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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이 Dec 31. 2023

마음만은 CEO인 훌륭한 노예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자기계발의 연원은 영국 작가 새무엘 스마일스의 <자조론>에서 비롯된다. 작가 이름은 낯설어도 다음의 이 말은 매우 익숙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영국 시인이자 목사인 조지 허버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너 자신을 도와라, 그러면 하나님도 너를 도우시리라.” 미국에서 자기계발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self-improvement’(자기 개선)나 ‘self-empowering’(자기 역량 강화)으로도 번역되지만, 저자는 ‘self-help’(자조)의 뜻으로 사용한다고 본다. 스마일스의 <자조론>의 원제도 ‘self-help’다.


“너 자신을 도와라, 그러면 하나님도 너를 도우시리라.”

스마일스의 <자조론> 같은 책은 습관의 변화를 통해 인격의 변화를 도모하는 일종의 수신(修身)론이었다. 성공을 꿈꾸며 도시에 와서 버거운 노동에 종사하던 무학자들에게 근면과 절약, 헌신과 끈기를 통해 성공할 것을 독려하는 기능을 했다. “<자조론>은 근대적인 인간형의 양성과 훈육에 주리고 목말랐던 이들에게는 실로 축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조론>의 영향력은 미국을 넘어 아시아를 강타했다. 일본에선 메이지시대에 번역됐고, 이후 100만부 이상 팔렸다. 문부성은 윤리 교과서로 지정했다. 한국에선 자기계발 전문작가인 공병호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근래 주목받는 자기계발서 작가인 이지성도 꿈을 이루는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 책으로 <자조론>을 꼽았다.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 성공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강력하게 견지.

 “자기계발 담론은 가시적으로는 다양한 양태를 띠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지향점을 담지하고 동일한 효과를 유발한다. 자기계발이 지향하는 바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성공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강력하게 견지하는 것에 있다. 이것은 물론 가시적 증거들로 엄격하게 증명될 수 없는 일종의 강력한 신념이라 할 수 있다”

현세의 성공에 대한 열망의 연료로 소비

자기계발서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현재 수많은 자기계발 교재와 상품들을 크게 두가지 패러다임으로 나누어 정리한다. 하나는 신비적 패러다임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적 패러다임이다. 두 개의 패러다임을 두고 “모두 기독교의 특정 양태와 조우한다”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핵심 테제가 자기계발의 윤리적 패러다임과 관련이 있고, 자기계발의 논리가 개신교 윤리의 세속화에 연원하기 때문이다.

개신교도에게 근면과 금욕을 통한 현세의 성공은 곧 구원의 증거


개신교도에게 근면과 금욕을 통한 현세의 성공은 곧 구원의 증거(보장)로 추구됐다. 기독교 신학의 이신론(理神論)조차도 미국에 건너와서는 자기계발의 에토스와 맞물리며 변형됐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우주를 창조할 때에 우주작동의 원리를 설정하고 나서 곧장 이 사업장에서 은퇴하고 흔들의자에 앉아 남은 생을 보내는 영감탱이 하느님, 즉 이신론의 신개념을 지지했다”. 이신론에서의 신은 내세를 가지고 협박하지 않는다. 사막의 교부가 고행으로 몸을 단련하고 중세의 사제가 명상으로 마음을 단련한 태도와도 대척점에 있다. 저자는 “고행에 들어선 이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여 현세의 중력을 극복하고, 신과 하나되어 내세의 지복을 획득하겠다는 의지는 미국에서 소멸됐다”고 말한다. 이신론은 원산지인 유럽에서와 달리 미국에서 현세의 영달에 기여하는 정신적 원동력의 일부로 기능하고, 현세의 성공에 대한 열망의 연료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선 당당하게 자신의 소유를 향유하고, 타인에게 과시하는 것이 용납되고, 심지어 장려되었다. “베버의 명제는 미국에 와서 현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두드러지게 세속화된 방식으로 채택되었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제시한, 미국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돈은 돈을 낳고 그 자손들은 더 많은 돈을 낳는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윤리적 자기계발의 시조다. 100달러짜리 화폐 속 초상화에 등장하는 프랭클린은 “돈은 돈을 낳고 그 자손들은 더 많은 돈을 낳는다”며 복리의 마술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에머슨은 신비적 자기계발의 시조다. 부와 성공의 비밀을 다루었다는 론다 번의 <시크릿>의 근본 교의가 원시적 형태로 담겨 있는 <대령(大靈)>에선 개인의 극단적 자립을 강조했다.


