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블로그에 최적화 된 툴
군대에 있을 때 처음으로 일정관리를 위해 수첩을 사용해봤다. 장교도 부사관도 아닌 일개 병사였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3교대를 혼자 돌리느라 업무가 너무 많았고, 수첩 없이 그 많은 업무와 정보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보통 하루에 2시간, 길면 3시간, 아니면 그냥 안 자면서 24시간 일만 했다. 당시 내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하루에 네 시간만 자보는 거였다. 진짜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잠'에 노이로제가 생겼다. 내가 괜히 게으른 게 아니라는 말이다. 믿어달라. 어쨌든, 당시 내가 수첩을 정리하는 방법은 정말 단순했다.
앞면부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
뒷면부터 순서대로 유용한 정보를 기록하는 것
이 두 가지였다.
군대라는 조직과 내가 맡은 업무의 특성상 일, 주, 월, 연 단위로 반복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단순하게 정리해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사회에 나가도,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이 방식대로 수첩을 - 과제를 - 정리하면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처음 그 방식을 그대로 시도했던 건 대학에서였다. 수업 시간표와 과제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수첩에 정리하곤 했다. 과제나 수업에 필요한 정보는 수첩 뒷면에 기록하고 참고했다. 잠깐은 성공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 곧 하나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그게 뭐든 하다 보면 작게나마 뭔가 '역할'이라는 게 생긴다. 조별 과제 리더가 되든 팀원이 되든 어쨌든 '역할'이 생긴다. 이 역할이 하나둘 늘면서 내 수첩 정리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매일 체크리스트 단위로 정리하던 수첩에 미해결 과제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매일이 마감이고 매일이 시작이던 체크리스트로는 여러 '역할'에 따른 '일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매일 새롭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지난 과제를 업데이트했지만, 그러다 보니 매일 수십 개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야 했다. 당연히 수십 개의 체크리스트 중 그날 해결하는 건 한두 개에 불과했고 나머지 수십 개를 또 수첩에 기록해야 했다. 맙소사 그건 정말이지 너무도 귀찮은 일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찾은 방법은 구글캘린더였다. 구글캘린더에 날짜별로 과제를 기록해뒀다. 과제마다 어쨌든 마감날짜가 있으니까 그 마감날짜에 과제를 써두고 매일 캘린더를 보면서 상기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일단 수첩에 하던 것 보다는 덜 복잡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체크리스트로 하루씩 과제를 해결하던 방식이 익숙해서 그런지 오히려 마감 직전까지 '과제'를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과제를 마감 날짜가 아닌 기간으로 설정해뒀다. 당연하게도 '역할'은 줄지 않고 늘어만 갔고 과제도 그만큼 늘어만 갔다. 이번에는 캘린더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봤다. 사실 어떤 노력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기억 안 난다. 유명한 프랭클린 플래너를 시도했다가 복잡한 사용법에 포기했던 건 확실히 기억한다. 다음으로 구글의 그 유명한 '넥서스원'이 처음 나왔을 때는 jorte 라는 플래너를 상당히 오래 잘 사용했었다. 캘린더와 체크리스트를 동시에 쓸 수 있어서 참 편했다. 어쨌든 그것도 아이폰으로 옮기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만족도가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안드로이드에서 처음 아이폰으로 옮길 때는 jorte 때문에 꽤 망설이기도 했었다. 어쨌든 아이폰으로 옮긴 다음에도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관리를 시도했다. 물론, 다 망했다. 아이폰용 jorte 는 썩 편하지 않다. 안드로이드에서는 위젯이 있어서 쓰기 편했는데 ios에서는 그게 없으니 너무 불편하더라. 그렇게 몇 년을 새로운 '툴'을 찾고 사용하고 시도하기를 반복하다 언젠가부터 체계적인 일정 관리를 포기했다.
그래서 이제 그냥 안 한다. 늘 들고 다니는 수첩이 있지만, 매일 아침에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써놓기만 하고 특별히 체크리스트로 활용하지도 않고, 마감 날짜를 수첩에 있는 달력에 적어놓기는 하지만 특별히 상기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내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 요즘엔 동료들이 오히려 내 일정을 관리해주곤 한다. "xx까지 yy해야 하는 거 잊지 말라", "zz했냐" 같은 말을 아주 자주 듣는다. 나는 참 편하다. 알려주면 그때 하면 되니까. 물론, 늘 감사하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진심이다. 어쨌든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냐면, 얼마 전부터 에버노트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일정관리 얘기를 하다가 왜 에버노트 얘기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런 게 의식의 흐름 아니겠나. 하하핫.
예전에 에버노트가 처음 나왔을 때도 사용해봤다. 항상 말하지만, 본업이 프로네티즌이라, 새로 나오는 서비스는 꼭 한번은 사용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때는 사실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아 이런 거구나' 하고는 말았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관리를 할 필요가 생겨서 이런저런 툴을 찾다가 오랜만에 한 번 접속해 봤다. 예전에 만들어둔 아이디로 로그인하고, 스택과 노트북과 노트를 역할과 과업 단위로 대충 트리를 짜놨다. 그리고 웹클리퍼로 기사에 참고할 자료를 몇 개 스크랩하고 토막글을 노트로 적고 뭐하고 하다가 바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등록해버렸다. 이건, 프리미엄을 등록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편하고 좋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졌다.
