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짧아지면 말이야
큰애가 독서실을 다니며 생겨난 장점 중 하나는, 둘째가 영어를 자유롭게 떠들어댈 수 있게 됐다는 거다.
둘째는 항상 영어 말하기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3m도 채 안 되는 대각선 거리에 놓인 제 책상에서 둘째는 하염없이 영어를 '듣기만'했다. 소리를 내면 큰애한테 방해가 된다고 틀어막으니, 입 속으로 웅얼거리는 게 습관이 됐다.
그렇게 둘째에게 영어는 늘 뒷전이었다. 하굣길에 놀이터에 들러 놀다 오면, 제 언니랑 같은 시간에 집에 도착하곤 했으니- 언니가 학원도 안 가고 집에 있는 시간에는 둘째도 덩달아 연산서나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슬라임을 하다가, 사실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다 썼다. (큰애 때는 나름의 양서를 반정도는 골라줬지만 둘째는 얄짤 없다, 애초부터 자기가 고르고 알아서 대출하고 가져온다)
이번 방학에 큰애가 독서실 정기권을 끊고 나서, 둘째는 태어나 처음으로 언니와 떨어져 지내는 방학을 맞았고 늘 제 언니와 함께 방학 아침마다 동네 도서관으로 향하던 길은, 둘째 혼자만의 길이 됐다. 그렇게 둘째는 집에 오는 오후 6시부터 언니 없이 이 작은 집을 누렸다(?).
영어 발음이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둘째는 나름대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하루 2시간은 영어에 써야 한다는 내 말에, 어젯밤엔 자기 전 '개구리 일생'이 짧게 담긴 영어 지문을 해석해야 했다. 원래 생물을 좋아하기도 했는데, 지문 해석하면서 자기 언어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꼬리가 짧아지면 말이야, 엉덩이가 허전해지는 거지~~'이러는데, 나도 모르게 커가는 올챙이한테 감정이입이 돼선, 어느새 허전한 엉덩이를 느끼고 있더라는.
둘째는 공부를 공부하는 것 같지 않게 했다. 뒤돌아보니, 머리 싸매고 하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젠가 그런 때가 오면 머리 터지기 전에 식혀야 한다며 낮잠을 몇 번이고 자곤 했으니, 안 풀려도 엉덩이 무겁게 책상에 앉아 버티던 첫째와는 결이 달랐다.
첫째 때와 달라진 점은 내가 둘째한테는 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물론 의식주는 꼼꼼하게 챙겼지만 '내가 뭐라고 공부를 가르치나'하는 생각과, '잘못 손댔다가 타고난 아이 장점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염려가 겹쳐서다. 무엇보다 첫째한테 온 힘을 다하는 바람에 둘째한테 갈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도 둘째는 공부(?)를 제법 좋아했다. 옆자리에서 가끔 내가 너보다는 잘하지- 하고 들먹이는 **이를 점수로 '뽝' 눌러줄 때 매우 통쾌하다고 했다. 그 맛에 공부를 한다나. 언젠가 강자에 강하고 약자를 괴롭히지 않아 괜찮다고 생각했던 ##이가 둘째를 건드리길래 왜 그러냐고 따졌더니 '너는 세잖아'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둘째 태명이 '건강한'이기도 했고 체육부장을 맡기도 하는 등 체력에서 밀리지 않으니 여자애들은 알아서 건드리지 않는데(나고자란 홈그라운드지만 초 3까진 떠보는 움직임이 있었다) 남자애들이 가끔 기싸움을 건다고 했다.
잘못 키우면 학폭 '가해자'가 될까 봐, 유치원도 기다리고 기다려서 7세에 처음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코로나라 한 해 동안 열몇 번 가고 졸업했다. 미쳤다. 이런 파워로봇성향 여자애를 그때까지 끼고 살았다니. 돌아가라면 아찔할 뿐.) 4살 터울 제 언니를 하도 깨물어서 동갑내기들은 오죽 가만 안 둘까 싶어, 초등 2학년 때까지 둘째한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엉덩이를 스메싱하며 '힘 조절 좀 해!'였는데.
그랬던 애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할 줄이야. 그것만으로도 너무 신기하고 기특해서 뭐라 개입을 안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애초에 크게 기대가 없었음) 어젯밤엔 공부하다 도파민 터진다며 신나서는 개구리 일생을 떠들어 대더니 정말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기특하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