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이야기 2. 콘크리트 최상위권과 친구 먹기

남다른 교육을 받은 또 다른 아이를 바라보며

by 아보카도

어제도 새벽 한 시 반에 들어온 큰애가 들어오자마자 피곤하지도 않은지 '엄마~엄마~'를 연신 불러댔다. 나는 속으로 '이쇄키가 엎어져 잤나? 왜 오밤중에 힘이 돌지?' 생각하며 '왜 무슨 일이야'로 답했다.


"엄마 있잖아 오늘 서*이 저녁에 또 만났다?"

"야.. 세 번을 만나다니 인연이네. 근데 왜?"

"걔 수학 과외비가 얼만지 알아? 한 시간 반에 7만 원, 주 4회 받아서 4주 112만 원이라는 거야."

"어? 수학만 받는 거 아니잖아. 독서실도 관리형이라 비싸지 않아?"

"국어도 과외하는데 수학 반정도 든데. 영어 학원도 다니지, 필라테스도 계속하고 있다더라고. 걔네 저번주에 여행도 다녀왔는데.. 아 맞다 낮에 만났을 때 치과 가는 길이랬는데, 교정하러."


머릿속으로 단순 계산해도 이번 방학 때 월 300은 들인 것 같았다. 내 현실은 큰애 학원 끊고 인강으로 돌린 뒤, 집 앞 독서실비도 너무 비싸네 어쩌네 하는 남편과 허구한 날 말다툼을 하는 건데.. 듣고만 있다가는 끌려 들어갈 것 같아 숨을 고르고 말했다.


"걔가 너한테 무기를 알려줬네, 고맙다. 이번 방학이 몰아 쓸 시기였단 거고, 준비했다는 듯 퍼부은 때였다는 걸 알려준 거잖아.. 야.. 돈으로는 못 이기겠다. 걔 한 사람한테 한 달 들어가는 돈, 우리 집 생활비야. 넘사벽."


나는 웃어 보였다. 큰애도 덩달아 웃었다. 어릴 때부터 봐 왔지만 멋진 친구였다. 큰애한테 너 어디 사냐고 물은 적이 없다고 했다. 오피스텔 산다고 같이 다니기 꺼려한 적이 없는 아이였다. 이 2천6백 세대가 넘는 오피스텔과 아파트 섞인 단지에서, 그런 아이는 극히 드물었다. 편견 없이 바라봐 준 덕분에, 뭐가 통했는지 애들은 시험이 끝날 때나 방학마다 정기적으로 만나서 떡볶이도 먹고 마라탕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서울여행도 다녀왔다.


만난 지 5년째 되던 해, 그 아이는 진짜 이야기를 큰애한테 털어놨다. 부모님의 자신이 넘기 힘든 학력을, 그리고 받아온 지원을. 큰애한테 '노력도 재능'이라며, '빚을 내서라도 공부하라고' 말해줬단다.


그 친구.. 겉으로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외모에 사춘기는 언제 오려나 싶은 맑음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부모님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점수가 안 나와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언젠가 집 오는 길 같이 차로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밤 12시에 독서실 앞으로 데리러 오셔서는, "서*아, 전화를 안 받으면 엄마가 너 자는 줄 알잖아."라고 말씀하셨다고. 그 말투에 피곤한 기색도 짜증도 조급함도 없었다는 게 큰애는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서*이는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 때 요리학원을 다니고 어린이 수영장을 다녔다. 그게 가능한가 싶은 과정을 유독 이 아이만 밟고 있었다. 그 애가 언젠가 물었다고 했다. "나 이제 좀 한국사람 같아?" 음. 오랜 해외살이, 초등 4학년에야 시작한 한국살이. 개방성이 투머치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아니, 그러기엔 넌 상상력이 높잖아." 큰애가 대답했다. 그 친구가 웃으며 되물었다고 했다. "너는?" "나도?"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다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긴 학군지 한복판이다. 그런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중3 겨울방학을 폭풍 지원 속에서 지냈다. 나는 이런 아이가 진짜 콘크리트 최상위권이라고 느낀다.


"잘 들어봐. 왜 그 무기를 너한테 알려줬을까? 그건.. 너도 그만한, 그에 동등한, 다른 무기를 갖고 있단 뜻이야."


이 아이들이 써 내려갈 고등학교 생활의 시작을 응원하며, 현실에 발을 디디고 하늘을 올려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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