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리어왕
어느 새벽 나는 리어왕이었지 / 김경후
새벽 두 시, 종로 한가운데, 리어왕, 비틀거리고 계시다.
바지가 반쯤 내려간 리어왕. 벽에 머릴 박은 리어왕, 깨진 술병들, 고기 타는 냄새 한가운데.
물론, 주저앉은 리어왕도 계시지, 모든 리어왕은, 감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감히, 고함치신다, 그가 리어왕이 아닐 리 없지, 그러나, 이때, 나타난 젊은이, 난세난국엔 감히 이런 일도 있는 법, 그만, 돌아가세요. 너,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정말 다행이지,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나, 감히. 모두 그가 누군지 알고 있지.
야, 리어왕, 오늘 상연 끝났어, 뭉개진 분장은 지우라고, 오늘은 그만 죽어도 돼, 리어왕, 분장을 지워도, 리어왕, 내일이 시작하면, 또, 리어왕, 당신은 리어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다행이지,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나. 감히. 모두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지, 감히.
세벽 세 시, 리어왕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감히, 오늘의 대사를 읊조리며, 다리 난간을 붙들고,
어느 새벽, 나는 리어왕이었지, 너도 리어왕이었지, 한때. 용감한 직언을 올린 젊은이. 그가 리어왕
이 되는 새벽도 있었다. 배역은 매일 바뀌는 법, 그리고 감히, 또, 새벽 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