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세계를 향해 기꺼이 팔 벌리기
나는 영화에 대한 결핍이 있다.
방탄소년단 RM이 쓴 글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해외 영화들 다들 혹성탈출이니 쇼생크니 대부니 고전부터 줄줄 읊고, 어느 영화의 그 장면이 어쩌구 하면 나만 안 본 것 같아서 영화력 딸리는 것 같아서 열심히 짬 날 때 한두 편 봐보려고 하는데 한두 편 보면 나는 너무 힘들고.. 다들 언제 그렇게들 스콜세지, 고레에다, 히치콕 그리고 독립영화들까지 줄줄 꿰시는지... 세상에 나만큼 영화 안 본 사람이 없는 것 같을 때... 외딴 섬 바보 된 것 같은 기분 아시는 분..."
누군가의 솔직한 고백은 묘한 용기를 준다. 소위 ‘있어 보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 끝내 따라잡지 못할 것들에 대한 담담한 인정이 오히려 멋있게 느껴졌다. 대체 영화가 뭐라고 우리는 왜 호수 위 백조처럼 발버둥치는 걸까. 왓챠피디아 평가 갯수가 천개를 넘어가는 와중에도 신작은 계속해 나왔고, 무주와 부산과 전주와 부천의 영화제들, 재개봉하는 명작들과 에무, 라이카, 씨네큐브 등의 독립영화 감독 특별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그 영화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내내 영화만 본 해도 있었다. 온 생을 영화에만 바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생 따윈 집어 치우고 GV 빌런이 되는 거야."
눈이 돌았다.
이런 정체 모를 집착과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 답을 알지 못한 채로 내 발걸음은 어김없이 영화관을 향했다.
우리는 스무 살 전까진 수능 공부 말고는 다 무의미하다고 배운다. 그런데 입시가 끝나는 순간 수능 공부만이 무의미해진다. 스물한 살부터는 말 그대로 백지에서 시작하는 게임이었다. 나는 왓챠피디아 속 이동진 평론가의 평가 개수를 보고 울컥한 적이 있다. 내 삶은 영화가 전부가 아닌데. 나는 대학도 다녀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음악도 만들어야 하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야하는데. 내게 주어진 하루는 여전히 스물네 시간이지만, 이동진과 나 사이의 거리는 자꾸만 멀어지는 듯했다. 왜 하필 나의 라이벌을 이동진으로 정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다. 어쨌든 나는 그를 따라잡겠다는 일념으로 고요하지만 치열한 레이스 속에 있었다. 최소한 왓챠피디아 평가 수 천 개라도 채우겠다는, 일종의 다짐. 굳이 실패를 감수하는 것,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 역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늘 누군가의 추천을 받거나, 미리 로튼토마토 지수로 확인된 작품만 봤다. 무엇보다 ‘먹는 게 다다’라는 가치관이 깊게 새겨진 집안에서 자란 나는 영화 한 편에 쥐꼬리만 한 알바비를 쓰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나는 오히려 내 안에 자리 잡은 ‘문화적 가난’을 박박 씻어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히려 객기를 부렸다. 밥값을 아껴 영화를 봤고, 하루에 다섯 편, 여섯 편씩 몰아보며 극장 안에서만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용산아이파크몰 혹은 귀신이 나온다는 신촌역 메가박스 로비에서 홀로 밤을 새운 날도 많다. 매년 영화관에서 VVIP들에게 원데이패스라는 쿠폰을 주는 탓이다. 어쩌다보니 나는 모든 영화관의 VVIP가 되었다. 일년에 한번 하루에 10편까지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첫차를 타고 영화관에 가서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순간부터 인디 영화는 해당이 되지 않았지만, 가장 영화를 많이 상영하는 곳은 용산아이파크몰의 CGV였다. 그럼 나는 마지막 영화의 엔딩크래딧이 끝까지 내려가고도 엉덩이를 쉽게 뗄 수 없었다. 직원들이 왔다갔다 하는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있다가 복도로 떠밀려 "여기 계시면 안돼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직원들의 눈초리를 견디며 왔다갔다 하염없이 방황 했다. 노숙이란 굉장한 배짱이 필요한 일이구나. 나는 지금 '멘탈 훈련중'이다는 세뇌도 더는 먹히지 않았다. 왜 멀쩡한 집 놔두고 여기서 이렇게 생고생 중일까. 그러다 깜빡 잠이라도 들고 싶었다. 참다 참다 시계를 보면 5분정도만 지나있었다. 다행히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렀다. 시간이 흐른다는 과학적 사실이 그보다 반가울 때가 없었다. 불 꺼진 쇼핑몰, 나홀로 긴 미로를 빠져나가는 일, 빛나는 마네킹들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일, 문득 엘레베이터가 아무도 없는 층에서 멈춰 서기도 했고, 그런 에피소드가 하나 둘 쌓여갔다.
