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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이 Jan 10. 2024

견고한 지붕 아래

김사이

먼 길을 같이 걸어온 몸뚱이가 앓는다

갈지자걸음에 우울이 달라붙어

무시로 들이닥치는 빚쟁이처럼 위태롭다


너의 가난을 증명하라 탈탈 털어 보여라

네 영혼의 색깔까지 정확하게 기록하라

속이고 속는 자를 걸러내는 동안

성실한 알몸들은 허공에 떠 부유하다

서류에 미끄러지고 절차에 미끄러진다

누구를 위한 것일까


세련된 욕망으로 합리적 욕망으로 유연한 결단으로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맹렬하게 때려잡는

말랑말랑한 왕국의 지붕

지붕 아래 넓고 화려한 대리석 무덤에 누우면

푹식하고 뜨뜻할까나


오랜 패배의 냄새는 퀴퀴한 지하방 같고

오랜 침묵의 냄새는 엇박자 기침 같은 

야만의 시간으로 뚜벅뚜벅 들어간다

단단해진 절망을 잘근잘근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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