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완전한 하루

퍼펙트 데이즈

by 야옹이



독일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2023년작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중년 남자 히라야마의 일상을 그린다. 이야기라 할 만한 굴곡은 거의 없다. 히라야마는 동이 트기 전 좁은 방에서 잠을 깨 침구를 정돈하고, 수염을 손질한 뒤 정성껏 키우는 화분에 물을 준다. 그런 다음 작업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 자그마한 밴을 몰고 시내 곳곳의 공중화장실로 향한다.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 자동판매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마시고 낡은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며 60~70년대의 올드팝을 흥얼거린다. 그리고 도착한 화장실을 한 칼로 베어내듯 말끔히 닦아낸다. 저마다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도쿄의 공중화장실들은 그의 손길을 거쳐 작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점심이 되면 그는 근처 신사의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준비해 온 샌드위치를 먹는다. 퇴근 후에는 동네 목욕탕에서 땀을 씻고 단골 선술집에 들러 혼자 식사와 술을 즐긴다. 밤이면 중고 서점에서 구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드는,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하루다. 영화는 이 단순하고 소박한 루틴을 며칠이고 충실하게 반복해서 보여준다. 마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필름으로 압축해 놓은 듯하다.



반복되는 일상, 그 속의 철학

겉보기에는 단조롭기 이를 데 없는 히라야마의 일상이지만, 그 반복 속에는 잔잔하면서도 깊은 철학적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빔 벤더스는 의도적으로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을 배제하고, 히라야마가 똑같은 순서를 밟는 나날에 천천히 카메라를 맞춘다. 그런데도 지루함 대신 묘한 평온과 충만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 일상이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ritual)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세상이 정해 준 성공이나 야망의 궤적에서 한 걸음 비껴나, 스스로 만든 작은 우주 속에서 완벽에 가까운 하루들을 창조해낸다. 새벽의 희끄무레한 빛을 맞으며 눈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 책을 덮는 순간까지, 그의 모든 동작에는 규칙성과 정성이 배어 있다. 히라야마가 매일 반복하는 사소한 행위들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다. 그는 자신이 맡은 공간을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내고, 한 그루 나무 아래에서 식사를 하며 햇살과 바람을 느낀다. 이렇게 매일의 루틴 속에서 작은 완벽들을 실천하는 모습은 관객에게도 묘한 깨달음을 준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색채를 띨 수 있다는 메시지다. 영화의 원제가 되었던 일본어 단어 “코모레비(木漏れ日)”는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을 뜻한다. 히라야마는 그 말 그대로 바쁜 도시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발견해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똑같이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매순간을 온전히 살피고 음미함으로써, 자기만의 완전한 하루를 만들어간다.

히라야마의 일상이 주는 감동은 이러한 성실한 반복 자체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통해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아침 식물에 물 주는 소리, 화장실 바닥을 문지르는 브러시 소리, 창문 너머로 들리는 새소리 같은 디테일한 순간들을 포착하여 서서히 마음을 적신다. 마치 수도자가 수행을 하듯 하루하루를 정결하게 쌓아 올리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삶을 대하는 한 가지 성철함을 느끼게 된다. 그가 매일 점심 시간에 올려다보는 나무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잠시 멈춰서서 그 빛을 사진으로 남기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전달하는 철학의 정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소한 아름다움에 눈길을 주고, 그 순간을 영원처럼 받아들이는 마음—바로 거기에 이 영화가 말하는 완벽함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히라야마의 침묵과 그 미학

이 영화에서 대사는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있다. 히라야마는 하루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응시하며 지나간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공허함이 아니라 풍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야쿠쇼 코지의 놀라운 연기 덕분에, 우리는 히라야마의 얼굴과 몸짓에서 말 이상의 것을 읽어낼 수 있다. 맑은 눈으로 주변을 관찰하는 그의 표정에는 때로 호기심 어린 빛이, 때로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어른거린다. 예의 그 조용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부탁을 받으면 군말 없이 들어주고, 누군가 곤란해하면 지갑을 열어 도움을 주는 등 히라야마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낸다. 그는 특별한 욕망이나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묵묵히 화장실을 닦는 그의 모습은 마치 세상을 향한 하나의 묵상처럼 느껴진다. 차갑고 번잡한 도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질 법한 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히라야마 자신은 누구보다도 세상의 작은 변화와 타인의 존재를 세심하게 지켜본다. 길가에 피어난 풀 한 포기, 공원 벤치에서 혼자 춤추는 노숙인의 몸짓까지도 히라야마의 시선에서는 모두 소중한 풍경의 일부가 된다. 그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닌 깊은 관심의 형태인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히라야마가 침묵을 통해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그는 일어나는 일을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오랜 동료가 갑작스레 그만두어도 담담히 혼자 일을 마치고, 가출한 조카가 불쑥 찾아와도 서둘러 돌려보내지 않는다. 오랜 단골 가게의 주인이 과거의 연인과 재회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에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피해준다. 그러나 그 침묵 뒤에는 묵직한 여운이 따른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감정의 파고가 그의 내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그의 침묵 속에 감춰져 있던 인간적인 흔들림을 마주하게 된다. 말없던 사내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오히려 백 마디의 대사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히라야마의 침묵은 이렇듯 삶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시에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관객은 그의 침묵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소리 없는 순간마다 되새김질하게 되는 묵직한 상징의 울림을 느끼게 된다.




