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이야기 3. 엄마 몰래 걔네 집에

절벽 위의 산양이 너였군

by 아보카도

큰애 한 달 독서실을 끊어주며 둘째에게 나타난 변화 중 하나는 이 녀석이, 몇 년 전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이야기부터 얼마 전에 있었던 까지- 내게 '정확히' 말하지 않은 채 저질렀던, 아이의 사생활을 터놓는 거였다.


정말 이 자식(저는 긴장하면 표현이 과격해지는 특징이 있고 사실은 욕도 정말 찰지게 잘합니다)의 일상을 이제야 듣게 된 건, '지난 일이어야 엄마가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고 차분하게 들을 것'이라는 둘째의 똑똑한 생존(?) 전략일 테다.


하여튼 지난해 여름 즈음부터 친구 우*이 네 서 종종 놀고 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른이 계시냐는 질문에 할머니가 계시다고 하셔서 안심하고 보냈던 기억이.. 우*이라는 둘째 친구는 뭔가 남다른 데가 있었다. 겨울에는 패딩에 난 구멍 사이로 흩어져 공중에 날리는 오리털을 잡으며 논다고 했고, 흙바닥을 굴러도 혼나지 않는다고 했고, 단지 연못에서 개구리알인 줄 알았다는 도롱뇽 알을 둘째랑 같이 잡아다 제 집에 있는 어항 속 물을 넣고 비닐에 싸주는 바람에 한 1주일을 넘게 진짜로 도롱뇽 부화과정을 강제 관람하기도 했었다.


그 아이 이야기를 근래 다시 듣게 된 건 6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이 한참인 요즘, 둘째랑 종종 동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인데-(둘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 먹으러 집에 들르는 시간을 빼고 '도서관+도서관 주변'에서 '굴러'다니며, 그중 몇 시간은 친구들이 둘째를 보러 도서관으로 놀러 와(?) 준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던 둘째에게 자전거를 끌고 와 빌려주며 가르쳐 준 것도, 저녁 식사라고 집에서 핫도그를 두 개 데워와서 하나를 둘째에게 흔쾌히 나눠 준 것도 우*이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 아이를 엄청 잘 아는 것 같지만- 그 아이아 알고 지냈다는 몇 년 동안 그 애 얼굴을 본 게 고작 두 번 정도니까, 내 개입이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놀라울 정도로 두 녀석은 절벽 위의 산양 같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침없이 도심 한복판 공원 등지를 내달리며, '나름의 즐거움'을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어제 들은 이야기는 또 새로웠는데, 우*이네 집에 할머니가 항상 계신 건 아니며- 언젠가 빈 집에 애들이 우르르 몰려가 달걀흰자로 머랭을 치다가 설탕인 줄 알았던 소금을 넣는 바람에 나름의 요리를 망쳐보기도 했다는.. 지난 이야기였다. 우*이는 청소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하면서 용돈을 받는 데다, 동생 저녁도 차려준다는 얘기를 하며 둘째는 1차로 동경과 호기심을, 나는 2차로 헉소리와 으음 소리를 내뱉었다.


둘째가 느끼는 문화충격에는 내가 소환됐다. "엄마라면 말이야~ '너 옷이 이게 뭐야'부터 '손은 씻었니', 이거뿐이겠어.. 감당이 안 되는 뒤처리 때문에 집에서 애들이 뭔가 요리한다는 걸 두고 보는 거 자체가 불가능할걸? 엄마, 나 머랭 다시 쳐보면 안 돼~~?"


나는 진심으로 우*이네 부모님이 존경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우*이는 지금은 설거지하다 그릇도 깨보고, 소금 설탕을 바닥에 흘리기도 하면서 서툰 요리를 망치기도 하겠지만.. 결국 스스로 할 줄 알게 되는 거잖아. 멋있다.. 엄마는.. 그 과정을 두고 보면서 잔소리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 그래서 너 혼자 도서관에 보내나 봐. 엄마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우리 둘째가 배우는 게 많았네. 우*이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둘째는 그렇게 큰다. 첫째와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씽씽이와 빌려 탄 자전거로 동네를 누비며. 절벽 위를 직감에 가까운 생존본능으로 뛰댕기는 산양이 너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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