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타고 있는 재규어 차량은 1995년식이다.
연식이 오래된 만큼 주의할 점이 많다.
그중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브레이크 반응이다.
브레이크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부드럽게 작동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차량보다 한 박자 먼저 반응해야 한다.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켜지면,
나 역시 미리 반응해 브레이크를 밟는다.
앞차의 제동 신호에 먼저 반응하는 습관은
자연스럽게 방어운전으로 이어진다.
운전에서 중요한 것은 달리는 것보다 멈추는 법이라는 말처럼,
이건 모든 운전자에게 꼭 필요한 기본적인 감각이다.
짧다면 짧았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내 인생에도 수없이 많은 브레이크등이 있었다.
바닷가 바위 틈에 빠졌던 어린 날.
수영도 못하는 엄마는, 그 차가운 바다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엄마 지갑에서 몰래 꺼낸 돈이 들켰던 날.
손을 붙잡혀 파출소까지 끌려갔고,
예고 없는 훈계가 경찰서 한복판에서 펼쳐졌다.
혈육도 아니었던,
단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엄마가 올 때까지 나를 봐주고, 밥을 해주던 윗세대 아주머니.
손발이 다 닳도록 오남매를 다 키운 뒤,
다시 한 번, 엄마를 여윈 사춘기 손자인 나를 기르셨던 할머니.
내가 가장 힘들던 시기.
내가 이상한 선택을 할까 걱정돼서
“영화 보면서 맥주나 한잔 하자”는 핑계로
말없이 우리 집에 찾아오던 정환이 형.
이처럼 작은 골목길에서부터,
국도를 지나 고속도로까지.
내 인생이라는 도로 위에도,
나를 살리고 사고를 막아준 브레이크등들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나’라는 고속도로 위에 선 초보 운전자다.
필요한 제동보다 잦은 브레이크로
내 인생은 자주 멈췄고, 늦어졌고,
함께 달리던 사람들에게도
불필요한 걱정을 안겨 주곤 했다.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내 삶의 내비게이션은 지금도 ‘행복’을 목적지로 가리키고 있다는 것.
속도가 줄고, 길이 지루해지고,
때때로 우울함과 확신 없는 안개의 구간을 지나더라도,
나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1988년식, 홍석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