에버노트는 일정을 관리하는 툴이 아니다. 그런 거는 아마 더 좋은 툴이 있을 거다. 분더인지 띵즈인지 뭐시기 하는 게 있던데, 아직 안 써봐서 모르겠다. 곧 안 써볼 예정이다. GTD라는 게 있는데, Getting Things Done이라고 닥치는 대로 과제를 순서대로 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서 시도도 안 해볼 예정이다. 혹시라도 다음에 시도하게 된다면 금방 포기하고 후기를 올리겠다. 어쨌든, 에버노트는 일정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관리하기에 참 좋다. 역할=스택, 과업=노트북, 과제=노트 단위로 여기기로 하자. 내가 과업이랑 프로젝트를 섞어 쓰고 있구나. 이제 과업 하나만 쓰겠다. 어쨌든, 위에서 말한 식으로 나름의 룰을 정하고 트리를 짜고 관리를 하면 정말 편하다. 이미 쓰고 있는 사람이 많겠지만, 혹시라도 안 쓰고 있다면 한번 써보기를 권한다. 정말 좋다.
뭘 도대체 어떻게 쓰길래 그렇게 좋은 거냐고 묻는다면, 얘기 안 할 거다. 중요한 건 나름의 '룰'을 정하면 된다는 거다. 그럼 된다. 그리고 일단, '일(day)' 단위로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은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나처럼 과업 단위로 사는 사람한테 추천하는 거다. 일 단위 업무는 GTD가 짱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옴니포커스, 띵즈, 원더리스트 를 추천한다. 물론, 안 써보고 남들이 좋다길래 추천하는 거다.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럼 일정 관리는 어떻게 하냐면, 머리로 한다. 일정을 관리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러다 놓치는 일도 많고 앞으로도 많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내 몸에 잘 맞는 좋은 툴이 나오기 전에는 안 하기로 했다. 찾다 보면 좋은 게 나오던지 언젠가 나오겠지 뭐.
사실 일정 관리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고, 그것도 나름의 룰을 정했다. 일주일 단위로 프로젝트 하나당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거다. 그게 월요일이든 수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상관없이 '1 week 1 content'만 지키기로 했다. 아, 콘텐츠는 과제다. 이제 과제만 쓰겠다. 1주일에 1과제만 지키기로 했다. 역할이 많고 프로젝트가 많아도 어쨌든 한 프로젝트별로 일주일에 하나씩 과제가 나온다. 오늘 안 했으면 내일 할 거고 내일 안 하면 모래 할 거다. 문제는 에버노트 덕분에 과업 단위는 참 관리가 잘 되는데, 약속이나 그런 생활은 아직 잘 관리가 안 된다. 뭐 어떻게 되겠지.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라는 멋진 말을 믿는다. 근데 way 앞에 관사는 a 가 아니라 an 아닌가. 아님 말고.
드롭박스와 에버노트를 돈 내고 쓴다. 내가 에버노트를 쓰는 것처럼 돈을 내면서도 쓰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모든 업체들의 희망 사항일 거다. 참 어려운 일인데 에버노트랑 드롭박스는 그걸 해냈다. 그만큼 좋은 서비스다. 드롭박스는 꽤 오래 썼다. 돈을 내고 쓴 지는 한 삼 년쯤 된 것 같다. 아이클라우드, 구글드라이브, 원드라이브 등등 경쟁자가 많음에도 계속 쓰는 건 제일 편해서다. 그리고 왠지 제일 믿음이 가서다. 원드라이브는 마이크로소프트라 신뢰가 안 가고, 아이클라우드는 애플이라 신뢰가 안 가고, 구글드라이브는 구글이라 신뢰가 안 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뭐든지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신뢰가 안 가고, 애플은 폐쇄적이라 신뢰가 안 가고, 구글은 투박해서 신뢰가 안 간다. 드롭박스는 아주 만족스럽다. 아이폰으로 찍는 라이브포토를 원본으로 업로드할 수 없다는 점 빼고는 거의 다 만족스럽다. 덕분에 아이폰 사진 백업을 꼭 유선으로 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생겼는데, 이것만 해결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사실 많이 불편하다. 갑자기 열 받는다. 일 좀 해라 드롭박스야. 확 그냥 구글로 바꿔 타는 수가 있다.
드롭박스와 에버노트를 함께 쓰면서 새삼 느낀 건데, 드롭박스는 곧 사라질 것 같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드롭박스가 기반을 두고 있는 '파일 시스템'이 사라질 것 같다. 개별 문서를 파일로 아카이브하는 건 아주 아주 오래된 전통이고 지금도 앞으로도 컴퓨팅 시스템의 기반이 될 테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느끼지 못하는 수준으로, 그러니까 아주 RAW 레벨로 변할 것 같다. 최근에 컴퓨터를 배운 세대들이 도스 명령어 쓰는 법을 모르듯이, 앞으로는 '파일 관리'라는 걸 모르는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에버노트에서 파일이 아니라 문서 단위로 관리를 해보니 그게 그렇게 편하더라.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편한 건 남들도 편한 거고, 많은 사람들이 편하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그렇게 바뀌더라. 그래서 어쩌면, 아마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것도, 아님 말고. 나는 작가이자 기자 즉,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뭐 여기까지만.
어쨌든 결론은, 에버노트는 참 좋다. 글 쓰는 게 업이라면 무조건 추천한다. 내가 이런 거 추천 잘 안 하는데 이건 진짜 좋다. 아, 장편 소설이나 긴 글에는 율리시스와 스크라이브너라는 더 좋은 툴이 있다(-고 하더라). 사실 유료라 안 써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 섹션과 챕터로 나뉘는 긴 글에는 조금 더 좋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 장편은 쓸 계획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네티즌 주제에 무슨 장편이냐. 이 정도 쓰는 것도 긴 글이다. 그리고 이 정도 글을 쓰는 데는 에버노트면 충분하다. 어쨌든, 호흡이 긴 장편 소설이 아니고 길어야 중단편 소설, 짧으면 이런 블로그 글, 중간이면 기사 정도 쓰는 데는 에버노트만 한 툴을 아직 못 봤다.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일에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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