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이야기 5. 엄마 배터리

충전 좀 하고 갈게요

by 아보카도

드디어 설날이다. 그동안 설날이 되면 괜히, 연 끊은 친정은 찾지 않더라도 남편이나 아이들은 시가에 보내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나만'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을 예뻐하실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어, 내가 불편하더라도 좀 참으면 좋은 분위기였다고 기억될 수 있을지 몰라, 자기 아들은 그래도 반가워하겠지- 나는 남이라고 해도 말이야. 내 머릿속에 억지로 상식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무례함이 뚝뚝 흘러도 웃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설거지부터 했던 것 같다. 끝까지 웃어 보였던 건 그 사람들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엄마가 표정을 굳히면 중간에서 불편해질 아이들을 생각해서였는데. 둘째가 태어난 지 만 10년이 넘어 성격 형성기도 끝났으니.. 됐다.


뒤돌아보니 시부모는 아이들을 예뻐하지도 않았고, 자기 자식을 귀하게 여긴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인데, 시부모는 자신들만 제일 소중했다. 내 부모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웃음이 났다. 그런 사람들이 뭐라고 그동안 전전긍긍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 명절부터는 기쁘게 우리끼리 잘 지내기로 했다. "세뱃돈 그 얼마보다 너희들이 얼굴 비추는 게 훨씬 값비싼 거야. 찾지도 않고 반겨주지도 않는데 굳이 가서 인사할 필요 없어. 너희들을 소중히 대해주지 않는 사람한테 돈 몇 푼 받겠다고 웃어 보이지 마라." 아이들한테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무리 사각지대 귀퉁이에서 학대받고 자랐을지언정, 나는 내가 귀해서 살아남았으니 부모에게 받지 못한 돌봄, 스스로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언제나 가자미 눈을 하고 현관 입구부터 위아래로 나를 훑어내리며 째려보던 사람을 시어머니라고 대접해 줄 이유가 없었다. 아들을 대단하게 키운 것도 아니고, 무능력과 무책임을 가르치고 도덕성은 키워주지 못한 부모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 언젠가는 물려줄 수 있다는 듯 큰소리만 치고 싶은 부모이기도.

둘째도 마음을 먹었는지, 내 뒤로 와서 꼭 안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 사랑해. 엄마는 배터리 같아, 사랑 충전하는 배터리. 충전 좀 하고 갈게요" 나는 둘째를 어부바하듯 뒤로 안고 궁둥이를 두들겼다. 둘째가 얼굴을 내 등 뒤로 파묻으며 코를 비볐다.


아이들을 생각해 참은 시간들이 지나 아이들을 생각해 선을 그어야 하는 시간. 그래 이젠 이거다 싶어 웃음이 났다. 얼마나 행복한가.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이었고 나이는 어렸지만 어른스럽게 책임을 다했으니, 뿌듯하게 시가에 안녕을 고하며 힘을 모을 시간이 왔다.


"줄 사람이었으면 자식 손주 고생하는데 진즉 주지, 줄 것처럼 밀당하며 군림하려 들지 않는다. 당신도 정신 차려. 내가 볼 땐 부동산 버블 터지잖아, 그럼 주택연금 돌리고 '내가 번거 내가 쓴다는데' 이럴 사람들이야~ 정부 입장에선 돈 값 떨어지는데 그쪽으로 몰아갈걸. 정신 차려~ 애들 추운 데서 떨며 겨울나는데 왕자님처럼 자랐다며 있는 척 호텔 다니며 허세 떨지 말고~" 남편한테도 웃으면서 말했다. (안타깝지만 남편도 뿌린대로 거둬야 한다. 그렇게 가족 상대로 사기치며 살아온 시간들..) 속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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