도쿄의 미장센, 빔 벤더스의 시선

빔 벤더스의 연출은 히라야마의 일상을 담담히 좇는 동시에,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를 하나의 캐릭터처럼 그려내는 미장센을 보여준다. 이 영화 속 도쿄는 흔히 떠올리는 네온사인 번쩍이는 현란한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공중화장실이 세워진 공원과 거리, 골목길과 신사, 다리와 강변 등 일상의 공간들이 차분하고도 정교한 앵글로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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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더스는 일본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의 실재하는 독특한 공중화장실들을 영화 무대로 활용하여, 일상의 공간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어떤 화장실은 미래지향적인 유리 건축물이고, 또 어떤 곳은 전통 가옥처럼 아늑하며, 투명한 유리벽이 사람이 들어가면 불투명해지는 마술 같은 공간도 있다. 이러한 배경들은 히라야마의 하루와 어우러져 특별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깨끗이 닦인 세면대와 거울, 흰 타일에 비치는 햇살, 규칙적으로 배치된 소품들은 그의 정돈된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시적인 미장센이다. 또한 도쿄의 거리 풍경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침 해돋이와 황혼의 장면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펼쳐 보이며, 그 거대한 도시 속에서도 변함없이 돌아오는 하루의 순환을 상기시킨다.

벤더스는 이처럼 공간의 표정을 섬세하게 포착함으로써, 히라야마가 살아가는 세상을 관객에게 체험시키고자 한다. 카메라는 종종 히라야마의 시선 높이에서 머문다. 그의 눈에 비친 도쿄는 때로는 분주하지만 대부분은 놀랄 만큼 고요하다. 출근길에 스치는 사람들의 발걸음, 신호대기 중인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거리 모퉁이의 오래된 나무 한 그루… 이런 요소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 화면에 담길 때, 우리는 자연스레 그의 내적 세계에 동화된다. 이는 일본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이 도쿄의 일상을 담아내던 방식을 떠올리게도 한다. 실제로 벤더스는 평소 오즈에 대한 경의를 여러 번 표해 왔고, '퍼펙트 데이즈'의 느긋한 호흡과 고요한 깊이는 오즈 영화의 현대적 계승처럼 느껴진다. 벤더스의 연출은 잔잔한 관조의 미학을 통해, 관객이 화면 속 도쿄의 공간에 머물며 사색하도록 이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빔 벤더스가 오랜만에 선보인 가장 아름답고도 사려 깊은 영화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쿄라는 공간은 히라야마라는 인물을 비추는 거울이자, 벤더스가 관객에게 건네는 철학적 질문의 배경화면이 된다.




음악과 이미지로 전하는 울림

이 영화에서 음악과 이미지는 대사만큼이나 중요한 감정의 언어다. 히라야마는 아날로그 카세트테이프를 모아둔 음악 애호가로, 그의 밴에서는 늘 옛날 음악이 흘러나온다. 더 벨벳 언더그라운드, 더 킁스(The Kinks), 오티스 레딩, 패티 스미스 등 60~70년대의 록과 포크송, 그리고 일본의 옛 대중가요가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운다. 이 중에서도 루 리드의〈Perfect Day〉와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은 영화의 핵심 순간에 등장하며, 히라야마의 내면을 비추는 창문 같은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Perfect Day”가 흐를 때 관객은 히라야마의 조용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클라이맥스에서 “Feeling Good”의 선율이 울려퍼질 때 그의 얼굴에 스치는 복잡미묘한 감정의 물결을 고스란히 함께 타게 된다. 말로 드러내지 않은 그의 마음속 풍경이 음악을 통해 은은히 전달되는 것이다. 또한 극 중 두 번이나 등장하는 「The House of the Rising Sun」(애니멀즈의 곡)은 가사의 의미(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을 한탄하는 노래)와는 반대로,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히라야마의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듯하다. 벤더스는 한때 신부가 되고 싶어했던 자신의 이력을 투영하듯, 음악을 통해 관객을 일종의 성스러운 예식으로 이끈다. 그 예식은 거창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경건히 맞이하는 태도에 가깝다.


