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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착즙일기

4. 필름 밖 은밀한 인생 관찰기

by 구미래

(*책 『영화도둑일기』에서 제목을 차용함)


나에게는 은밀한 취미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그뭔씹’ 영화 보기다. ‘곡성’이나 ‘7번방의 선물’처럼 전국민이 다 본 영화는 정작 안 봤으면서, ‘Blue’나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같은 영화는 OTT에 없어도, 영자막으로라도 끝내 찾아본다. 그렇다고 시네필이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속 사람들처럼 한 영화를 플롯부터 미장센까지 뜯어보거나, 누군가와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는 일은 잘 없다. 나는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든 영화조차 결국 ‘좋다’는 한 마디로 정리해버리는 사람이니까.


해 질 무렵 나는 자전거에 몸을 실어 훌렁 영화관으로 향한다. 바람은 머리칼을 뒤흔들고, 바퀴는 오후 햇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은 꼭 아무 버스나 타고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 같다. 상영관 안에선 머릿속에 온갖 생각과 의문들이 꿈틀거린다. 하고 싶은 말이 A4 용지 4장넘게 튀어나올 것만 같은데, 막이 내리고 좌석에서 일어나는 순간, 흩어진다. 복도를 따라 우르르 파도타기하듯 빠져나가면 화장실에서 들리는 웅성웅성한 소리들. 산란했던 생각들은 코끝을 스치는 밤공기와 함께 스르르 증발해버린다. 대신 그 사이로 여운이 짙게 묻어난다.


밖으로 나온 나는 영화 OST 앨범 전곡을 재생한다. 헤드폰 속에 음악이 크게 울려퍼진다. 나는 그 순간, 페달을 힘껏 밟는다. 그럼 내 삶이 마치 영화의 쿠키 영상처럼 느껴진다. 느와르 영화를 보고 나오면, 눈 앞의 풍경도 그 서늘한 톤으로 덧칠된 것 같고 히어로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나는 주인공이 되었다가도 악역이 된다. 아무도 없는 도로 위를 무법자처럼 달리며 괜히 소리를 내지르거나 기억에 남은 대사를 읊조리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떠올리면 그 영화 자체보다도 영화가 끝나고 흘러간 시간들이 떠오른다. 솔직히 내게 영화란, 멀끔한 감상문보다 비닐봉지 속 캔들이 부딪히며 내는 청량한 소리에 더 가까운 것이다.


친구 중 한 명은 에프터썬을 거의 스무 번이나 봤다. 신기했다.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나? 나는 어떤 영화를 봐도 두 번째부터 감흥이 바스러졌다. 화면 속 인물들이 전처럼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뒤의 카메라맨과 스텝들, 대사를 암기하는 장면들이 겹쳐보였다. 그래서 이상하게 어떤 영화를 깊이 좋아할수록, 다시 보는 일이 겁이 났다. 그건 내가 에에올을 재탕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 친구와 나는 라이카시네마에서 에프터썬을 함께 봤다. 그건 친구의 여덟 번째 에프터썬이었다. 나는 그 옆자리에서 그 아이의 손이 수첩 위를 휙휙 날아다니는 걸 지켜봤다. 뭔가를 미친 듯이 적어내려가는 모습에, 순간 나는 스크린이 아니라 그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저기에 뭐가 있다는 거지?”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나에겐 영화 속 어떤 장면보다도 더 선명하게 남아버렸다.


내가 에프터썬을 떠올린다면 너, 그리고 캠코더. 그 친구가 떠들던 99개의 장면들이 잘 기억 나진 않았다. 대신 나는 종종 친구들과 헤어질 때 공항에서의 소피를 흉내 냈다. 안녕, 인사하고 등을 돌렸다가 고개를 휙 돌려 상대를 쳐다보고, 해맑게 웃다가 다시 휙, 휙. 그 장면을 아는 친구들은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그건 우리만의 비밀 신호가 됐다. 분명 에프터썬은 ‘시네마’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와는 어딘가 한 호흡 어긋난 악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왠지 언젠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날이 올 것만 같았다. 그때는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아파봤거나, 조금 더 사랑해봤거나, 조금 더, 이별을 해봤을 때일까. 어쩌면 나도 그 영화를 유리처럼 입 안에 피를 잔뜩 흘리면서도 콰득콰득 씹어먹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스무살의 나는 잔뜩 허기가 져 어떤 영화든 입에 넣고 보았다. 생일 케이크에 한살 초를 꽂는 마음으로. 그 전까지의 내 삶은 예고편인 것같고 지금 막 시작된 것 같았다. 관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조급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나만의 관점, 그걸 만들어내려면 일단 멋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는 다 좋아해야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어떤 감독의 어떤 영화가 왜 좋고 왜 싫은지 아주 논리적으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쩌면 의무적으로 영화를 흡수해온 걸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어린 게 부럽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른이 두렵다”는 말도, “틀딱” 같은 나이 든 사람들을 향한 비하도, 모두 내겐 딴 세상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스무 살 무렵, 일찍 업계에 들어왔고, 나보다 한참 많은 언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나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어른인 척을 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내게 멋있어 보였던 건 과시하지 않아도 대화 속에서 저절로 묻어나오던 언니들의 취향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이 한 겹 한 겹 쌓아올린 세계를, 단번에 껴입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 어딘가에 지름길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그것이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영화를 통해 인생을 남들의 몇 배 속도로 빨리 감기 하고 싶었다. 상상 속 미래의 나에게 도착하고 싶었다. 그는 무수한 생각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화된, 완전체 디지몬같이 느껴졌다.


