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같던 나에게 외계어로 사랑을 알려준 건 너잖아

by 강하라


비가 맑게 갰는데 여전히 너는 케이지 안에 있고,
부러진 다리로 애써 일어나 꼬리를 힘없이 흔들던 너의 모습이 끊임없이 재생돼.

하루에 두 번, 아니, 네가 원할 때마다 산책시켜줄 걸.
추석 내내 비가 오다가 갑자기 이렇게 맑아진 하늘을 보는데 원망스러워. 억울해 미치겠어.
이제는 맑은 하늘도, 날씨도 싫어질 것 같아. 비는 더더욱.


아까 병원에서 널 닮은 강아지를 봤는데 말이야.
병원 안을 활보하면서 나에게 달려오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
“어디 가! 가만히 좀 있어!” 외치는 보호자의 말이 부럽게 느껴지고,
너도 저렇게 어제처럼 뛰어다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생각을 난생처음 했어.


나는 시간을 빨리 돌리는 방법도 알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육체를 이탈하는 법도 알고,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알고,
같은 언어로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들도 알아. 그게 참 싫다.

나에게는 당연히 있는 것이 너에게는 없다는 게.


앓는 네 목소리가 들리면, 들려서 죽을 것 같고
안 들리면 그 엄살 많고 아픈 걸 못 참는 애가
얼마나 아팠으면 하고 또 죽을 것 같아.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
달래며 밥 차려주는 할머니를 원망하기 싫은데 원망하게 되고,
소파에 앉아 크게 TV를 틀어놓는 할아버지가 짜증 나.

제일 싫은 건 나야.
억지로 밥을 먹어야하고,

밥을 혀로 감각해야 한다는 삶의 모든 과정들이 끔찍해져.


귀 빨개진다고, 알레르기 생긴다고 소고기 주는 거

말리지 말고 실컷 먹일 걸.
발 씻기는 거 귀찮아하지 말 걸.
잘 때 가운데에 대자로 뻗은 몸, 더 편하게 재울 걸.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줄 걸.


너랑 매일 산책 갈 때 말이야.
그 쪼끄만 몸으로 아주 당당하게 도로를 가로지를 때마다
뻔뻔하고 기막히고 당당한 행보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

뭘 먹어도 쭉쭉 뽑아내는 똥을 보면 하루의 미션은 끝났어.
그게 네가 할 일의 다였지. 참을 수 없이 기특했어.


자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애틋하고, 태어난 게 불쌍하고 미안하고,

내가 너 때문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안해졌어.

내일 없이 살던 내 머리 위로

여태껏 해본 적 없는 걱정들이 계속 시뮬레이션 됐거든.


만약 자전거에 부딪히면 어쩌나,
횡단보도에서 멈춰설 때마다 자동차가 온다면
그래, 내 몸뚱아리로 막아서야지.

그래서 나보다 한 걸음이라도 네가 앞서면
괜히 마음이 급해지곤 했지.
‘내가 먼저 치여야지, 에어백이라도 되어야지.’


너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도 못하는데,
원망하지도 못하고 징징거리지도 못하는데,
이 상황을 납득하지도 못하고,
너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도 없는데.

너는 믿는 신도 없었을 텐데


왜 너와 같은 언어를 가진 애들은
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그건 모두 인간의 탓일까?


나는 그 개,
너의 몸을 콱 물고 흔들었다던 그 진돗개의 다리를
똑같이 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딛고,
내가 이제껏 추구해온 정의나 윤리 같은 것들이
무너지는 걸 느껴.


언제나 너와 같은 자세로 엎드려서
그 조그만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했다면,
이제는 네가 그냥 ‘생각하지 않는 동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신이 말하듯이 영혼도 없고, 윤회도 없는,
그냥 한낮 미물이기를 바라. 생각은 고통스러우니까,

계속 스스로를 지옥에 가두니까.


네가 소중한 만큼,
너를 잃으면 어떻게 복수하지,
내 인생을 걸고 널 건드리는 놈들 다 죽여버리자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아무 생각도 안 들어.

어떤 사건들을 볼 때마다 ‘죽을 바에 그냥 죽이지.’
이랬던 교만한 나를 반성하게 돼.

고통과 슬픔이 너무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와서
아플 너와 내가 한순간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비몽사몽 밖으로 나와 피 흘린 채 쓰러진 너를 안아 들던 그때부터,
차에 타 고통에 몸부림치는 네가 안정적인 자세를 잡고
내 굽힌 무릎에 얼굴을 가져다댔을 때, 미약한 숨을 내쉴 때,
덜컹거릴 때마다 아파 죽겠는지 소리 지르면서도
나를 안심시키려 애써 참았을 때,
그리고 그때의 피 냄새.

아직도 그 냄새가 코에 배어 있어.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도 지워지지 않아.


밖에서 개 소리만 들려도 이가 악물려지다가 눈물이 나고,
네가 낑낑거리는 것 같은 가전제품의 소음만 들려도
가슴을 쾅쾅 내리치게 돼.

다른 평행 우주에서 나를 닮은 아기 인간이 태어났다면
그 애가 아파도 이렇게 아팠을까?
걔는 말할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인간으로 자랄 텐데.
엄마는 나와 병원에 있을 때 꽤나 잘 웃었는데 말이야.


병원에 혼자 있을 너를 생각하면

도무지 한 순간도 행복할 수가 없어.

더는 어떤 관계도 들이고 싶지 않아져.

세상에 나를 바쳐 하는 사랑은 하나로 족해.


한달 전에 내가 했던 전신마취와 수술은
보잘것없이 하찮아졌고,
네가 찍게 될 CT와 병실 생활을 생각하면 손이 벌벌 떨려.

