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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이 Jan 09. 2024

나의 세계관이 나의 경계

송길영 

‘서울러’ 라는 소속감 혹은 구별 짓기


세계 속 K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기에, 이 땅의 정주자 입장에서도 K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제 점점 더 국가보다 내가 사는 도시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나라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에 새로운 세대는 공감을 보내지 않습니다. 내국인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적 자부심을 언제 느낄까요? 오히려 외국인이나 해외에서 살다 온 이들이 한국의 물질적 풍요, 편리한 시스템, 우수한 치안에 감탄하며 ‘한국은  선진국’ 이라고 치켜 세우고 있지만,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경쟁과 스트레스로 인해 ‘헬조선’ 이라는 단어로 삶의 어려움을 자조적으로 설명하곤 했습니다.


나의 세계관이 나의 경계
어디 사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에 그 삶에 관한 모든 정보가 함축 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당 사람들은 성남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판교 사람들은 분당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서판교는 판교라 하지 않고 반드시 서편교라 합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이라는 물리적 주소를 갖고 있지만 심리적 위계는 역순입니다. 가장 상위 서열에 서판교가 있따는 말이니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입니다.



‘다양성 담론’ 에 대한 ‘능력 주의’ 의 반작용


대학새들이 자기 학교와 전공을 타이포와 로고로 새긴 점퍼를 ‘과잠’ 이라고 합니다. 이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귀엽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유명 대학에 이름이 과잠에 붙으면 그 자체로 계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구별이 치열해지는 폐해를 낳기도 합니다.


‘너는 그냥 S대니? 나는 S대에 P고등학교야’ 


이렇게 과잠에 출신 고등학교 까지 적으면서 단계를 높이면 2관왕이 됩니다. 여기에 ‘메디컬 스쿨’ 까지 써 있으면 3관왕입니다.

이렇게 은연중에 계층화에 익숙해지고 특권의식 까지 갖게 된다면 세상 구석구석을 채운 다른 가치들을 발견할 기회를 놓치게 되지 않을까요? ‘나는 노력했으니까 드러낼 수 있다’ 라는 인식이 바로 메리토크라시(meritocacy)의 함정입니다. 능력 주의, 다시 말해 나는 스스로 노력해서 획득한 능력 갖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혹독한 식민지 경험과 전쟁을 치르고 잿더미에서 시작한 한국의 국가주의는 좀 달리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경쟁과 전쟁에 최적화 되어 불평을 늘어 놓으면서도 국가의 규칙에 저항 없이 잘 따른다고 보는 것 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 속에 자연스럽게 우열이 정의되고 직위와 학벌 같은 위치가 하나의 권위적인 표상이 됩니다… 50대가 훌쩍 넘어서도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학력을 나열하는 관행, 다닌 고등학교까지 언급하며 한 개인의 출신을 규정하려 드는 습성은 새로운 시대로의 집입을 가로 막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경계할 것은 학력만이 전부인 이력입니다.다른 이에게 무엇인가 이로운 것을 주는 행위를 사회적 성취라 정의한다면, 배우는 이유는 꺠치고 얻은 지혜를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력은 사회적 성취의 단계에서 필요한 준비일 뿐, 그 자체가 성취라 보긴 어렵습니다…학벌을 성취라 생각하고 안주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내 그것을 잊고 겸허하게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권위의 명패를 벗어 던지고 일신하며 나아가는 이들에게 학위의 끝인 졸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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