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복통에 응급실에 실려갔더니
한달 전, 나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대학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수술방, 입원실을 침대에 누운 채로 3박 4일 여행 다녀왔다. 남의 손에 끌려다니던 내 몸뚱아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또 얼마나 간편했는지, 불편했는지를 논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다. 특히 펜타닐 무통 주사를 빼고 퇴원 준비를 완료한 채로 갑작스레 들이닥친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복강경 수술의 여파로 남은 배 구멍들에 호치케스가 팍팍팍팍팍 박히는 고통을 선사받았는데, 그 때의 슬픔이 아직까지 한으로 남아있다. 왼쪽 배를 스윽 만지면 여전히 눈이 질끈 감긴다.
그날 오후 한시쯤, 비슷한 수술로 입원한 옆 침대 이모가 호치케스 괴물 (그저 호치케스를 괴물로 칭한 것이다) 로부터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몇번 주먹을 쾅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해맑은 나는 보스 qc30 실버 헤드폰을 차고 귓구멍을 틀어막은 채 얼터너티브 락 음악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때 들은 음악은 R.E.M 의 것이었다. 엄마는 웃음기 가득한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너 들었어?” 물었다. 왼 손으로 헤드폰을 살짝 뺀 나는 “뭐가?”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고, 곧 엄마는 “아니야…ㅎㅎㅎ 다시 노래 듣어.”하며 친히 귓구멍을 틀어 막아줬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엄마 덕분에 나는 내게 닥칠 불행을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이미지로 당시 나와 엄마를 묘사하자면, 중학생 3학년쯤 된 사춘기 소녀(제 풀에 지쳐 반항기의 절정을 살짝 지난 그래프 속)와 전형적인 엄마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에겐 약간 사이코끼가 다분한 것 같다. (약간과 다분이라는 묘사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을까 싶지만 정말 그렇다.) 왼쪽에서 “하나도 안 아파!”라는 울림이 메아리처럼 실려왔지만, 뭐가 안 아프단 건지 난 도통 알 수 없었다. 알고싶지도 않았고…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왔다. 안광없는 눈동자부터 살짝 걸쳐 쓴 안경을 쓱 올리는 손짓까지… 보통의 간호 유니폼마저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후보정 CG 효과를 내보였다니까. 울고 불고 소리쳐도 전혀 봐주지 않을 것 같은 관상. 그는 왠지 외국 남자 개구장이 아이가 사진 속 머리 위에 악마 뿔을 덧그릴 것 같은, 전형적인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이런 편견 어린 태도와 프레이밍화는 어릴 적부터 경계해왔던 것인데, 아무래도 내 묘사력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잠깐 지나가는 엑스트라 묘사에 5줄이나 쓸 정도로 정성을 다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그날 아침 식사에 딸려온 진통제 몇알은 이불 속에 숨었는지 온데간데 없었다. 진통 주사도 효과를 다했고, 펜타닐 역시 뽑아가셨고, 그러니 나는 전투력 3의 무방비한 상태로 그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온 세상이 나를 억까하고 있었다. 링겔을 뺄 거면 호치케스를 빼고 빼시던지요…! 찰나가 영원같았다는 표현은 내게 첫사랑을 마주했을 때보다 이럴 때 더 자주 쓰이게 된다. 이런 고통은 뉴스에 허구언날 오르내리는 성범죄자들의 거기에나 선사되어야하는데… 의료계의 축복이 교정계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이 통탄스러웠다. 나는 그때의 아픔을 즉석에서 한예종 연극원 천재들의 연기 자판기처럼 이목구비를 쥐어 짜냄으로써 표현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하도 입원 내내 아프다고 징징거린 나머지 유의미한 관객층이었던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 눈물은 쥐똥으로도 안 볼 게 뻔했다.
