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 본다 - 필름 밖 은밀한 인생 관찰기
*책 『영화도둑일기』에서 제목을 차용함
이제는 영화를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은밀한 취미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그뭔씹 영화 보기'다. ‘곡성’이나 ‘7번방의 선물’처럼 전국민이 다 본 영화는 아직 안 봤으면서, ‘Blue’나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같은 영화는 영어 자막으로라도 찾아본다. 그렇다고 시네필이라 부르기엔 애매하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속 인물들처럼 어떤 영화를 플롯부터 미장센까지 뜯어보거나, 누군가와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는 일은 잘 없으니까. 나는 내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든 영화조차도 짱!이라는 한 단어로 그냥 정리해버리는 사람이다.
해 질 무렵 나는 자전거에 몸을 실어 훌렁 영화관으로 향한다. 바람은 머리칼을 뒤흔들고, 바퀴는 오후 햇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은 꼭 아무 버스나 타고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 같다. 상영관 안에선 머릿속에 온갖 생각과 의문들이 꿈틀거리지만 그때 뿐이다. 언젠가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미니 노트를 가지고 들어가 눈은 스크린에 고정하고, 손만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때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그냥 몸을 고정하고 얼굴 표정만 움찔거린다. 안에선 하고 싶은 말이 A4 용지 4장넘게 튀어나올 것만 같은데, 엔딩크래딧이 내려오고 좌석에서 일어나는 순간 죄다 흩어진다. 사람들 틈에 우르르 화장실로 파도 타기하면 "영화 어땠어?" 화장실에서 들리는 웅성웅성한 소리들. 그때마다 영화는 대부분 "그저 그럼." "재밌었어" 혹은 터져나오는 웃음들, 그 세가지 선에서 정리된다. 그럼 내 마음 역시도 꼬리를 물고 부피를 키워나갈 여유를 잃는다. 산란했던 생각들은 코끝을 스치는 밤공기와 함께 증발해버린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화가 끝나지 않은 기분을,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상이 잠시동안 영화가 된 듯한 여운을 더 길게 느끼고 싶은 나는 서둘러 영화의 트랙리스트를 재생한다. 헤드폰 속에 음악이 크게 울려퍼진다. 심장이 둥둥, 발끝까지 전율이 일면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이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는다. 바람을 전격으로 맞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쳐 들어올린다. 그럼 내 삶이 마치 영화의 쿠키 영상처럼 느껴진다. 느와르 영화를 보고 나오면, 눈 앞의 풍경도 그 서늘한 톤으로 덧칠된 것 같고 히어로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나는 주인공이 되었다가도 악역이 된다. 아무도 없는 도로 위를 영화 '비트'나 '월플라워' 속 주인공들처럼 달리며 괜히 소리를 내지르거나 기억에 남은 대사를 읊조리기도 한다. 누가 보면 참으로 부끄러울 일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영화를 떠올리면 그 영화의 줄거리보다도 영화가 지나가고 남은 발자국같은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스무살의 나는 잔뜩 허기가 져 어떤 영화든 입에 넣고 보았다. 생일 케이크에 한살 초를 꽂는 마음으로. 그 전까지의 내 삶은 예고편인 것같고 지금 막 시작된 것 같았다. 관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조급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나만의 관점, 그걸 만들어내려면 일단 멋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는 다 좋아해야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어떤 감독의 어떤 영화가 왜 좋고 왜 싫은지 아주 논리적으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쩌면 의무적으로 영화를 흡수해온 걸지도 모른다.
세상에 정말 망작이란 게 있을까? 망작도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나는 혹평받는 영화들에 오히려 끌린다. 반골 기질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망작’이라는 말에 담긴 모종의 낭만 때문이다. 나는 누가봐도 망작인 작품을 보면 그 영화 감독이 궁금해진다.
그 영화가 처음 태어날 때, 시나리오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와, 이거 엄청난 게 될 거야!”라고 믿었던 누군가가 있었다. 그건 어쩐지 청춘병을 앓게 만든다. 오타쿠는 이렇게 생성되는 걸까? 그는 왜 이 시나리오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을까. 귀신에 홀렸던 걸까. 처음으로 ‘아, 좆됐다...’는 생각이 든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마 그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영화가 감독 한 사람만의 착각으로 완성된다면 이토록 낭만적이진 못했을 것이다. 단지 한 인간의 치기나 객기쯤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근데 그 작품을 믿어준 투자자들, 밤을 새가며 그것을 현실로 구현시킨 스태프들, 그리고 적어도 한 번은 그걸 극장에서 끝까지 봐준 관객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망작엔 기묘한 힘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 사람들을 설득했을까? 그들만의 비즈니스 비법이 따로 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자기계발서나 전자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 나도 배우게. 영화가 어느정도의 뻔뻔함을 넘어서면 그건 예술이 된다. 솔직히 인터스텔라 제작기보다 망작 제작기가 더 궁금하지 않나? 망한 영화에서 배울 점을 찾아내는 건 나의 새로운 취미가 됐다. 망한 영화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건 엄청난 사치이다. 돈과 시간이 차고 넘치는 인간들만이 부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랄까.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그런 의미에서 엄청난 부자가 됐다.