몇 해 전, 김요섭 평론가의 합평 시간에서 누군가 나에게 툭 이야기를 던졌다. “원래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본 것들이 쌓이잖아요. 그런 시간을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어린 게 제일 부러운 거라는 걸 왜 모를까요?” 순간, 교실 안이 웃음과 탄식, 짧은 야유로 술렁였다. 나의 마음은 요령처럼 되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억지로 보는 ‘고전’이, 누군가에겐 학창 시절 친구 따라 우연히 본 영화였다는 사실. 그들은 기억 속 작은 조각으로 그 영화를 갖고 있는데, 나는 굳이 마음을 먹고, 재밌지도 않은 영화를 두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서러움. 누가 억지로 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서러웠을까?


기차가 화면 속을 달리는 영상, 그 최초의 영화를 나는 몇십 년 지나 책에서 접했다. (실제로는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 최초의 영화라고 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거나 환호했다고 한다. “이게 뭐가 재밌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에겐 명작이란 억지로 봐야하는 것인데 누군가에겐 대중문화였다는 것. 그 영화를 온전히 짜릿하게 즐기기만 할 수 있었다는 것. 나는 그런 감정조차도, 따라잡아야 하는 무언가처럼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이든 사람들은 어떤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미래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늘 뒷북을 쳤고, 좋은 것에 대해 왜 좋은지 함께 이야기해줄 사람도 없었다.


한동안은, 그것이 계급 같았다. 쏟아지는 신작들, 명작 영화, 누군가의 인생 영화 리스트,
그리고 나보다 몇 배는 더 오래 살아온, 묵직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해외 감독의 영화들까지. ‘아녜스 바르다’는 왜이렇게 열심히 살아오신 건지. 영화 속 언급되는 ‘장 뤽 고다르’나 ‘누벨바그’ 동료들의 필모그래피를 도장 깨기 목록에 넣으면서 현기증이 났다. 봐야 할 것들이 앞에 벽처럼 산처럼 끝없이 쌓여 있었다. 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엄마조차, 시월애, 연애소설, 박쥐,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영화들에 대해 “당연히 봤지~ 누구 누구 나오는 거잖아.” 하고 말하는 게 왠지 분했다. 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나는 앞으로 몇 번은 더 태어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스무 살 전까진 수능 공부 말고는 다 무의미하다고 배운다. 그런데 입시가 끝나는 순간, 수능 공부만이 무의미해진다. 스물한 살부터는 말 그대로 백지에서 시작하는 게임이었다. 나는 왓챠피디아 속 이동진 평론가의 평가 개수를 보고 울컥한 적이 있다. “아, 열받아.” 내 삶은 영화가 전부가 아닌데. 나는 대학도 다녀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음악도 만들어야 하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야하는데. (술도… 유흥도…) 내게 주어진 하루는 여전히 스물네 시간이지만, 이동진과 나 사이의 거리는 자꾸만 멀어지는 듯했다. 왜 하필 나의 라이벌을 이동진으로 정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다. 어쨌든 나는 그를 따라잡겠다는 일념으로 고요하지만 치열한 레이스 속에 있었다. 최소한 왓챠피디아 평가 수 천 개라도 채우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었다.


