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이
아이는 농사일에 바쁜 부모를 뒤로 홀로 걷는다 가을을 닮은 체육복을 입고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길을 걸었다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장에 학생들과 응원 나온 부모들이 청군백군 어우러져 울긋불긋 단풍 들었다 아이는 스스로 적막해졌다 백 미터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달리기를 못하는 다리가 하얀 출발선 앞에서 바들거린다 심자이 쪼그라든 대기 시간 오줌이 마려웠다 탕 총소리가 울렸다 한 발 먼저 내디뎌 달렸다 선두로 출발했으나 몸은 뒤뚱뒤뚱 쳐지며 꼴찌로 도착했다 소풍날 보물찾기에서 한번도 보물을 찾지 못한 그럴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배가 고플 뿐이었다 돗자리 펴고 옹기종기 모여 김밥 먹는 가족을이 파란 하늘에 담겼다 배가 고픈 아이는 스스로 자기의 이름이 불리지 않을 그 가을운동회 풍경의 배경이 되기로 했다 아이의 길에 이변은 없었다 무채색으로 자라난 아니는 보려고 하면 보이고 들으려고 하면 들리는 멀지 않은 곳에 그늘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