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 않았던 졸업, 중학교 탈출
"참.. 이런 애가 뒷담화의 대상도 되어 보고요." 나는 '아유,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네요'하는 표정으로 작은 넋두리를 건넸다.
큰애는 어릴 때부터, '있지만 보이지 않는' 애였다. 기질이 순했다. 잘 먹고, 잘 자고, 불평하지 않았다. 내가 hsp인 점도 한몫했다. 초등 저학년까지 신발 불편할까 봐 끈을 묶을 필요가 없는 운동화를 준비하고 그 당시 흔치 않았던 운동화처럼 편한 구두를 사준다거나 놀이터에서 먹일 간식을 '언제나' 준비하는 식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둘째를 재워놓고 부엌 구석에서 유치원에 보낼 컵과일을 준비하던 때도 생생하다. 12색 색연필 색깔 순서가 뒤죽박죽 될까 봐 케이스에 색깔 샘플을 오려 붙여놓는 엄마와, 그걸 또 잘 따라주던 딸.
선생님 입장에선 이보다 편할 수 없는 아이였다. '손이 안 가요'라는 말은,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는 뜻이었고- 병설유치원 2년 초등학교 6년 내내, 큰애는 어른을 믿는, 친구들이 신뢰하는, 교우관계가 원만한 아이로 자랐다. 내라는 거 잘 내고 하라는 걸 미루지 않아 '이런 애만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이런 애가 뒷담화 대상이 돼 보기도 하고요. 하고 옅게 웃었더니 안쪽에 앉은, 큰애를 가르쳐 본 적도 없는 3학년도 아닌 2학년 수학 담당 젊은 교사가 웃었다, '아시네~'하는 표정으로. 순간 내가 건넨 넋두리가, '떠보는 얘기'가 됐다는 걸 알았다. 웃었다는 건, 그랬다는 공감이었다. 나는 아이들 간의 뒷담화를 말한 거였는데 교사가 웃었다는 건, 교사들 사이에서도 이미 뒷담화의 대상이 됐다는 뜻이다. 아아. 생각보다 큰애가 학교에서 힘들었겠구나, 나는 직감했다.
큰애는 중학교 졸업이 1도 아쉽지 않다고 했다. 눈물 한방울 나지 않는다며. 이곳이 그래도 아이를 성장시키는 디딤돌이 역할을 했고, 그래도 기억에 남는 따뜻한 선생님들이 더러 계셨으므로, 나에게도 이곳은 고마움이 있는 장소이면서, 더 머물고 싶은 자리는 아닌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