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창과 맞닿은 벽면에 자리잡은 트램플린. 첫째가 자랑이라도 하듯 그 난간봉을 딛고 올라서서 '엄마, 나 좀 봐' 했다. 역시, 몇 초 지나지 않아 트램플린 안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졌는데, 그러면서 그 옆에 있던 블라인드의 줄이 휘청하며 높이 치솟았다. 아슬아슬하니 안 그래도 맛탱이가 가려던 블라인드가 결국, 사망했다. 대체 어찌 된건지, 저 높은 봉 끝에 줄이 몇 바퀴고 감기고 엉켜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블라인드를 철거하여 줄을 풀고 다시 고정시키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벌써 이사한지 2년이 훌쩍 넘으면서 블라인드 사장님 연락처는 공중으로 사라져버렸고, 물건 부숴뜨리는 걸 죽는 것 만큼 싫어하는 애 아빠는 이 꼴을 보고서 좋은 소리 할리 만무하다. 1만 혼내도 될걸 5, 6까지 길길이 날뛰며 아이에게 화를 내는 그 꼬라지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하다. 웬만한건 내가 뚝딱거리며 고쳐 볼 엄두라도 내겠는데, 이건 진짜 내 손 밖의 일이다.
잠자기 전, 거실 블라인드 상태를 확인한 후, 답답한 마음으로 딸 아이 방으로 와 그 옆에 누웠다.
"블라인드 어쩌지..."
"내가 고장낸 거 말이야?"
해맑고 천진하다. 좋겠다, 걱정 없어서. 하고 생각하던 찰나, 아부지가 떠올랐다. 젊은 시절 우리는 아부지를 맥가이버라 불렀다. 사소한 전선 정리나 못질은 그에게 껌씹기와 비등해 보일 정도로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나는 모든 남자가 다 그런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전선이 꼬이든 개판이 되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내심 충격을 먹었었다. 뭐든, 아부지의 손을 거치고 나면 상태가 나아졌고, 웬만한건 나음을 얻었다(목사라는 직업병이 엄한데서 발휘된건가).
"외할아버지라면 고칠 수 있을텐데"
중얼거리듯 던진 그 한마디는 결국 아부지의 부재를 인정하는 꼴이 됐다. 반드시 세상에 없는 사람이어야지만 부재임이 아니라는 것 역시 또 다른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요추에 전이된 암이 신경을 눌러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아부지는 지금 걷질 못하신다. 걷기만 못하는게 아니라,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거의 사라지셨다. 안 그래도 느렸던 걸음걸이가 투병 과정에서 훠어어얼씬 더 느으으으려 졌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아부지가 편찮으시지 않았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연락을 해서 저 좀 도와주십사, 비굴하게 쭈뼛거렸을텐데. 투덜하면서도 '하린이가 그랬어요' 하면 멀지 않은 시일내로 차를 몰고 와서 뚝딱뚝딱 해결해 주셨을텐데. 내가 아부지를 어떤 면에 있어서는 정신적으로는 의지했고, 나름 어느 정도는 신뢰하고 있었음이 새삼스레 깨달아졌고, 또 한편으로는 블라인드 새로 달아달라고 부탁할 사람 하나 없을 만큼 내 인생은 걍팍하고 불신으로 가득찼구나 싶어졌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더 이상 아부지에게 뭔가를 부탁할 수 없는 지금의 상태 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아부지의 부재에 당황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
쪼매난 것이 무얼 안다고, 할아버지가 고비는 넘기셨지만 더 이상 건강해지실 수는 없을 것이라는 나의 설명을 들은 뒤, 딸이 나를 안아주며 토닥였다. 너는 나의 이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까.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할지언정, 그렇다고 나쁜 아버지로 정의할 수도 없는 복잡한 나의 아버지. 그 빈자리는 앞으로 어떻게 매꾸어나가야 할까.
한번씩, 아부지와의 추억을 추억하려 애쓸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별 게 떠오르진 않는다. 가족끼리 차 타고 다니며 '한계령' 노래나 듣던 순간, 심부름 안 가려고 버티다가 욕 먹은 초딩 시절, 수행평가 스케치북을 안 들고 와서 퀵으로 그걸 보내주셨던 고1 어느 날, 대학 부적응자가 막무가내로 휴학계를 낸 후 진짜 무섭게 화난 얼굴을 봤던 대학 2학년 여름...그 외에도 파편으로 조각난 아부지의 기억은, 내가 싫어서 망각한 것인지 원래 무심하여 저장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매우 부정확하고, 편향된 채로 단편적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의문스럽다. 이런 아부지는 어째서 나에게 큰 존재인가. 분명히 이기적이고, 자식에게도 계산적이었는데. 나는 왜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 앞에서도 매정해지길 선택하기 보다는 앞으로 그가 없을 시간에 막막해져야 하는가.
아부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번도 궁금한 적 없었는데, 요즘은 그게 궁금하기도 하다. 나름의 최선으로 나를 사랑했으니, 너에게는 빚이 없다 여기시려나. 아니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던 둘째 롤을 지금도 유지하고 계시려나. 추후에 다룰 이야기지만, 엄마의 자기중심적인 대처로 인해, 아부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는 죄책감이었던 때가 있었고, 나는 그것이 감사했지만 감사도 사랑도 내 마음안에서 온전하지는 못했었다. 앞에서는 나를 이뻐 해도 엄마에게 내 흉을 봤던 아부지의 그것을 다시 나에게 전달해주며 '잘하라'는 잔소리와 조언을 쏘아대던 엄마 덕분에, 아부지의 말과 마음, 응원과 기도를 온전히 신뢰하지도 못했었다. 이도 저도 아닌게 더럽게 찌질했다. 부모님을 이제 와서 원망할만큼 어리진 않지만, 나에게 사람이란 그게 누구이든, 아름다운 거리 그 이상을 좁히지 못하는 멀고도 피상적인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건 분명하다.
더 이상 내게는 아부지가 없다. 있어도 없음과 같다. 어떠한 표상으로 자리잡았던 그 아부지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소소한 도움을 요청하면 받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온 우주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부지가 내게 그러하듯이, 나 역시 이런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얘기 안 할 것 같다. 10의 2도 털어놓지 않던 그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렇지만 분명히 나는 슬퍼하고 있다. 이 슬픔은 이제 시작이란 것도 어렴풋이 깨달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