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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이 Dec 05. 2023

길가메시 서사시

메소포타미아 문명 전

“왕이시여,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과 함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찾을 수 없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노래를 듣고 좋은 술을 마시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하세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가 기록한 가장 오래된 영웅신화로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보다 무려 1,500여년 앞선다. 영국의 판타지 작가 J.J.R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길가메시 서사시의 영향을 받았다. 구약 성경의 대홍수도 길가메시 서사시에 언급된 대홍수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가장 위대한 서사시”라고 평가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과 달리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사후 영혼의 재판이라는 개념이 없다. 사후 세계에 들어가는 죽은 자는 선하게 살았느냐 악하게 살았느냐 하는 점보다는 죽을 때 성년에 달했는가, 결혼했는가, 어떤 상태로 죽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후 세계에서 빛나는 영생을 누리리라는 식의 희망 같은 것도 없다. 불멸은 단지 후세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업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학자들은 이 서사시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성숙 이야기로 해석한다. 어린이의 불가능한 꿈을 버리는 대신 현명함을 얻음으로써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해진다.


노동이 분업화·전문화되고 신전을 중심으로 물품의 수합과 재분배가 이루어지면서 사제 계급과 정치 계급이 통제권을 갖는 위계 사회로 나아갔음을 그릇을 키워드로 해 설명한다. 쐐기문자의 창안은 메소포타미아가 이룬 대표적인 문화 혁신이었다. 문자로 교역과 거래의 내용을 기록하였으며, 추상적인 개념을 발전시키고 주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갔다. 문자 창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원통형 인장도 발명되었다.

신상과 의례 물품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신과 신전 건축, 의례 행위를 소개하였다. 거대한 신전을 짓고 그에 수반되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 또한 문화 혁신의 한 부분이었다.

인장의 소지자가 섬기는 신과 글을 도안에 넣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쓰였다. 우르의 왕실 묘에서 발굴된 장신구들은 착용자의 신분을 드러내거나 죽은 자가 지하세계에 내려갔을 때 힘을 보태기 위해 고가의 수입 재료를 포함한 재료의 물성에 따라 맞는 형태를 선택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상’ 에 대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태도는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인물상을 만들 때 개별 인물의 개성적 특징을 본뜨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업적에 걸맞은 이상적인 속성을 조합했기 때문에 개별 상의 생김새는 매우 유사하다. 

통치자의 군사적·종교적 공적을 적은 문자 기록이 통치자에게는 초상 미술만큼이나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주 먼 동료 인간과 오늘의 나를 잇는 희로애락의 이야기

메소포타미아를 상징하는 땅과 강,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장 그리고 일상을 빼곡하게 기록한 쐐기문자가 담겨 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손바닥 안의 작은 점토판에 세밀하고 집요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오늘의 우리 이야기와 놀랄 만큼 닮아 있어 수천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신-앗슈르 제국은 궁전 내부를 장식한 아름다운 석판 부조로 이름이 높았다.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는 당시의 정세를 정교한 조각 기술로 담은 작품이며 <강을 건너라고 지시하는 앗슈르 군인> 등 여러 부조에서 상이 현실을 대리하는 힘을 가진다는 앗슈르인들의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길가메시는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이 인간인 특별한 존재

젊은 남자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많은 처녀에게 몸을 바치도록 했다. 압제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하늘에 탄원하자 신들은 길가메시와 싸워서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인간 엔키두를 만들어 지상으로 보냈다. 두 영웅은 온종일 싸움을 벌였으나 끝내 승패를 가리지 못하자, 결국 싸움을 중단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신-바빌리 제국은 수천 년 전통의 벽돌 제작 기술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수도 바빌리(바빌론)에 당시 세계가 경탄할 만한 건축물을 세웠다

이 모든 성취의 바탕에 소박한 벽돌 한 장이 있다

어느 날, 길가메시는 엔키두에게 사막 너머 서쪽 세계 끝에 있는 신성한 삼나무 숲으로 가서 나무를 베어오는 모험을 제안했다. 이 숲에는 훔바바라는 괴물이 신들의 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훔바바를 죽이고 거대한 삼나무를 베어 왔다. 이런 용맹한 길가메시의 풍모를 보고 사랑에 빠진 여신 이슈타르가 구혼했으나 차갑게 거절당했다. 격분한 여신은 하늘의 황소를 땅으로 보내 이들을 공격하게 만들었지만, 두 주인공은 오히려 소를 죽이고 심지어 고기를 잘라 여신에게 던져 모욕했다. 이 오만방자한 행동이 결국 화를 불렀다. 신들이 모여 재판한 결과 둘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웬일인지 엔키두에게만 죄를 물어 목숨을 앗았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영생불사의 비밀을 알아내겠다고 결심했다.

실망한 길가메시는 계속 영생의 비밀을 찾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자 우트나피시팀은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가르쳐 주기 위해 만일 그가 ‘작은 죽음’, 곧 잠을 피할 수 있다면 진짜 죽음도 피할 수 있으니 해보라고 권했다. 그렇지만 먼 여행 때문에 피곤했던 길가메시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7일 동안이나 곯아떨어졌다. 잠에서 깬 길가메시가 실망하자 아내가 영생은 아니더라도 대신 다른 보상을 해주자고 제안했다.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풀이 바닷속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이다. 길가메시는 회춘의 풀을 얻어 귀향길에 올랐다. 가는 도중 샘에서 목욕하는데 뱀 한 마리가 나타나 그 풀을 먹고 허물을 벗고는 젊음을 되찾았다. 길가메시는 영생도 회춘도 불가능하게 된 상태로 고향 우룩으로 돌아왔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빈손으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이제 길가메시는 지혜를 얻었고 폭군이 아니라 현명한 왕이 되었다. 그가 깨달은 바가 있으니, 비록 우리가 영원히 살 수는 없더라도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서 그 이야기가 후대에 전해지고 또 그것을 기리는 기념물이 만들어지면 불멸에 이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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