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를 보았다
서울대 공과대에서 1월 말에 있었던 비전멘토링의 1부. '어서 와 공학은 처음이지?'의 중간.
나는 이날 누가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도 분명히 느꼈다. 어떤 학생들의 진지함을, 들뜨지 않는 차분함을. 고등학생들이었다.
나중에 그 아이들 중 다수가 세*고 학생들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알리미를 통해 검색했을 때의 직감이 심상치 않아서, 머릿속에 남아있던 중이다.
이번 설 당일, 지난가을 서울숲에 갔다. 아이들이 지난가을 자전거를 탄다고 돌았던 자리를 둘러보면서 '너무 춥다' '이 길이 맞냐' '너네 두 번이나 와봤다며' 장갑 낀 손으로 귀를 막고 잔소리를 해대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그때 여기서 헤맸지' '그래 여기까지 왔었잖아'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자 이제 어디 갈 거야?" 남편이 물었다. 차에 올라탄 뒤에 나는 입을 닫고 평소처럼 마음에 길을 물었다. "세*고 찍어봐, 가까운지 보자."
그렇게 밤거리를 돌았다. 세화여고가 보였다. 반짝거리지 않는 차분한 도심이었다. 길게 늘어선 키 작고 오래된 건물들에 학원들이 빼곡했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신도시에서는 쉽게 관찰되지 않는 깊고 막강한 소프트웨어를, 서울의 그 동네는 가지고 있었다. 세*고는 한눈에 보기에도 낡았지만 위엄이 있었다. 바로 옆 도로 끄트머리에서 아파트 공사가 마무리 중이었다.
"보통 이렇게 공사를 하면 영향이 없을 수가 없는데.." 나는 의아했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동네를 좀 더 돌기로 했다.
돌다가 발견하고 무릎을 친 장소는, 학원가보다는 '종합 운동장'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명절 당일 해가 내려앉은 밤 8시쯤, 한 눈에 보기에도 수십 명이었다. 남학생들 여럿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텅 비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리에, 밤에, 경기용 라이트가 켜진 그 큰 운동장에서, 제법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우리는 주차를 하고 한 바퀴를 돌았다. 일부러 가장자리에서 반대로 천천히 돌았다. 사람들 표정과 분위기를 살피고 싶었기 때문인데- '남다르다'라고 느낀 확실한 지점은 아이들 분위기였다. 맙소사. 견제, 긴장, 끌어내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서울 강남의 두 명문고 앞이 그랬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아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능한가 싶은 일이 진짜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를, 대학은 이미 보고 있었던 거다. 물론 그 동네라도 해서 장점만 있겠냐마는, 트랙을 달리는 어른들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더 힘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과, 서로 견제보다 무언가 힘을 합하고 있었던 분위기는 진심으로 인상적이었다. '돈 있으면 여기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직접 많은 수의 세*고 학생들의 뒷모습에서 침착함, 협력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최가온 선수가 세화여고 학생이란 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최가온 선수가 이 동네에서 성장했고 그 자리까지 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 사람만의 성장이 아니라 주변과 함께하는 성장이었다. 나는 이날 우리의 넥스트를 보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조용한 이곳이 대한민국 교육의 지향점, 교육의 넥스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