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12. 최가온 선수에 이끌려

넥스트를 보았다

by 아보카도

서울대 공과대에서 1월 말에 있었던 비전멘토링의 1부. '어서 와 공학은 처음이지?'의 중간.


나는 이날 누가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도 분명히 느꼈다. 어떤 학생들의 진지함을, 들뜨지 않는 차분함을. 고등학생들이었다.


나중에 그 아이들 중 다수가 세*고 학생들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알리미를 통해 검색했을 때의 직감이 심상치 않아서, 머릿속에 남아있던 중이다.


이번 설 당일, 지난가을 서울숲에 갔다. 아이들이 지난가을 자전거를 탄다고 돌았던 자리를 둘러보면서 '너무 춥다' '이 길이 맞냐' '너네 두 번이나 와봤다며' 장갑 낀 손으로 귀를 막고 잔소리를 해대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그때 여기서 헤맸지' '그래 여기까지 왔었잖아'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자 이제 어디 갈 거야?" 남편이 물었다. 차에 올라탄 뒤에 나는 입을 닫고 평소처럼 마음에 길을 물었다. "세*고 찍어봐, 가까운지 보자."


그렇게 밤거리를 돌았다. 세화여고가 보였다. 반짝거리지 않는 차분한 도심이었다. 길게 늘어선 키 작고 오래된 건물들에 학원들이 빼곡했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신도시에서는 쉽게 관찰되지 않는 깊고 막강한 소프트웨어를, 서울의 그 동네는 가지고 있었다. 세*고는 한눈에 보기에도 낡았지만 위엄이 있었다. 바로 옆 도로 끄트머리에서 아파트 공사가 마무리 중이었다.

"보통 이렇게 공사를 하면 영향이 없을 수가 없는데.." 나는 의아했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동네를 좀 더 돌기로 했다.


돌다가 발견하고 무릎을 친 장소는, 학원가보다는 '종합 운동장'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명절 당일 해가 내려앉은 밤 8시쯤, 한 눈에 보기에도 수십 명이었다. 남학생들 여럿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텅 비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리에, 밤에, 경기용 라이트가 켜진 그 큰 운동장에서, 제법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우리는 주차를 하고 한 바퀴를 돌았다. 일부러 가장자리에서 반대로 천천히 돌았다. 사람들 표정과 분위기를 살피고 싶었기 때문인데- '남다르다'라고 느낀 확실한 지점은 아이들 분위기였다. 맙소사. 견제, 긴장, 끌어내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서울 강남의 두 명문고 앞이 그랬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아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능한가 싶은 일이 진짜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를, 대학은 이미 보고 있었던 거다. 물론 그 동네라도 해서 장점만 있겠냐마는, 트랙을 달리는 어른들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힘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과, 서로 견제보다 무언가 힘을 합하고 있었던 분위기는 진심으로 인상적이었다. '돈 있으면 여기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직접 많은 수의 세*고 학생들의 뒷모습에서 침착함, 협력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최가온 선수가 세화여고 학생이란 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최가온 선수가 이 동네에서 성장했고 그 자리까지 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 사람만의 성장이 아니라 주변과 함께하는 성장이었다. 나는 이날 우리의 넥스트를 보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조용한 이곳이 대한민국 교육의 지향점, 교육의 넥스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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