"외부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성실한 노력으로 돌파할 것"

윤리적 패러다임은 근본의 힘을 신뢰하며, 원하는 바와 관련해 외부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성실한 노력으로 돌파할 것을 촉구한다. 신비적 패러다임은 상상의 힘을 신봉하며, 원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노력을 내려놓고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강변한다. 전자가 자신의 의지를 활용해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쟁취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윤리적 패러다임은 가장과 서부 개척자로 상징되는 남성적 패러다임을, 신비적 패러다임은 성직자로 표상되는 여성적 패러다임을 표상한다.



노력을 통한 현상유지의 한계와 계급상승의 불가능을 초래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윤리적 패러다임을 드러낸다면, <시크릿>은 신비적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책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제치고 <시크릿>이 뜨게 된 것은 신비적 패러다임이 윤리적 패러다임을 압도한 현실을 반영한다”. 윤리(근면) 영역에서 생존과 신분 상승의 해법이 발견되지 않으니, 신비(믿음) 영역으로의 비약이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주어진 해법이 됐다. 두 책의 역전은 개인의 노력을 통한 현상유지의 한계와 계급상승의 불가능을 초래하는 양극화의 심화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자기계발은 거대한 교육사업인 동시에 일종의 유사종교로 전환되어 갔다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와 결합해 더 맹렬하게 작동된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자기계발은 거대한 교육사업인 동시에 일종의 유사종교로 전환되어 갔다. 자기계발의 타락 현상도 겪게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비적 자기계발의 원류에서는 초월과 독립을 강조하는 고결한 가르침이지만, 토착화 과정에서 그런 점들은 사라졌다.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은 성공을 향한 현실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의 세계화는 미국 가치관의 세계화였다. 미국의 자기계발이 그대로 이식된 곳이 한국이다. 한국은 토착화 과정도 거친다. 저자가 거론하는 인물은 한국과 세계에서 가장 큰 초대형 교회를 일구어낸 조용기 목사다. 그가 강조하는 ‘믿음의 위대한 힘’ 같은 것이 신비적 자기계발의 토착화를 보여준다. 월남한 이북 출신 교인들의 정서를 지배하는 반공주의는 기본적으로 윤리적 자기계발의 에토스와 궤를 같이한다. 이들의 윤리는 ‘착하고 올바름’이라는 뜻보다는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읽어야 한다며, 대표적인 인물로 이명박 장로를 꼽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것이 바로 자기계발이다.
스스로를 시장에 인적자원으로 진열하고 판매한다.


한국을 장악한 자기계발의 문제에서 지속적으로 파고드는 것은 신자유주의다. “자기계발은 신자유주의의 정신에 매우 충실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것이 바로 자기계발이다. 스스로를 시장에 인적자원으로 진열하고 판매한다.” 자기계발 담론은 현대 사회를 작동시키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들어맞는 특정한 인간형을 만들어내야 한다. 평범한 학생은 자기주도형 인재가 되어야 하고, 일개 사원은 사장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게 단적인 예다.



자기계발이 지향하는 것은 목표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목표의 성공이 곧 자기인 것이다. “이는 사회의 현실에서 눈을 돌려 개인의 이상(욕망)에 착념하게 만든다. 구조에서 개인으로 초점을 돌리게 만들고, 개인에게 무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자기 세뇌다. 이러한 세뇌의 핵심에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놓여 있다.”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어 독서하고 실천한다면 당신의 삶은 달라지리라


자기계발을 소비한다는 것은 삶이 난국에 처해 있다는 신호다. 자기계발서는 이 난국에서 “돈을 지불하고 이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어 독서하고 실천한다면 당신의 삶은 달라지리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만은 불안사회가 조성하는 공포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고 펌프질을 해대는 것이다. 이러한 도식은 종교(특히 기독교)의 구원론적 도식과 다를 바가 없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자기계발을 수행할 자유만을 강요하며, 끝없는 인적자원 개발만을 요구하는 극악한 세계이다.”


그래서 살림 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자기계발서를 읽어서 삶이 나아졌는가, 나아지고 있는가. 한국과 미국은 자기계발의 이념과 패러다임이 강력하게 작동되는 국가다. 두 곳 모두 신자유주의 지배 아래 있다. 오래된 자기계발 이념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파국을 맞았다.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이 효과적인 것이라면, 한국에서 비정규직·실업·자살 문제로 시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은 것만큼은 분명하다.



2023년 12월 31일 방구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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