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살아남기
예술에 대해 오래 생각해 왔다.
예술가랍시고 해가 뜰 때 출근 안 해, 변변찮은 직업 없이 팔짱 끼고 인생사를 내려다보는 스스로의 교만함에 대하여.
나는 과연 배제될 자격이 있는 걸까? 새벽 출근 길, 지옥철에서 엉덩이에 닿는 누군가의 신체 부위, 찌푸리는 미간과 삐- 소리 처리, 닳고 닳은 키보드의 F키와 상사의 메뉴를 대신 고르는 일. 날이 갈 수록 늘어나는 눈치와 공과금 영수증을 구겨 버리는 일. 사소하게 짜증나는 쳇바퀴 속에서 죽지 않은 시간을 죽었다고 칭하는 문장들로부터. 그런 고민들로 하루종일 시간낭비 하는 것, 자칭 예술가의 일상이다. 이런 시간낭비 역시 예술이야! 우기고 싶은 마음과 양심의 무차별한 싸움을 지켜보는 것, 이는 역시 백수의 특권이다. 나태지옥에서 갱년기 부모와 사춘기 동생들 모두가 거대한 태엽의 일원이 되어 잔뜩 힘 줄 때 어쩐지 열외된 나는 언덕 위에서 그 광경을 고상하게 스케치한다.
하루의 끝마다 나의 비겁함을 직면한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았는데 몸의 부위 하나가 찌릿하다. 남들이 나를 응원하는 말이 내 상처를 움푹 판다. 그러면 한의원에 간다. 아프다고 드러 누우면 팔꿈치를 그 부위에 꾸욱 누르거 더 아프게 만들어준다. 아픔이란 감정을 느낄 때마다 통쾌하기도 하다. 이때만 인간의 자격을 취득한 것 같기도 하다. 남의 노동을 빌어먹으며 내 몸 하나를 건사한다. 노동이 사라질 세상을 예측하며 더 큰 가치를 보자고 말하는 것이 노동을 하지 않고 싶은 나태함의 신세대 지식인식 사기 화법같이 느껴진다. 때때로 노동만이 인간이 본질같지. 노동은 숭고하다. 예술은 잘 모르겠고. 어딘가에 속해 있는, 매일 가야할 곳이 있는 이들의 눈동자에 비친 내가 반짝일 수록 사기꾼이 된 기분을 느낀다. 나는 쓰레기야, 자조하고 싶지만 더 큰 사기를 쳐서 보석반지로라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기도 하다. 이건 나의 양심값으로.
예술은 얼마큼의 가치가 있는가. 미술관에서 남의 인생이 사후 화려하게 꽃피는 사족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거룩해진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예술은 확실히 숭고하게 느껴진다. 그럼 나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예술가로 죽을 수 있을까. 나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가난과 고난을 납득시키는 것. 뜬금없이 찾아오는 불행을 팔아먹는 것. 뒤에 큐피드 화살을 메고 영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부동산의 중개인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신이 주는 모든 역경과 시련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않고 삐뚤어져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예술이다. 아아, 내가 번역한 게 맞나요? 그렇다면 아마도 신에게 반역하면서 신을 번역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인 것 같다. 신은 중력을 알려주기 위해 사과를 떨어뜨렸는데 어떤 사람은 빨간색이 진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둥근 것만이 신의 언어라고 우기는 것이지.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아껴 먹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둔 풍선껌이 시간이 지나 끈적하게 들러붙는 이런 불행을 이베이에 올려 일억 벌어주는 것은 예술의 영역이 된다. 어떤 스토리텔링은 기적을 만들고, 이런 기적을 사기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그런 식으로 나는 지난 이십육년동안 온갖 사기를 연마해왔다.
모두를 배부르게 하면 사업이고 누군가를 등쳐먹고 끝나면 사기 아닌가?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무언가 꿈틀거리게 하는 건 예술이고. 별과 달에 이름을 붙여 증명서를 사고파는 낭만은 (낭만이라 이름 붙인 자본주의의 사기적 행각은) 100년 뒤 테슬라가 화성에 다리를 놓을 시점쯤엔 페이퍼컴퍼니 세 개쯤 돌려놓은 완벽한 증명이 되어줄 것이다. 원시를 간신히 배반한 미국의 역사와 대한민국 땅부자들이 증명한다. 이 문장들은 결혼식의 주례적 허용. 그런 의미에서 난 가난 팔이의 대가들을 동경해 왔다. 그들에게서 불행을 행운으로 바꿔먹는 스킬을 배울 수만 있다면, 나는 누구보다 악착같이 껌의 잔해라도 핥아먹을 것이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 이 빌어먹을 성애적 세계관과 자본주의에게 엿먹이고 싶어. 하지만 욕을 하는 순간 천박해진다. 그럼 나는 교양 있게 천박한 말을 하고 싶어진다. 한편으로, 신 역시 탄생된 존재라는 것. 탄생이라는 슬픈 연대로 끝마치는 것은 나의 생의 마무리, 다큐적인 문법이 아닐까 하여, 몇 해 은하를 돌고 돌아 이것이 내 집인지 문 두드려본다.
하지만 이 역시 내 길은 아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