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예술

미술관과 잔치국수

ㅈㅜㅅㅓㅂ

by 야옹이
깨끗한 하늘과 차없는 광화문

이중섭(1916-1956)은 힘들고 어려웠던 삶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정직한 화공’이자 일제강점기부터 ‘소’를 그려낸 민족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이후 이중섭에 관한 전시, 영화, 연극, 소설 등이 꾸준히 만들어지면서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국민화가이기도 하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원산의 한 고아원에서 잠시 미술을 가르치던 시기였으며, 갓 태어난 그의 첫아들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한 때의 작품.
세상을 떠난 아들의 무덤에 이중섭은 온갖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그려진 그림을 함께 묻었다고 함.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작가 였음.

프로젝션으로 작품을 크게 보여줌
닭과 병아리
은지화

가족과 헤어져 홀로 피란 생활을 이어가던 이중섭의
궁핍한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그림에의 열정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은지화.


당시 이중섭은 다방이나 술집, 심지어는 길바닥과 쓰레기통에서 담뱃갑을 주워 그 안에 든 은박지를 사용했다고 한다.


역시 고수는 연장탓을 하지 않는다.


엽서화

이중섭은 엽서에 수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엽서의 수신인은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였다.


프랑스 유학을 꿈꾸던 그는 마사코에게 보들레르, 발레리, 릴케, 베를렌느 같은 시인들의 시를 외워서 들려주거나 정결하게 베껴 써주기도 했다고 한다.


역시 조선의 로멘티스트


춤추는 가족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그렸던 화가 이중섭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그리움을 담아 작품 제작에 매진했던 그는, 거처를 옮기고 건강이 나빠지는 와중에도 아이들이나 가족을 계속 그렸다.


비루한 현실에서도 이상을 그려낼 줄 알았던 화가

뒤에서 호사가 아주머니들이 잘생겼다고 연신 거품 물며 생전 사진 및 작품 관람.

인사동은 만오천원 여긴 사천원(낙원상가)
청계천 세운상가 방향
0.5초 홍콩 느낌

날씨 : 좋았다. 좋은 정도를 넘어 더웠다.

느낀 점 : 문화생활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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