나는 수술하고 밥 다섯 끼씩 먹고 웃었는데
너는 아마 입맛도 없을 거야.
그냥 또아리 틀고 누워 있을 것 같고,

버려진 기분이 들 테고

아마 돌아와서 기적처럼 다시 걷게 된대도
산책 나가려면 꽤 긴 시간이 걸린대.


그때처럼 나를 향해 짖는 개들에게 맞서
발을 퍽퍽 구르며 으르렁거리지 못하겠지.

그냥 공기만 마셔도 체할 것 같고, 숨이 막혀.

침대에 누웠는데,
발을 뻗다 보면 허벅지 어느 부근에
유난히 따뜻했던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아.
등을 돌리면 네가 엉덩이를 더 가까이 붙일 것만 같고.
남들보다 유독 뜨끈했던 너의 온기와

방에 남은 잔향에 데일 것만 같아.

그것이 나를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나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너만큼 사랑한 적이 없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랑해 사랑해 미안해

이 말 밖에 못하고 와서 미안해.


네가 그렇게 울면 하나가 더 걱정한다고,

네가 무너지면 하나가 기댈 수 없다고,

모두가 다시 일어서라 말하지만,

내가 멀쩡해버리는 순간 네가 서운해하면 어쩌지?

괜찮아, 괜찮아, 말하면

진짜 괜찮아져버릴 것 같아서 무서워.

절대 괜찮아져서는 안될 어떤 것이잖아.

경찰서에 신고 했냐 무심하게 묻고,

티비를 똑바로 쳐다보는 아빠랑 할아버지가 증오스러워.


왜 그렇게 울어. 말하는 동생에게

기가 찬 웃음을 뱉었고, 동생 역시 엉엉 울었어.

간신히 참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같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나는 괴물이 되어가는 것 같아.


한번도 삶에 미련 가져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인생이 너무 쉬웠고, 사랑도, 인연도,

안달내지 않아도 손에 쥐어진 것들이라서

누군가는 내게 '결핍이 없는 게 결핍 같다.'고 말했어.


늘 외계인 같던 나에게
외계어로 사랑을 알려준 건 너잖아.
그러니까

차라리 같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


‘달려!’ 하면 미친 듯이 달리며 산책하는 걸
그렇게 좋아했던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잃어간다고 생각하니까,
완전히 한순간에 잃는 것도 아니고
서서히 무력해지는 방식으로
녹아드는 버터처럼 스러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알아간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런 걸 깨달아서 뭐해.
왜 굳이 아파야 해, 네가.


네게 괘씸함만 느끼고 싶어. 평생.

놀러온 친구 곁에서 자겠다고
방문을 열어달라고 할 때,
새벽 내내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며 잠 다 깨울 때,
난 아파 쓰러져 있는데 혼자 찹찹찹 사료 먹을 때,
비 오는데 산책 나가자고 졸랐다가
안아달라 했다가, 들어가자 했다가 이랬다저랬다 할 때.

할머니집 마당에서 가출했다가 금방 잡혀 돌아왔을 때

사고칠 깜냥도 안 되면서 잡기 놀이하는 줄 알고

꼬리를 활짝 들어올리고 발을 쿵쿵 구르던,

그런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다.


오늘의 절망은

앞으로 내가 지을 수 있는 웃음까지 전부 앗아간 듯해.

나는 이제 내 사랑이

얼마나 비열하고 좁은지 알아버렸다.


시간을 죽이는 것만큼 쉬운 게 없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안 가.
일주일이 서둘러 지나버려서
네 수술이 잘 됐는지만 듣고 싶어.

너를 위해서면 내 청춘, 20대, 30대, 한순간에 날려도 좋으니

다시 건강하기만 해달라고.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너는 영영 사라져버릴까.


아픈 너를 쓰다듬으려고
유리창에 헛손질하는 것,
나를 보겠다고, 나에게 오겠다고
애써 바로 서려는 너를 보며 생각했어.

‘내 사랑이 너를 망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뒤돌아 갔던 것,
너와 더 있어주지 못하고 집으로 온 것,

혼자 있을 병실의 차가움을 심상으로 느끼는 것,


사건을 되돌리고 되돌리면서
그때 내가 개입됐다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었을까
가늠해보는 것,
‘내가 더 현명했다면’이라는
쓸모없는 가정을 하는 것.


벌써 다 지겹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어. 눈을 감으면
너의 울음소리와 병원 냄새가 뒤섞여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채로 떠돌게 돼.


화장실 문을 열면 앞에서 네가 나를 또렷히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아.

식탁에 앉아 있으면 종아리쯤에 닿는 온기,

꿈에서 깨어나기 싫은데 다 꿈이었던 것 같고,

이제는 꿈도 안 꿔지고, 너도 안 보이고






사랑하는 존재여,
이 조그만 생명이 다시 숨을 고르게 해주세요.
부서진 뼈 조각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다시 살이 붙게 해주세요.

고통이 너무 크다면, 그 고통의 반이라도
내게로 옮겨주세요.
그 대신 이 아이에게는 단 한순간이라도
안온한 꿈을 허락해주세요.

하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나를 믿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제가 하나를 믿겠습니다.
몸은 작아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하늘보다 깊다는 걸 압니다.

피와 통증 사이에도 여전히 사랑이 흐른다는 걸,
당신은 알고 계시겠죠.
그 사랑이 이 아이의 세포마다 스며들어
다시 걸을 힘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무너질 때마다,

이 아이가 제게 웃어주던 눈빛을 떠올리게 해주세요.
그 눈빛으로 하루를 버티게 해주세요.

살아만 있다면,
우리 다시 함께 걸을 수 있을 거예요.
하나가 낯선 세상에서도
두려움 대신 따뜻함을 기억할 수 있도록,
오늘 밤, 제 숨으로 이 아이의 숨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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