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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영 Mar 01. 2017

내 맥이 이상하다.

이 복잡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서 좋았다.

윈도를 쓸 때는 점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서 좋았다. 메모리, 레지스트리, 디스크를 수시로 관리하고 이런저런 트윅을 하면서 나름 파워유저라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안드로이드도 정확하게 마찬가지였다. 넥서스원부터 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게 기분 좋았다. 이런 기능도 만져보고 저런 기능도 만져보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긱 혹은 너드구나, 생각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우월한 기분도 들었다. 종종 잘난 척도 좀 할 수 있었고.


이런 느낌의 잘난 척을 좀 하고 다녔다. 미안하다.


해야 할 일이 줄어서 좋았다.

맥을 쓰면서는 해야 할 일이 점점 줄어서 좋았다. 라이언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게 많았다. 관리라고는 다운로드 폴더와 도큐멘트 폴더에 쌓이는 파일을 정리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 편리함 덕분에 이제는 Windows텐보다 OS텐이 훨씬 익숙하다. 맥은 일단 직관적인 게 좋다. 이걸 여기에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그냥 생각하는 대로 된다. 논리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된다. 대부분은. 그래서 신경 쓸 것이 없어서 좋았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도스부터 이어진 윈도식의 디렉토리 트리 구조가 의식에도 박혀있는지라 여전히 그런 식으로 파일을 정리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어서다. 사실 이건 뭐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니까. 정말 불편한 건 라이브러리를 관리할 때다. MacOS가 알아서 잘 해주지만 가끔 직접 하려고 하면 이렇게 불편하고 번거로울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주 기기를 아이맥+MBPR에서 MBA 하나로 바꾸면서 정말이지 지옥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거의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아이무비 보관함이 통합되지 않았다. 누구 해결법 아는 사람 있으면 좀 알려달라.


맥북에어, 아이폰, 애플워치를 사용하고 있지만 결코 앱등이는 아니다. 그리고 이거 내 사진 아니다. 비슷하긴 하지만.


내 얘기다.

페이스북 알림은 하루에 한 번만 확인해도 충분하다. 하루에 300번씩 할 필요는 없다. 내 얘기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난 경험, 다들 있지 않나. 요즘 맥은 점점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잡스라면 이런 걸 바라지 않았을 거다. 요세미티부터는 전화도 문자도 컴퓨터로 온다. 소름 끼치게도 항상 Connected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 이제는 컴퓨터를 넘어 손목에 있는 시계로도 온다. 와우. 이건 정말, 귀찮고, 피곤하다. 물론 나는 자랑스런 네티즌이지만 가끔은 오프라인으로도 살고 싶다.


아이폰6부터 확실히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맥 그리고 애플 제품들이 자꾸 불편해진다. 뉴맥북과 MBP는 작고 예뻐졌지만 팜레스트가 작고 트랙패드가 커져서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아이폰은 빠르고 아름답게 작동하지만, 너무 커서 쓰기 불편하고 애플워치는 진정한 예쁜 쓰레기다. 매직트랙패드2는 탭틱엔진이 환상적으로 좋지만, 너무 커서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매직키보드와 함께 사용하는 건 포기하고 이젠 그냥 매직마우스를 쓴다. USB-C와 라이트닝은 기이하게 공존하고 있다. iOS와 MacOS도 마찬가지다. 점점 복잡해지고 점점 불편해진다. WatchOS는 말할 필요도 없다. 쓰레기다. 모두 내가 쓰고 있거나 썼던 것들이라 솔직히 말할 수 있다.


잡스 형, 원래 맥은 이렇게 복잡한 거 아니었잖아요.


나로서도 곤란하다.

살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과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게 같은 의미더라. 그리고 그렇게 새로 생긴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이더라. 그래서 요즘 내가 제품을 고를 때 생각하는 건 얼마나 많은 일을 더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가다. 항상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물론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은 원래도 없었다. 어쨌든 그래서 맥이 그리고 애플이 좋았다. 같은 이유로 요즘엔 의구심이 생긴다. 점점 불편해진다. 전혀 심플하지 않고 점점 복잡해진다. 애플이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로서도 곤란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애플 그리고 맥에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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