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단종 곁을 지켰던 엄흥도 이야기 (스포주의)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기숙사에 큰애를 보내기 전에,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것 같은.
책도 좋은데, 영화도 좋았다. 가족 넷이 나란히 앉아 영화 본 게 언제였더라.
세종대왕이 예뻐했던 손자의, 열일곱 무렵 이야기. 영화는 두메산골의 평범하고 소박했던 마을,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귀양길에 오른 나으리를 극진히 모셨다가 잘 먹고 잘 살게 됐다는 옆 동네 이야기에, 이참에 유배 명소로 거듭나보자고 마음먹은 촌장이 주인공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감정은 원통함(분하고 억울함)이다. 왕이었던 열일곱 살 소년도, 두메산골의 사람들도, 원통함이 서려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등 돌리기에는 너무나 분통 터지는 이야기에, 관객이 돈을 주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년 한국의 현재가, 의지로 좌지우지되지 않는 현상 앞에- 무력감과 원통함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 끝이 공허해지려던 찰나에, 촌장은 왕이었던 소년의 시신을 수습한다. 시신을 거두는 자, 삼족을 멸한다는 공표에도 일가족의 죽음을 무릅쓸 만큼- '이미 죽은' 단종을, 마음으로 섬겨 등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과정의 내적 갈등을,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위험을, 우리는 모두 숨죽여 바라봤다. 손익을 따져 아니다 싶으면 손 터는 게 국룰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모습은 그 자체로 낯선 울림이다.
장항준 감독은 그 낯선 울림을 찾아내 고민했을 것이다. 유난히 짧은 주인공의 한 줄 기록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찾아 헤맸을 것이다. 실제 주인공 삶은 부나 권력, 명예, 그것들을 바라보면서도 향해 있지 않았다. 그것들을 향해 있지 않을 때, 내면의 목소리에 목숨을 걸 때, 얼마나 숨죽여 일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엄흥도는 선한 일을 하다 화를 당하더라도 달게 받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소설과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런 사람을 높이 사는가' 질문해 본다.
그 숨죽인 시간들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큰애가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많이 우는 건 처음 봤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중요한 질문이 가 닿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