시각적인 이미지 역시 강렬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 히라야마가 애정을 갖고 찍는 필름 카메라의 사진들은 모두 나뭇가지와 햇빛에 관한 것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을 포착한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그의 시선의 철학이 담겨 있다. 덧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아두려는 마음, 그리고 그렇게 잡아 둔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태도 말이다. 영화는 매일 밤 히라야마가 잠들 즈음 보여주는 몽환적인 영상 시퀀스를 통해, 그가 찍은 사진이나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꿈결처럼 스쳐 지나가게 한다. 잔상처럼 겹쳐지는 나무와 하늘의 이미지들은 마치 그의 잠재의식이 하루 동안 느낀 행복을 곱씹는 시적인 몽타주처럼 보인다. 또한 후반부 강변에서 펼쳐지는 그림자놀이 장면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무언으로 표현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히라야마와 어느 노신사가 아이처럼 그림자를 밟으며 장난치는 모습은, 한편으론 다가오는 죽음을 앞둔 자의 쓸쓸한 실루엣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남은 시간까지 놀이로 승화하는 삶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대사보다도 더 깊숙이 관객의 감정을 건드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한 폭의 사진이나 한 곡의 선율처럼 마음에 스며드는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가 조카 니코와 함께 자전거를 타며 도쿄의 거리를 지나고 있다.




행복과 기억, 존재에 대한 성찰

<퍼펙트 데이즈>는 궁극적으로 행복, 기억,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담고 있다. 히라야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곱씹게 된다. 남들이 보기엔 하잘것없어 보일 법한 일을 하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만족스러워 보인다. 번쩍이는 성취나 특별한 사건 없이도 충만한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지금은 지금이다(Now is now)


영화는 “지금은 지금이다(Now is now)”라는 히라야마의 한마디를 통해, 행복이란 결국 현재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임을 담담히 설파한다. 그의 행복은 소박하지만 진실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는 충만함, 그것이야말로 일상의 작은 즐거움들이 모여 만든 행복의 정수일 것이다. 영화 후반부, 히라야마가 운전하며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그 행복이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닌 인생에 대한 깊은 감사와 통찰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완벽한 하루란 거창한 조건이 갖춰져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 비로소 완성됨을 영화는 조용히 일깨운다.



한편 이 작품은 기억의 문제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더욱 깊이 성찰한다. 히라야마의 일과 취미가 모두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는 행위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그는 오래된 노래를 듣고, 헌 책을 모으며, 필름 사진을 찍어 현상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매체들을 고집하는 모습은 마치 추억과 시간의 켜를 소중히 붙들어매는 행위처럼 보인다. 어쩌면 히라야마는 과거 어느 시점에 크나큰 상실이나 변화를 겪었고, 그 이후로 기억의 조각들을 모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의 가족사가 살짝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오랫동안 왕래 없던 그의 누나가 갑자기 찾아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히라야마의 얼굴에는 복잡한 회한과 슬픔이 스친다. 기억을 잃어버린 아버지와, 과거를 입 밖에 내지 않는 아들. 두 세대의 기억의 단절은 묵묵히 버티던 히라야마를 한순간 무너뜨린다. 평온하던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장면은, 그 역시 완벽하지 않은 인간임을, 과거의 상처와 억눌린 감정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 대목을 통해 기억이란 곧 존재의 일부이며, 기억의 부재는 존재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히라야마는 결국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겠다고 고개 저으면서도, 돌아서는 누나를 힘껏 끌어안는다. 말없는 포옹 속에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그들이 공유한 지난날들에 대한 애틋함까지 담겨 있다. 잊혀져가는 기억들과 아직 남아 있는 기억들이 교차하는 그 순간, 우리는 삶의 쓸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르고 기억은 사라지지만, 현재 이 순간의 존재만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 말이다.


깨어있는 의식과 따뜻한 마음을 불어넣으면, 그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된다


결국 존재의 본질에 대해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히라야마라는 인물은 사회적 지위나 과거의 업적과 무관하게,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몸소 보여준다. 그는 물질주의와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한 발 비켜서서, 날마다 자신만의 속도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간다. 고급 슈트를 입은 화이트칼라도 아니고, 가정을 이룬 가장도 아니지만, 그의 존재는 그 누구보다도 빛난다. 왜냐하면 그는 존재함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사람들을 대하고, 해가 지면 잠드는 그 평범한 과정 속에 깨어있는 의식과 따뜻한 마음을 불어넣으면, 그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된다. 히라야마는 바로 그 점을 가르쳐준다. 영화의 마지막, 다시금 도쿄의 아침 해가 떠오르고 히라야마가 밴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삶은 계속되지만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벤더스는 영화 내내 도쿄의 동틀 녘 장면들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세상이 맞이하는 끝없는 재생의 순간을 강조한다. 그리고 속삭이듯 들려준다. 세상의 결함과 어둠을 한탄하기보다는, 오늘 눈앞에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을 붙잡으라고. 잡을 수 없이 사라지는 것들의 덧없음을 슬퍼하기보다는, 그 순간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완벽한 날들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오늘이라는 하루를 완전하게 채울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조용한 확신으로 보여준다. 히라야마의 나직한 행복과 응시를 통해, <퍼펙트 데이즈>는 우리 각자의 존재 방식에 대해 깊은 울림을 남기는 한 편의 서정시처럼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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