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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영 Sep 11. 2015

북문싸롱

사소하게도

북문싸롱 at 연희동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북문싸롱.

북문싸롱은 이미 독특하고 눈에 띄는 외관으로 인터넷에서는 유명하다. 취재 전 사진을 봤을 때는 그냥 이쁜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하네. 하지만 북문싸롱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의류와 액세서리를 파는 북문싸롱도 특별했고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북문싸롱도 특별했다. 누군가의 일터로서의 북문싸롱도, 누군가 지나가다 들리는 가게로서의 북문싸롱도 마찬가지로 특별했다. 무엇보다 북문싸롱은 주변과의 관계에서 가장 특별하다. 북문싸롱은 메조피아노로 흐르는 거리의 풍경에 아첸타토를 더한다. 노란색 컬러피킹으로 흑백사진을 찍은 느낌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고 가장 돋보인다. 그럼에도 위화감이 없는 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실력 혹은 탁월한 감각 덕분일 것이다. 과도하게 치장하고 멋만 부린 '투 머치'가 아니라 관계성과 실용성, 맥락을 모두 고려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렌즈를 통해 렌즈를 보는 일



얼마나 많이 조이고 또 풀었을까



숨죽여가며 찍는 이를 숨죽여가며 찍는 일



손때 묻은 그.

'촬영'을 촬영하는 건 재밌는 일이다. '찍는 이'를 찍는 이가 되어보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다. 누구도 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고 다만 순차적으로 경험해 볼 수는 있다는 점에서 후자가 되어보는 건 상대적으로 희박한 경험이라 더 즐겁다. 그리고 전문가의 손때 묻은 장비를 살펴보는 일은 특히 더 즐거운 일이다. 수없이 만지고 또 만졌을 그의 장비에는 그의 오랜 경험과 시간이 묻어있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라 말한 이래로 나는 누군가와 그가 소지하는 물건들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게는 그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지갑이 그 자신의 확장이고 그녀가 의자 위에 고이 올려놓은 가방이 그녀 자신의 확장이라 여겨진다. 샘 고슬링이 스눕을 통해 말했듯이 어쩌면 그가 자랑스레 테이블에 지갑이나 차 키를 올려 놓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혹은 과시하는 일종의 전시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늘 그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보고 싶다. 그녀의 명품 가방, 그의 차 키가 아니라 전문가의 손때 묻은 장비, 누군가와 오랜 시간 가까이 함께한 물건을 볼 때면 그래서 모종의 관음적인 즐거움이 생긴다. 이런 사람이구나,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왠지 친밀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북문싸롱 촬영 현장에서 손때 묻은 삼각대와 카메라를 소중히 다루는 동료와 그의 장비를 보며 왠지 나는 그가 더 가깝게 느껴졌고 듬직하게 느껴졌다. 손때 묻은 튼튼한 삼각대가 그의 확장이며 그 삶의 증거이니 말이다. 


사소한 곳까지 모두 아름다워지기를



사소한 곳까지 다 아름답다면.

이런 사소하고 눈의 띄지 않는 곳이 아름답다는 건 내게 많은 함의를 준다. 이렇게 사소한 곳까지 신경 쓴 작품을 만날 때면 디자이너의 일관성과 철학이 느껴진다. 티 나지 않는 양말까지 신경 쓰는 멋쟁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런 디자이너라면 어떤 작업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 한 곳까지 이미 꼼꼼히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을 것 같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나 어쩌면 프랙탈을 동원한다면 이런 연속성과 일관성에서 오는 매력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느낌과 생각의 의미가 흐르는 방향은 이론적이거나 이성적인 설명보다는 '감각'의 영역에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작은 곳, 부분에서 느껴진 매력이 전체로 확장되는 것은 어쩌면 연애와도 비슷하다. 작고 사소한 행동이 매력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사랑스러운 법이니까. 그런 사람들은 보통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거나 날 때부터 천성이 바른 사람일 것 같다. 어떤 경우이든 작고 사소한 것까지 매력적인 이들은 드물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북문싸롱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내가 받은 느낌이 그랬다. 이 건물은 날 때부터 이뻤거나, 아니면 구석구석 완벽하게 설계되고 관리되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경우이든 결국 사랑스러운 건물이다. 누가 봐도, 어딜 봐도.


애정 혹은 배려 혹은 가르침



리치몬드 슈.

아직 많이 부족하고 많이 모자란 내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픈 고마운 동료 - 상사라는 말에는 정이 부족하고, 형이라는 말에는 격식이 부족하니 동료라고 하자. - 의 선물. 이 날은 왠지 감성적인 하루였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북문싸롱을 취재하게 된 건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다. 같은 주제에 대해서 디자인, 공간, 기능, 미학, 관계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의 시선, 클라이언트의 이야기, 사용자로서의 경험, 공간을 찾는 손님으로서의 입장까지 동시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한 공간 안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공간을 엮어내는 컨텍스트, 디자이너에 의해 구조화된 공간을 주체적으로 변용하는 해체적 사용자로서의 컨텍스트, 손님으로서 공간을 경험하는 입장의 컨텍스트 까지 한 번에 모든 맥락을 경험하는 건 혼란스럽다기 보다는 신선하고 역동적인 경험이었다. 디자이너가 공간을 설계하며 어떤 고려와 사유를 하는지, 직접 디자이너로서 해보지 않은 이상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고, 공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필요가 있는지, 손님으로서 공간을 어떻게 감각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감각이 어떻게 계획되고 설계되는 것인지를 미약하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소중하다. 에디터로서 또 문화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또는 자연인으로서도 소중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은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수렴한다. 사유의 횡적 확장과 종적 확장이 종국에는 사유의 확장 그 자체로서 의미 있듯이 말이다. 맛있는 슈만큼이나 맛있는 날, 맛있는 경험이었다. 


가장 흔한 것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고 했던가



취재길 공중전화.

북문싸롱을 찾아 가는 길에 공중전화를 만났다. 오랜만에 본 공중전화가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으로 공중전화의 사진을 찍으면서 문득 시간에 대한 어떤 감정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렴풋한 그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단어들이 필요할 것이다. 가장 적확한 그러나 이미 오염되어버린 '소통'이라는 말을 대신하기 위해 바흐친의 '대화'와 로트만의 '구조'와 '관계', 데리다의 '차연' 같은 단어들을 동원해야 할 것 같다. 쉽게 설명할 수도 있었을 것을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설명해야 한다는 건 서운하고 섭섭한 일이다. '소통'이라는 말이 어쩌다 이렇게 사용하기 꺼림칙한 말이 되었나. 문득 그게 더 아쉬워진다. 다만, 어쨌든, 공중전화를 보고는 느낌이 좋았다.  오래전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 삐삐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며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 기다리던 생각도 났고 전화기를 타고 들리던 목소리와 그 목소리의 주인, 그때의 나도 생각났다. 그냥 왠지 느낌이 좋았다. 북문싸롱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랬다. 왠지 느낌이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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