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07. 나무들 비탈에 서다
작품들은 그 작품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뿐만 아니라,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탁월한 보편성 때문에 우리가 과거 살아왔던 세상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을 이해하게 함으로서 삶의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발견하는데 의미 있는 전형을 제시해준다..
우리 문학사에서 고전으로 굳건한 자리를 지 키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는「나무들 비탈에 서다」역시 6·25 전쟁과 전후 한국사회의 피폐한 현실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징적으로 제 시하고 있는 실존적인 비극적 삶의 무게를 전쟁 을 경험한 전상자의 아픔을 통해 탁월하게 구체화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중 한사람인 동호는 전쟁에 참가할때까지 삶의 부조리한 현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사회적인 힘에 밀려 의미없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어른’들이 마시는 술도 배우고 여자의 육체도 알게된다. 그보다 전쟁에 먼저 참전한 현대는 동호를 어른을 만든다는 뜻에서 그러한 행위를가르쳐준다.
그는 후방에 두고온 애인 숙이에 대한 죄의식으로 얼마간 불안해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줄곧 어른들의 습성을 계속함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던 자의적인 결별성을 극복하려 한다. 즉 그는 수줍어하고 불안해하는 ‘인간의순결’을 상실하게 될 때마다 거기에서 오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다시금 술집여자인 옥주를 찾아 자신의 양심을 그녀의 육체로서 마비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타락된 모습을 어둠 속에서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그동안 잃었던 자아를 다시 찾고 분노한 끝에 죽음으로 대결한다. 동호는 추운 겨울날 이동한 부대가 주둔하고있는 추풍령을 떠나 좁은 산협길을 걸어 소도고미까지 옥주를 만나러 갔을 때, 옥주가 청년단장과 어둠속에서 관계를 맺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동호가 그들에게 총을 쏜 것은 그들의 교접행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도 그들 가운데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 일 것이다.
그가“육신처럼 야속한 건 없어요. 이 몸뚱아리가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을 아주 지워 버린다”라는 옥주의 말을 기억한 것은 그것이 자신에 대한 역설적이고 반항 적인 목소리와 일치한다.
다시 말해, 동호에게 있어서 옥주와의 육체관계는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숙이의 모습을 지워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죽음만이 인간의 꿈과 인간가치의 상실로 타락해 가는 자신을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황폐한 전쟁의 상황 속에서 죽음으로서 인간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것 이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그는 전쟁의 파편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결코 패배자는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