일 아침 국과 반찬을 해두시고 일터로 나가셨지요. 절망에 빠져있던 며느리는 어머님이 차려주신 뜨끈한 국물로 힘겨운 하루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배가 사랑으로 가득 차니 살고 싶어졌습니다. 손주들은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없는 살림에도 첫 기름으로 튀긴 깨끗한 첫 치킨을 배달시켜 주셨지요. 저희 아이들도 그 사랑과 정성으로 잘 자랐습니다. 차마 그때는 드리지 못한 말을 편지로 전하고 싶습니다.



어머님, 팔짱을 끼고 수다를 떨며 장을 함께 보는 딸 같은 며느리를 기대하셨다 들었는데 전혀 다른 캐릭터라 죄송합니다. 귀하게 키우신 아들인지 알면서도 어머님 앞에서 아들 흉을 많이 본 것도 죄송합니다. 신김치 송송 썰어서 해주신 노릇한 김치전과 시래기 넣은 감자탕은 눈물나게 맛있었는데 맛있다는 표현 한번 제대로 못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한테 엄마이고 싶으셔서 ‘엄마가 사랑해.’라고 문자 보내셔도 늘 ‘어머님, 고맙습니다.’로 답장을 보내서 죄송합니다. 힘들 때 무너지지 않고 중심 잡아주셔서 지금의 저도 부모 노릇을 하고 삽니다.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다고 하시니 걱정이 앞섭니다.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자식들에게 부담될까 노는 것도 못 할 짓이라며 또 일터로 나가시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옵니다. 자식들 걱정할까 매번 ‘엄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라며 말씀하실 때마다 어머님을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매일이 행복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 경상도 며느리 올림 -     

        



* 제가 브런치 작가가 된 지 2달이 조금 넘어갑니다. 벌써 3권을 연재하였습니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소설'이나 '에세이'로 돌아오겠습니다. 글을 써 놨기에 진짜 조만간 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주민등록초본 3장 : 에세이>

https://brunch.co.kr/brunchbook/100real001    


<아찔하다. 자식교육.: 시>

https://brunch.co.kr/brunchbook/100real002 


<곁에 있는 것들을 위한 노래 : 시>

https://brunch.co.kr/brunchbook/100real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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