매일 밤, 영화를 보러 뛰쳐나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너 평론가 될 거야?” 할머니는 “영화를 참 광적으로 본다”며 혀를 찼다. 나 자신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을 모으기 위해, 그 다음엔 CGV VVIP 등급을 달성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목표들이 하나둘 무의미해졌을 무렵에도, 나는 여전히 영화관에 있었다.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습관처럼 극장으로 향했다.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보며 내 삶을 이해받는 기분을 느꼈다. 혹은, 이해하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종종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갈등과 고통을 겪는다. 내면의 충돌, 타인과의 부딪힘,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사건들. 마치 신이 그들을 괴롭히는 듯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주인공은 끝내 자신의 삶을 돌파해 나간다.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겪는 혼란과 고통 또한, 언젠가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어쩌면 이 혼란조차도 나만의 서사를 형성해주는 한 조각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삶의 어떤 국면조차 조금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는 결국 누군가의 인생을 짧고 강렬하게 체험하게 해주는 형식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온전히 응시하고, 감정을 밀도 있게 추적하며, 사건이 만들어내는 파장을 따라가는 일. 그것이 단지 스크린 앞에서 ‘보는 것’을 넘어서, 내 삶을 더 깊이 체험하도록 만드는 일로 연결됐다. 그러니까, 내가 영화를 계속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견디기 위해, 남의 이야기를 들여다봐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상상해본다. 만약 내가 신이라면, 육체도 혼란도 없이 완전한 ‘공(空)’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겠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고, 모든 일이 나의 의지대로 흘러간다면, 그건 너무나도 평면적인 삶일 것이다. 완벽함, 완전함. 우리가 꿈꾸는 그런 삶이 펼쳐진다면 인간은 결국 심심해서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그럼 가끔 신도 인간이 되고 싶을까. 그런 상상 끝에서 문득 깨닫는다. 인간의 삶은 예측 불가능하고, 종종 납득할 수 없으며, 때론 감정에 휩쓸려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휘청이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점에서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는 그런 복잡한 삶의 단면을 더욱 압축적이고 치밀하게 재현한다. 이분법적으로 좋음과 나쁨을 구분하려 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감정의 기복 속에서 성장하고, 어떤 우연이 필연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삶의 아이러니를 언어와 이미지로 빚어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스크린 바깥에 펼쳐지고 있는 우리의 세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는 단지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감각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친구가 내 얘기를 듣고선 일론 머스크가 말한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비슷하다고 했다. “죽을래?” 답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도 틀린 건 아니다. 우리 모두 어쩌면 누군가가 설계한 세계를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서사 속에서 얼마나 밀도 높게 살아가느냐는 것. 피할 수 없는 이야기 속이라면, 기왕이면 그 이야기의 진폭을 끝까지 살아내고 싶다. 삶의 의미란, 결국 그 '몰입'의 농도에서 결정되는 게 아닐까. 세계가 무엇을 위해 설계되었든 나는 그저 즐기면 그만. 신이 아무리 내게 시련을 줘도 나만 행복하면 장땡이다. 행복한 게 이기는 거다. 신이 나를 아주 얄미워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영화에 별점도, 스토리의 완성도도, 연출의 세련됨도 중요하지 않아졌다. 그저 한 편의 영화에서 단 하나의 문장, 하나의 표정, 하나의 기류만 건져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엔 매 작품마다 연출이나 편집을 꼼꼼히 따지며 나름의 날카로운 평가를 했던 내가, 어떤 영화를 봐도 너그러워졌다. 지금은 그저 내 안에 어떤 ‘느낌’이 남는지가 중요하다. 인생에 적용시킬 하나의 메세지를 건져올리거나.


나는 가끔 스스로 만든 이론을 꺼내 들곤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인생은 콘텐츠다. 신은 너무 심심해서 인간을 만들었고,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위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각자의 삶이라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살아낸다. 인간이 만든 콘텐츠가 인생의 근원이다.' 어딘지 허술하고 우스워 보일 수도 있는 이 가설 속엔,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버겁기까지 한 이 삶을 나는 여전히 하나의 레이어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영화를 통해 쌓아온 모든 경험은 탑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과 닮았다. 차곡차곡, 내 의지대로. 그래서 나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늙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 든 이들이 부럽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 계절을 지나왔고, 더 많은 레이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나답게 나이 드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몰입의 시간들, 스크린 속 인물들과 함께 숨을 쉬었던 순간들, 안의 충동이 세계와 정면으로 충돌했던 장면들, 그 모든 체험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그걸 기쁘게 여긴다. 내가 내 인생을 영화처럼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거기에 있다. 인생이라는 장대한 시나리오 속에서 나는 관객이자 배우이며, 감독이 될 것이다.


p.s. 지난번 에세이를 읽은 한 친구가 물었다. “엥? 갑자기 왜 여기서 끝남?” 나름 영화에 관한 에세이는 삼부작으로 구성해두었다고 말했더니, “그럼 빨리 올려. 다음은 언제 올라오는데?”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요일마다 한 편씩 올려보려 한다. 물론 영화는 내 삶의 한 귀퉁이가 아니라, 거의 중심에 가까우니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다음 이야기는 다음 일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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