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평생의 숙제가 있다면, 그건 아마 유년의 억울함을 극복하는 일일 것이다.
이제는 괜찮다고, 다 지난 일이라고 애써 넘겼는데
아빠가 동생에게 뽑아준 차를 보는 순간,
욱.
어쩌면 그게 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나는 추한 어른으로 자라고 싶지 않았다.
돈, 돈, 돈.
숫자에 연연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하지만 사실, 내게 가장 억울했던 건 돈이 아니라 문화적 자본이었다.
어릴 땐 몰랐다.
누군가는 당연히 보고 배운 것들이,
누군가는 억지로 주입식으로 때려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게 시간이든, 돈이든, 결국 자원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서울의 끝자락,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나는
성적이 유일한 자산이었고,
학교에서 돌아와 싸이월드 배경음악을 고르는 일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4shared에서 ‘2ne1’과 ‘박정현’ 사이에
‘오아시스’나 ‘악틱 몽키즈’의 노래를 다운받고
(가끔은 외국인이 싸구려 이어폰으로 녹음한 커버곡이기도 했다)
나의 취향 스펙트럼에 내심 감탄하며
나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자부했다.
누군가 "좋아하는 노래가 뭐야?" 하고 질문 했을 때
나도 멋있게 팝송들을 언급하고 싶었는데
당시 노래 ‘Breathe Again’의 가수인
Sara 'Bareilles’ 발음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서
사라? 하고 얼머부리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뮤지컬이 뭐야. 클래식은 관심도 없었고
서점에서 사지도 않을 잡지를 후루룩 넘겨 읽으면서
사람들은 이 영화들을 다 봤단 말이야? 생각했다.
한달에 한번 영화관 가서 마블 영화 보기에도 바쁜데
내가 태어나기 몇십년 전의 영화들까지 다 어떻게 챙겨보나 벌써 현기증이 났다.
그러면서 아마도 미래의 내 취향은
‘미셸 공드리’의 영화, '누벨바그'나 '잭 케루악'
‘에릭 요한슨’의 초현실주의, ‘라이언맥긴리’의 청춘사진이 아닐지 감히 짐작만 했다.
내 학창시절은 내내 조급함과 불안함 뿐이었다.
입시 말고도 신경쓸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처음 알게 된 로스웰 음모론도 그렇고,
세상엔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자마자 쓰레기통에나 처박혀야 할
이따위 문제집에 내 청춘을, 영혼을 다 바쳐야 한다니.
지금 이 순간에도 바깥세상에선
신작 영화와 책이 수십 편씩 쏟아지고 있는데,
그 사실이 나와 세상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 놓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애달팠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고 싶던, 가진 것 없는 16살.
잘 타고 있던 기차에서 훅 뛰어내린 시기이기도 했다.
나의 이런 생각 위로 온갖 수학 공식이 뒤덮히면서
언젠가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버릴 까봐.
내 세계 밖에는 얼마나 어려운 이름들이 많던가.
혼자 방에서 성공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인터뷰 연습을 하면서도
자꾸 그 이름들을 까먹어 멈칫거렸던 건 비밀이다.
자퇴한 나는 학교 대신 도서관으로 등교했고,
제레미스캇과 콜라보한 한정판 아디다스 져지를 쇼핑하는 대신
도서관의 책장 책장을 쓸어 담았다.
그러면서 푸코나 라깡 같이 이름 짧은 철학자들이 이미 내 손아귀에 있는 양 굴었다.
여전히 딱 그들의 이름만 안다.
나는 모르는 게 넘쳤고,
아는 척하는 법만 빨리 배웠다.
그러니 나를 교양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려면,
맨땅부터 다져야 했다.
친절한 가이드북 따위는 없었다.
나는 나를 내 손으로 멋지게 키워내야만 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다.
한때 문화적 자본이라곤 노래방 금영책밖에 없던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를 길러냈는지에 대한 기록.
그리고 여전히 성장 중인 나의 이야기.
어디 한번, 멋진 어른이 되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