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오지 않을 봄에 대하여〉

by 열시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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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바에 들른 손님이 말했다.

자기 집에 친구가 놀러 오면

잠 못 드는 밤엔 신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불 꺼진 방, 낮은 목소리, 오래된 이야기.

그 조합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이야기란, 어쩌면 그런 밤을 위해 남겨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뒤로 생각이 자꾸 길어졌다.

조용히 들려오는 신화 하나,

수천 년 전 이야기가 이상하게 지금 마음과 겹쳐졌다.


하데스는 저승의 신이고,

페르세포네는 봄과 생명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신화에 따르면,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저승으로 데려간다.

그녀가 사라진 지상에는 모든 생명이 멈추었고,

결국 신들의 타협 끝에

페르세포네는 해마다 일정 기간만 지상에 머물게 된다.

그녀가 돌아오면 봄이 시작되고,

떠나면 겨울이 찾아온다.


계절은 되돌아오지만,

그 안의 풍경은 결코 같지 않다.

봄이라는 이름 아래 피는 꽃은 매해 다르고,

그해의 공기와 냄새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 신화를 떠올린 건

제주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한라산 중턱, 푸른 숲 사이로 난 길.

걷는 동안,

나는 지나온 계절들을 문득 되짚었다.

그 시절엔 모든 게 반복될 줄 알았다.

시간도, 감정도, 사람도.

무한처럼 보였던 하루하루.

그런데, 어느 날 조용히 끝나 있었다.

특별한 사건 없이.


청춘은 그런 식으로 사라진다.

아무런 전조 없이,

다만 지나간 뒤에야

그게 청춘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날,

일본 위스키에 대해 손님에게 설명하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름이 있다.

타케츠루 마사타카.

일본 위스키의 시작은 그의 이름에서 비롯되지만,

내가 오래 붙드는 건

그가 만든 위스키보다

그가 통과한 시간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를 배우고

북쪽의 외진 땅, 요이치에 증류소를 세웠던 그.

사람은 적었고, 겨울은 길었다.

그는 묵묵히 그곳에 있었고,

특별한 장면 없이 한 계절을 견뎠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청춘의 구조를 떠올렸다.

반짝이지 않아도,

확신이 없어도,

다만 버텨내는 시간.

묵묵히 하루를 지나는 일의 반복 속에서

서서히 발효되는 감정과 의지.


청춘은,

빛이 아니라

그 빛을 기다리는 과정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청춘을 결과로 기억한다.

이뤄낸 것,

이루지 못한 것,

혹은 놓친 것.

하지만 청춘의 본질은 어쩌면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날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 계절을 지나고 있다.

혹은 이미 지나왔다고 믿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란 걸 알기에,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조금 더 오래 머무르고 싶어진다.


그 손님이 말했던 신화 이야기처럼,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오지 않을 봄이 있어.

그러니 너는 지금,

그 계절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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