시술은 1분도 채 안가 끝나버렸다. 나는 슬쩍, 이 과정이 끝났는지 곁눈질로 확인한 후에 “끝났어요.”라는 말이 들리자 마자 안도의 신음과 함께 징징거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더 징징거리는 대신 눈물콧물범벅으로 청순 가련한 순정만화 주인공이 흘리는 것 같은 눈물을 흉내내 마저 한방울 떨어뜨렸다. 엄마는 그 꼴이 몹시도 익숙한지 다이소 출신 물티슈를 벅벅 뽑아다 내 코에 가져다댔다. 킁…
옆에 킄킄킄 웃음 소리들이 들렸고, 하나도 안 아프다고 가녀린 목소리로 있는 힘껏 소리쳤던 이모는 “진짜 아푸지?ㅠㅠ”하며 앞의 모든 말은 사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구라였다고 정정했다. 그런데 이모 손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링겔과 내가 43%만 쓰고 내버린 것과 같은 펜타닐 무통주사를 보고나니 이 설움을 더는 감출 수 없었다. 이보다 더한 수술들을 , 태어나자마자, 태어났다는 이유로 반복해 견뎌내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해보였다. 그러니까 원래 내 자신이 불쌍해 보일 때보다 한심해보일 수록 더 서럽고 눈물이 나는 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내가 병원에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가 아니라 왜 병원에 가게 되었는지이다…
나는 사건 발생 2주후, 실밥과 호치케스를 다 푸르고 보험 처리까지 완료한 다음 돌아온 집에서, 초록빛의 나의 포근한 침대 이불 위에서 그 원인을 발견하게 된다. 검정색의 해괴망측한 모양의 돌기가 나있는 장요근 마사지기. 바로 이것 때문인 것이다. 발리에서 한달 내 요가반의 인요가 수업만을 찾아들었던 나는, 내 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더 사랑하기 위해 내 근육에 붙어있는 모든 근막에게 자유를 선사해주고 싶었고, 그리하여 이 마사지기를 작은 맘 먹고 장만했다…
그런데 맙소사. 이 기기를 보자마자 얘의 모양과 디어 마이 난소낭 부분, 왼쪽 아랫배가 찢어질 것 같아 아파요…할 때의 그 왼쪽 아랫배가 퍼즐조각마냥 딱 붙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예측이 맞는지 슬슬 그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눈이 질끈 감기고… 시린 것도 같고… 수술방의 찬기와 착착착 도구를 준비하시는 마취 간호사 선생님들의 로봇같은 스킬과 무자비함… 전신 마취제가 몸 속을 통과할 때의 감각… 물론 느낄 순 없었지만 마취제가 나에게도 단번에 통했다는 것에서 오는 비참함, 나 역시 한낮 인간이구나 싶은 안도감. 그리고 나의 바보같음… 어리 석음…이 밀려들었고 그것들은 전부 내 몫이었다. 그리고 불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시선들 (착각이다) 쏟아지는 안부전화와 (엄마를 통해 나의 수술이 동네방네 알려진 것으로부터) 죽과 비타민 선물들… 그것은 전부 ‘이유모를, 미상의, 수술, 전신 마취’ 등의 키워드에 매크로처럼 딸려온 반응들이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이 가짜(는 아니지만, 진짜 나는 같은 고통을 받고 죽다 돌아온 것이 맞지만)였고, 내 불찰로 인해 일어난 사고같은 것이었으며, 그 이유마저 정말 어이없고 나다워서 헛웃음 나게 될 것이라는 고백을 해야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고백만이 내 삶에 주어진 고백의 전부가 될 것이다 라는 예언.
엄마는 내가 발리에서 수차례 발리벨리와 코로나와 가슴 통증으로 인해 병원을 몇 번 거친 것과 이번 사건을 언급하며, “너 앞으로 보험은 어떻게 들래” 물었다. 질문은 아니었고 그저 어떤 호구같은 보험사가 널 받아주겠니…를 함축하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그건 역시 브루마블 특별 세금 면제권 카드와도 같은 나의 어린이 보험 효력이 종료되는 35살부터, <넌 어떻게 살래…> 라는 질문과 다를 바 없었다. 진짜 부자 돼야지… 이를 악물고 약하게 다짐했다. 그리고 지피티에게 물어봤다. 토톡토독. “이거 알고보면 상해 아님?” 의사 선생님이 당최 원인을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셨을 때, 진단서를 달라고 문을 벌컥 열었을 때, 보험사에 업로드하기 전만이라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내가 온갖 병을 품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단지 조금 과도한 호기심과 불운이 나를 따라다닌 것임을 보험사에게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희망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달라질 것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고, 내심 안도했다. 그냥… 어이가 없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있는 그대로 “어이없고 부끄러워…” 라고 말했다. 지피티는 아주 다정하게 답장해주었다.
ChatGPT의 말:
그 감정 너무 자연스러워…
우린 아플 때 보통 “원인 모를”이라는 말을 듣잖아. 그게 더 무섭고 막막한데, 이제 원인을 짐작할 수 있게 되면
너는 너 나름의 방식으로, “내 몸을 더 사랑하겠다”는 의지로 그 기구를 썼던 거잖아.
그리고 사실 원인을 알게 됐다는 건 되게 큰 자산이야.
원하면 내가 지금 너가 느끼는 감정을 — “어이없고 부끄럽다”에서 “이제야 이해했고, 몸과 화해한다” 이런 느낌으로 바꿔주는 짧은 문장(affirmation) 만들어 줄까?
ㄴ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