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일이라도 너무 강렬한 느낌을 받으면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사방으로 수만 리나 떨어진 데서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판에 정말 멍청한 짓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내가 특별히 공부한 것이라고는 고작 지리와 역사와 산수와 문법이라는 생각이 나서, (좀 언짢은 기분으로) 그 꼬마 아이에게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나에게 대답했다.
'괜찮아.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나는 한번도 양을 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오직 그릴 수 있는 두 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에게 다시 그려 주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의 그림을. 그런데 놀랍게도 그 꼬마 아이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냐, 아냐! 난 보아뱀의 뱃속에 있는 코끼리는 싫어. 보아뱅은 아주 위험하고, 코끼리는 아주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데는 아주 작아서, 나는 양을 갖고 싶어.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그때 나는 모터를 분해할 일이 우선 급해, 참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쓱 그어 댔는데, 그게 이 그림이었다.
그러고는 던저 주며 말했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어.'
그런데 놀랍게도 이 어린 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게 아닌가
'내가 원한건 바로 이거야! 이 양을 먹이려면 풀이 많이 있어야 할까?
'그게 걱정이야?'
'내가 사는데는 아주 작아서...'
'아마도 충분할 거야. 내가 그려 준 건 아주 조그만 양이거든.'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이것 봐! 잠이 들었어....'
나는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
뒷날 비행사가 되고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될 이 소설의 화자는 여섯 살 소년이었을 적에 보아뱀 한 마리가 맹수를 삼키고 있는 그림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도 그림을 그렸다. 마침내 성공한 그림이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고 몸이 불룩해진 보아뱀이었다. 그러나 이 걸작속에서 모자밖에 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해 그는 <속이 보이는 보아뱀>을 다시 그려야 했다. 이 두 그림이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그림을 이해하는 어른들을 만나고 싶어 했지만, 만날 수 없었고, 늘 두 번째 그림이 필요했다. 보아뱀의 속을 제힘만으로는 투시할 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외롭게 살아야 했던 것이다.
어린왕자는 그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두 번째 그림이 필요 없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다른 별에서 온 이 아이는 단순한 선에서 뱀을 알아보고, 그 속을 뚫고 들어가 코끼리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 동화에는 다른방식으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뱀이 있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아프리카에, 사막에 발을 내려놓고 나서 처음 만난 생물은 바로 뱀이었다. 자기 별로 돌아고 싶었을 때 그는 이 뱀에게 도움을 청했으며, 그래서 그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접촉한 생명도 이 뱀이었다. 이야기의 구조에서 이 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은 동화 전체의 주제를 대표하는 여우의 강력한 인상에 압도되어 주목을 받지 못한다.
세상의 물정을 깊이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여우는 현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는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 주고, 그 가르침을 실습한다. 인간은 자기가 공들여 일구고 가꾼 것들과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일만 사람을 알고 지내고, 일만 가지 물건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자신의 마음과 노력을 부어 길들인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일만 사람을 바쁘게 만나고 일만 가지 물건을 숨차게 끌어 모았지만, 누구에게도, 어느 물건에도, 자기가 살아온 삶의 시간을 새겨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만 사람은 그 사람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일만 가지 물건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생애 내내 눈앞의 보자기보다 더 적은 시간밖에는 가지지 못할것이다. 그가 눈을 감으면 그 시간은 꺼져 버릴 것이다.
여우가 말하는 <길들인다>는 것은 자기 아닌 것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그것의 삶 속에,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있게 하는 일이다. 존재가 세상에 진정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권력이나 소유나 명성이 아니라 이 길들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