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넓군요!
"엄마, 그럼 내일 아무도 나 안 깨워주는 거야?"
"어.. 엄마는 5분 만에 밥 차릴 수 있어~ 씻고 일어나 준비하는 건 너 몫이야~"
"와.. 어떡하지? 내일 늦으면 공자님 말씀 3번 쓸 텐데..(둘째 담임선생님께서 벌주시는 방법이래요^^)"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둘째는, 자려고 누웠다가 황급히 일어나 알람을 맞췄습니다. 7시부터 1분 간격으로 20번 울리게 해 놨다길래, '그렇게 불안하면 20분 일찍 자는 게 낫지 않니~?'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녀석은 빠른 수긍 후에 빛의 속도로 잠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건 언제나 첫째였거든요. 최근 들어 좀 힘겨워 보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기상 담당은 첫째였어요. 여섯 시 즈음에는 일어나 책상에 앉아있다가 일곱 시가 좀 넘었을 때, '너 일어나야 돼~'하며 동생 기상을 챙기던 첫째.. 늘 '어 일어났어~'말은 그렇게 하고 눈감고 늘어지던 둘째.. 언니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려던 찰나 둘째가 신난 목소리로 말했어요. "와~~ 자리 되게 넓다!! 언니 없으니까 이렇게 넓게 잘 수 있는 거였어!!'
'웃프다'는 말이 이럴 때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밤이 되면 3단으로 접어두었던 매트리스 2개를 펼쳐 저랑 딸 둘이 누워 잔 지가 몇 해째인지 모르겠네요. 아이들이 조그마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성장기에 접어들며 저만큼 큰 아이들과 함께 자려니 늘 잠자리는 비좁았습니다. 잠자리 분리는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저희 집은 방이, 없거든요. 방만 없는 게 아니라 매트리스를 하나 더 깔 공간도 없고요. 그동안 누가 집에 들어와도 이 이상의 선택지를 제안하지 못했을 만큼 공간효율도 max인 상태입니다.
남편은 책장으로 분리된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혼자 잤습니다. 그런지도 꽤 됐습니다. 그러면서도 '불편하지 않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팔을 양쪽으로 뻗으면 오른쪽과 왼쪽이 벽에 닿는 비좁은 화장실도, 남편'만'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이사 갈 때가 훌쩍 지났는데, '준비 중이다' '올해 안에는 가겠다'는 말만 7년째 반복하고 있습니다. 16년째 사는 남편에 대한 신뢰점수는 0에 수렴합니다. 반짝거리는 도심의 한가운데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며 아이들과 십수 년을 살았습니다.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어딘가 정규직 일자리를 다녀본 적이 없으며, 집에 재산이 많고 왕자처럼 자라 뉴욕에서 유학을 했고 뉴욕에 집을 계약할 예정이며 전*현 배우가 자기를 좋아서 따라다닌다고 몇 년째 말함), 카드 돌려 막기나 휴대폰 소액결제를 종종 한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고, 제 명의를 도용해 상의 없이 빚을 내 신용을 끌어내린 일을 두고, '어차피 너 나가서 일할 거 아니니까 상관없지 않아?'라고 묻는 남편의 귀싸대기를 날리고 싶었습니다. 그 이후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종종,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 자주 싸웠습니다.
설마 거짓말이겠거니,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하겠거니 했던 상식적인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작년 인내의 한계점이 남들보다 훨씬 높아 뒤늦게 찾은 상담소에서, 저는 이 현상을 뼈아프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언니가 기숙사에 가고 난 뒤, 둘째에게 그렇게 언니의 빈자리는 넓었습니다. 어젯밤엔 둘째 아이가 편안히 대자로 누워 자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새우처럼 옆으로 자는 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오늘 밤엔 좀 익숙해서 자리를 넓게 쓰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