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이야기 7. 부부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아이를 보듬을 힘도 남겨놓아야 한다

by 아보카도

"갚을게."


익숙한 거짓말이었다. 내 이름으로 허락이나 상의 없이 낸 빚을 들킨 지난해 여름부터 줄곧 남편은 '갚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해댔다. 지난 해 말에야 2월 28일까지 갚는다고 각서를 쓰길래 몇 달을 두고 봤더니, 1/4도 안 되는 돈을 이체하곤 큰소리를 치는 거였다. 그거라도 갚은 게 어디냐며.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남편의 '태도'였다.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서 시간을 끌고서는, 기다리며 지치고 힘든 가족의 상처를 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400억 해외계좌를 보여주고, 말레이시아 등의 해외 사람들과 줌미팅하는 걸 보여준 다음, 몇천 몇억 몇십억을 입에 올린 뒤- 내 지인들에게 몰래 돈을 빌리고 큰애 학원비는 못 댄다고 역정을 내는 일이 반복됐다. 시가도 비슷했다. 큰애가 어릴 적 미국으로 유치원을 보내라더니, 실상은 조금 넓어진 원룸에서의 병설 유치원 입학이었다. 큰애를 6평 원룸에서 키울 적에 계란도 사기 힘든 순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를 사주며 내게, '아이에게 먹을 건 최고로 먹여'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단체 정신병인가 싶었다.


불편한 감정이 들어오는 순간들에, 나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어린 엄마로 그 자리를 지켜내며- 그들이 어디까지 헛소리를 해대는지 지켜본 시간이 17년이 됐다. 책임지지 않을 말을 허세와 허영심에 내뱉는 사람들 덕분에 아이들은 말과 행동의 괴리가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걸 체험하며 자랐다.


그리고 남편은 그게 뭐가 이상한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시작할 때까지 참았다 터지는 부부싸움은 줄곧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이 와중에 아이들이 불안해할 수 있는 걸, 부모님의 싸움에 강제로 휘말려야 했던 나는 느낄 수 있다..


수능 국어를 보면 9등급이 나올 것 같은 남편에게 에너지를 다 쏟을 수 없었다. 나는 잘 먹고 잘 쉰 뒤에, 앞뒤 말이 틀린 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흔들리지 않고 싸운 뒤 아이들을 보듬어야 했다. 아이들에게 이 상식적이지 않은 대화를 들려주면서도, 상식적으로 아이들이 받아야 할 보호나 권리를 읊는 식이었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강한 부정적 에너지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때때로 지나치게 버겁다. 아이들은 내가 싸우느라 힘을 소진해 자신이 비빌 자리가 없을 때, 때때로 괜찮은 척 가면을 쓰기도 했다. 특히 청소년기에 진입하는 둘째의 웃는 얼굴에 슬픔이 비쳤다. 내가 조금 회복하고 남편과 맞서면서도 아이들을 챙기자 갑작스럽게 내비친 모습이었다. '웃는 거 아닌데 너, 슬퍼 보이는데'라고 말하자 둘째 눈에서 툭.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랬다는 뜻이다.


보듬고 안아주고 나니 둘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놀러 나오라는 전화. 나는 샤워를 권한 뒤, 씻고 머리를 말린 둘째한테 오랜만에 고데기로 머리를 말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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