그 영화는 딱히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뜻깊게 봤다. 그리고 내가 별로인 작품을 아주 열심히 착즙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영화가 재미없을수록 더 애정을 기울이고, 어떻게든 의미를 찾고, 오히려 더 즐기려 든다. 덕분에 블로그에 영화 해석 글을 올렸더니 하루 방문자 3천 명을 찍었다. 저품질이라고 생각했던 블로그가 서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 네이버 블로그는 열심히 키웠는데 어느 날 해킹을 당했는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또 하나는, 영화의 OST가 한국어로 들리는 환청 덕에 음차 개사를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그건 다음 작사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낼 과제가 되었다.
나이 듦에 대하여
고등학생이 된 나는 한 인터뷰 기사를 봤다. 거기서 민희진은 블레이드 러너와 펀치드렁크 러브를 자신의 인생 영화로 꼽았다. 나는 그 영화들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내 인생 영화가 될 것이라 단언했다. 그 당시 나는 그의 모든 것을 훔치고 싶었으니까. 그가 살아오면서 보았던 수많은 영화나 공간들과 영감 덩어리들을 모조리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으니까. 나는 그 영화들을 하루빨리 보고 싶어 발을 동동거렸으나, 한편으로는 환상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오즈의 마법사 속 에메랄드시티처럼 한 번 그곳에 발을 들이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고,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왜인지 선뜻 발들일 수 없었다. 토렌토나 불법 다운로드의 세상을 미처 몰랐던 탓이기도 했다. OTT가 생기기 전까지 나는 타의적으로 윤리적 올바름을 감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영화는 가끔 보는 것이었고, 고전이나 독립영화는 사치에 가까웠다.
나는 한때 “어린 게 부럽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른이 두렵다”는 말도, 나이 든 사람들을 향한 비하도, 모두 내겐 딴 세상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스무 살 무렵, 일찍 업계에 들어왔고, 나보다 한참 많은 언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나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어른인 척을 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내게 멋있어 보였던 건 과시하지 않아도 대화 속에서 저절로 묻어나오던 언니들의 취향들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한 겹 한 겹 쌓아올린 세계를, 단번에 껴입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 어딘가에 지름길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그것이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영화를 통해 인생을 남들의 몇 배 속도로 빨리 감기 하고 싶었다. 상상 속 미래의 나에게 도착하고 싶었다. 그는 무수한 생각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화된, 완전체 디지몬같이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 곧바로 빔프로젝트를 켰다. 과거 평론 수업 시간에 누군가는 나를 이렇게 평했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얻게 될 것들을 부러워하는 사람' 나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질투했고, 그가 재미로 본 대중 영화가 나에겐 억지로 봐야하는 교양이 된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분했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보다 본 것들로 쌓아나가는 것, 취향을 알아가는 것, 아카아빙하는 것이 중요했다.
몇 해 전 합평 시간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이런 이야기를 던졌다. “원래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본 것들이 쌓이잖아요. 그런 시간을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어린 게 제일 부러운 거라는 걸 왜 모를까요?” 순간, 교실 안이 웃음과 탄식, 짧은 야유로 술렁였다. 마음은 요령처럼 되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억지로 보는 ‘고전’이, 누군가에겐 학창 시절 친구 따라 우연히 본 영화였다는 사실. 그들은 기억 속 작은 조각으로 그 영화를 갖고 있는데, 나는 굳이 마음을 먹고, 재밌지도 않은 영화를 두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서러움. 누가 억지로 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서러웠을까?
기차가 화면 속을 달리는 영상, 그 최초의 영화를 나는 몇십 년 지나 책에서 접했다. (실제로는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 최초의 영화라고 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거나 환호했다고 한다. “이게 뭐가 재밌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에겐 명작이란 억지로 봐야하는 것인데 누군가에겐 대중문화였다는 것. 그 영화를 온전히 짜릿하게 즐기기만 할 수 있었다는 것. 나는 그런 감정조차도, 따라잡아야 하는 무언가처럼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이든 사람들은 어떤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미래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늘 뒷북을 쳤고, 좋은 것에 대해 왜 좋은지 함께 이야기해줄 사람도 없었다
한동안은, 그것이 계급 같았다. 쏟아지는 신작들, 명작 영화, 누군가의 인생 영화 리스트, 그리고 나보다 몇 배는 더 오래 살아온, 묵직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해외 감독의 영화들까지. ‘아녜스 바르다’는 왜이렇게 열심히 살아오신 건지. 영화 속 언급되는 ‘장 뤽 고다르’나 ‘누벨바그’ 동료들의 필모그래피를 도장 깨기 목록에 넣으면서 현기증이 났다. 봐야 할 것들이 앞에 벽처럼 산처럼 끝없이 쌓여 있었다. 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엄마조차, 시월애, 연애소설, 박쥐,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영화들에 대해 “당연히 봤지, 누구 누구 나오는 거잖아.” 하고 말하는 게 왠지 분했다. 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나는 앞으로 몇 번은 더 태어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영화를 통해 쌓아온 모든 경험은 탑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과 닮았다. 차곡차곡, 내 의지대로. 그래서 나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늙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 든 이들이 부럽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 계절을 지나왔고, 더 많은 레이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나답게 나이 드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몰입의 시간들, 스크린 속 인물들과 함께 숨을 쉬었던 순간들, 안의 충동이 세계와 정면으로 충돌했던 장면들, 그 모든 체험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그걸 기쁘게 여긴다. 내가 내 인생을 영화처럼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거기에 있다. 인생이라는 장대한 시나리오 속에서 나는 관객이자 배우이며, 감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