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날이 지난 후, 나는 같은 용건으로 같은 길을 걸었다. 피아노는 여전히 명아주 안에 있었다. 복숭아색, 물색, 옅은 노란색 등의 악보가 흩어져 있는 것도 여전했다. 단지 오늘은 그 둘은 물론이요 무너진 벽돌이나 슬레이트도 가을볕에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악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이렇게 보니 건반의 상아도 광택을 잃고 뚜껑의 칠도 벗겨져 있었다. 특히 다리에는 새우와 비슷한 덩굴마저 감겨 있었다. 나는 그 피아노를 앞에 두고 실망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꼈다.
"애초에 이게 울리기나 하는 걸까."
나는 그런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피아노는 그 박자에 작은 소리를 냈다. 거의 나의 의혹을 타이르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작은 웃음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피아노는 지금도 햇빛에 태연히 건반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 위에는 어느 틈엔가 밤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길가로 돌아온 후 다시 한 번 폐허를 돌아보았다. 겨우 알아차린 밤나무는 슬레이트 지붕에 떠밀린 채로 비스듬하게 피아노를 덮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저 명아주 속의 피아노를 보았다. 작년의 지진 이후로 남몰래 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피아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