매일 밤, 영화를 보러 뛰쳐나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너 평론가 될 거야?” 할머니는 “영화를 참 광적으로 본다”며 혀를 찼다. 나 자신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을 모으기 위해, 그 다음엔 CGV VVIP 등급을 달성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것 같다. 그것만이 내 생의 유일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어쩌다가 나는 영화를 사랑하게 된 거지? 어쩌다 이런 집착 광공이 된 거지?
취향이라는 것은 유전처럼 전해지는 걸까. 학창 시절의 관심사는 대부분 부모의 취향에서 비롯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은 영화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마블 영화가 개봉할 때나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가 TV에서 광고될 때, 그럴 때만 간혹 영화관에 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마블 영화를 보면 “이거 순 만화잖아, 만화.”라며 질색했다.
할아버지에게 ‘좋은 영화’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를테면 ‘납치된 딸을 아버지가 구하는 이야기’의 2930번째 변주 같은 작품이었다. 그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자막을 볼 수 있는 외국 영화를 주로 봤다. 반면 할머니는 경찰이나 법 쪽의 드라마를 좋아하면서 극한직업같이 관객들을 빵 터트리는 대중적인 영화를 좋아했다. 그는 반대로 자막을 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한국 영화를 선호했다. 또한 부모님은 "돈값 하는 영화를 봐야지."가 철칙이었다. 3초에 한 번씩 CG가 번쩍거리고, 음향이 몸을 울릴 정도로 빵빵해야 비로소 영화라고 여겼다. 나는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들이 다 재미있었지만,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 뿐은 아닌 것 같았다. 지독한 의미충. 의미가 없는 것도 어떻게든 의미를 붙여야지 직성이 풀리는 정신승리충. 그렇게 집안의 돌연변이가 나왔다.
엄마의 허리정도 되는 키를 가졌을 시절, 어쩌다 영화관에 가는 날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신촌의 대한 극장인지 CGV로 향하던 길, 그 시절 대학가는 어딘가 신비로웠다. 한국이 아니라 외국의 길거리 같았다. 처음 보는 프렌차이즈 가게들이 익숙한 풍경 속에 섞여 있었다. "엄마 아빠는 이런 곳 많이 와봤겠지?" 하는 마음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영화관 대기실 벽에는 누군가가 스프레이로 잔뜩 흩뿌린 그래피티들이 그려져있었다.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이 붕 뜬 기분. 어딘가 몽롱한 꿈결같았다. 정말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역시 내가 골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의 공간감은 희미했고 어떤 영화를 봤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는 영화를 사랑하게 될 거야." 라는 예언만 어디선가 메아리로 울려퍼졌다. 그땐 영화보다는 영화관이 주는 묘한 긴장감에 매료된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사랑은 학습되는 걸까. 계속 사랑하고자 하면 사랑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다음 장면을 이어 보자.
중학생 시절, 할아버지의 친구는 정동극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 덕에 티켓을 몇 장 얻어, 반 친구들과 함께 청계천을 지나 종로로 향했다. 푹푹 찌는 한여름,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이는 분수대 안에서 친구들과 물장구치던 장면들, 반팔티를 탈탈 흔들어 말리면서 서로의 눈을 보고 웃음이 터지던 순간들, 어떤 고민도 없이 마냥 행복만 부유하던 시간 속 세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그날의 반짝이는 장면들이 불쑥 떠오르곤 했다. 우리가 무슨 영화를 봤더라?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제목은 얼핏 떠오르지만 내용은 깊게 생각나지 않는다. 그당시까지만 해도 영화엔 그다지 관심이 없던 것 같다. 목적지는 극장이었지만, 영화란 그냥 중학생들의 일탈 여행을 위한 핑계나 다름 없었지. 10여년전 나는 매번 하드커버의 앨리스 일기장을 사면서도 정작 일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그 두툼한 페이지에는 온갖 소재들 위로 덧붙인 노랫말이나 나름 시라고 휘갈긴 흔적만이 가득했다.
단 네 장, 유일하게 산문의 형식으로 남겨진 기록이 있었다. 거기에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대한 감상이 적혀 있었다. “유치한 액션씬과 뻔한 결말의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들이 ‘민폐’ 혹은 ‘악세사리’ 취급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강인한 존재로 등장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연기뿐 아니라 연출, 전개, 인물 구성까지 오래도록 준비해 온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몇 곡의 노래를 만들었다.” 사춘기 시절, 아는 것도 없으면서 평론가 코스프레하는 감상평을 길게 남겼다, 애써 덤덤한 척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내 인생의 분기점이었다. 처음으로 ‘세계를 바꾸는 영화’의 존재를 감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를 통해 영화에겐 한 사람의 세상 정도는 뒤흔드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